4.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

엄청난 식당 가격

이탈리아-프랑스-스페인을 거쳐 왔지만 식당의 가격은 눈물나올 정도다. 맥도널드 햄버거 같은 정크푸드도 3유로 이상 하고 빵에 햄조각 몇 개 끼워 놓은 샌드위치 역시 최저 3유로 이상이다. 도저히 손이 안가는 가격이다. 바르셀로나에서 버거킹 앞에 크게 빅킹이 1.95유로 라고 표시해 놨길래 들어가 보니 막상 메뉴에는 있지도 않다. 점원에게 밖에 써 놓은 빅킹 달라고 해서 먹긴 먹었지만 버거킹의 다른 햄버거들은 5유로에서 7유로까지 가격이다. 또 제대로 된 피자를 먹어볼랴치면 12유로 정도, 빠에야도 1인당 14-15유로 정도다. 우리나라 물가 개념으로 보자면 말도 안되는 비싼 가격이라서 어디 식당에 한번 들어갈 엄두를 못냈다. (마르세이유에서는 유명한 브이야베이스를 먹어보려고 그나마 싼 가게에 들어갔더니 브이야베이스 16.5유로, 파스타 12유로 해서 팁 포함 30유로를 주고 먹었었다. 한끼에 둘이서 4만5천원......다른 가게는 브이야베이스 1인 가격이 23-25유로였다.)

한국에선 어디 정식 한판 걸판지게 먹기 전에는 한끼에 2만8천원(20유로)을 내고 먹기나 하겠나?

그런데 이상하다. 대형 슈퍼마켓에 가면 물가는 엄청나게 달라진다. 식당의 가격 때문에 쫄쫄 굶고 눈만 빙빙 돌아갔던 것이 슈퍼마켓에 오니 맘이 편해진다. 1.5리터 물이 0.3-0.8유로, 캔맥주가 0.3-1.2유로, 포도주는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싼 건 1유로 정도부터 있다. 또 한국에서는 그리도 비싼 고다치즈가 kg에 7유로 정도니까 오히려 한국보다 슈퍼물가는 엄청 싸다는 생각이다. 게다가 각종 수제 소시지와 순대(검은 햄인데 병천순대류와 90% 이상 같다.) 역시 많이 싸서 장 보기에 어려움이 없었다.

이번 여행에는 여행용 핫플레이트를 들고 갔기 때문에 간단한 밥이나 스튜 정도는 해 먹을 수 있었는데 그런 상태를 기준으로 하면 유럽에서 먹고 살기는 정말 가뿐하다. 어느 슈퍼나 간단하게 요리되는 즉석요리나 인디카쌀(안남미라 불리는 가벼운 쌀)은 다 있으니. 비록 양상추지만 상추도 있어서 수제 소시지를 사서 살짝 삶아 놓고 밥을 해서 상추쌈을 해 먹으면 뭐, 한국음식이 별 부럽지 않을 정도다.

그런데 왜? 식당 물가는 이리도 비싼 거지?

셀프 서비스가 필요해요

핫플레이트식 비가 비싸고 먹을 게 과히 없는 유럽여행을 위해 우리가 준비한 핫플레이트는 일본 산요제품의 단점을 보완해서 우리나라 업체가 만들었는데 무척 만족이다. 히터와 냄비, 그릇이 한 패키지로 되어 있고 휴대할 수 있는 크기도 작아서 배낭에 쏙 들어갈 정도다. http://www.travelmate.co.kr 에서 팔고 있는데 우리는 평촌 홈에버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구입했었다.

원래 2인용 미니밥솥을 찾고 있었는데 어디에서도 구입할 수 없던 차에 이것을 발견하고 덜컥 구입했다. 그런데 막상 여행 하면서 이용해 보니, 이게 물건이다. 배낭여행에서 물을 끓일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엄청난 것이기 때문에.. 작년 그리스 여행할 때 슈퍼에 널려 있는 쌀이나 라면을 살 엄두를 못내고 매번 차가운 소시지와 캔음식으로 근근히 연명했던 기억을 되살려 보면 이번 여행에서는 다소 완벽하진 못하지만 밥을 지을 수 있고 캔음식이라도 데우거나 양념을 넣어서 제대로 입맛에 맞게 조리할 수 있으니 그게 어딘가. (프랑스,스페인은 슈퍼에서 라면을 찾을 수 없는게 아쉬운 부분이긴 하지만.) 특히 냄비가 코팅이 잘 되어 있어서 어떤 요리를 하더라도 뜨거운 물만 나오는 곳이라면 세제 없이도 깔끔하게 설거지가 되는 것도 큰 장점이다.

아래에 이 쿠커를 이용한 몇 가지 음식 레시피를 기록한다.


  1. 밥짓기
    우리나라 쌀 품종인 자포니카(찰지고 잘 불려야 한다)는 이 쿠커로 만들기 힘들지만 유럽 슈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디카(얇고 길고 찰기가 없는 쌀)는 쉽게 조리가 된다. 쌀을 넣고 우리나라에서 밥을 하던 것 보다 조금 더 많이 물을 넣고 끓인 뒤 죽보다 약간 더 되직한 상태가 되었을 때 불을 끄고 10여분 기다리면 물기가 흡수되면서 밥이 된다. 만약 자포니카 쌀을 구했다면 한 두시간 정도 불린 후 끓기 시작하면 불을 껐다가 잠깐 잦아들면 다시 불을 켜는 식으로 껐다 켰다 해 주어야 하니 불편하다 (불을 꺼도 잔열 때문에 계속 끓는다)
  2. 소시지 데치기
    유럽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소시지는 잠깐 물에 끓이면 기름이 빠져서 훨씬 먹기 좋은 상태가 된다.
  3. 소시지 야채볶음
    냄비에 버터 조금을 넣고 데우다가 토마토 2개를 잘게 썰어 넣고(아니면 슈퍼에서 파는 토마토 페이스트 캔을 이용해도 된다) 양파를 1개 슬라이스 해서 넣고 잠깐 볶는다. 이 때 피망을 잘게 썰어 넣고 볶으면 더욱 좋다. 토마토가 볶여서 흐물흐물하게 될 쯤 소시지를 잘게 잘라서 넣고 볶으면서 취향에 따라 한국에서 준비해 간 고추가루나 다시다를 약간 넣고 볶으면 매콤새콤하고 고소한 소시지 야채볶음이 된다.
  4. 커피 끓이거나 달걀 삶기
    뭐든 끓이는 음식을 하는 데는 넘칠 만큼 화력이 센데 물을 넣고 전원을 넣으면 5-6분 만에 펄펄 끓는 상태가 된다.
  5. 변비해소 밥 짓기
    유럽여행에서 가장 고생하는 점이 주로 고기를 위주로 한 식단이다 보니 생기는 변비. 우리의 식단엔 나물과 김치 등 섬유질이 많은 음식이 다수이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지만 유럽엔 시금치나물밖엔 없었다. 그나마 찾기도 힘들다. 이럴 땐 슈퍼에서 파는 씨리얼 중 보리를 눌러 약간 볶은 것이 있다. 이건 콘프레이크류와 달라서 우유를 타도 풀어지지 않아 먹기가 힘든데 이 걸 이용해서 밥을 지으면 먹기에도 그다지 나쁘지 않고 무엇보다 속이 너무 편안해서 좋다(무슨 뜻인지 아시려나...^^)
    밥을 지을 땐 먼저 물과 우유를 적당히 섞고 씨리얼을 넣어 불린뒤 밥을 짓는데 역시나 자포니카로 밥을 지을 때 처럼 쿠커를 적절하게 껐다켰다 해 주어야 한다. 특히 아래가 눌어 붙지 않도록만 조절하면 20여분 정도만에 밥이 된다.
  6. 나물 무치기
    남유럽의 겨울은 춥지 않아서 민들레가 지천이었다. 여기서는 완연한 잡초. 민들레의 잎만 뜯어서 쿠커를 이용해 물에 조금 삶은 뒤에 그대로 두고 하루 정도 쓴 맛을 뺀 뒤에 숙소를 이동할 땐 비닐에 넣어서 이동했다. 나중에 무칠 땐 이것에 소금 약간과 한국에서 가져간 가쓰오 다시다 약간, 역시 한국에서 가져간 쌈장 약간으로 무치니 완벽한 건강식 민들레나물이 완성되었다. 뜯어 올 땐 파카의 양쪽 주머니 가득이던데 막상 먹을 땐 한끼 분이라 아쉽긴 했지만 여행 중반 음식으로 축난 몸이 한번에 회복되는 듯한 느낌이 참 좋았다.

주의할 점이라면 아무래도 호텔에서 취사를 금지하는 유럽의 문화일 것인데 우리도 이 부분 때문에 되도록 라면이나 한국의 향이 많이 나는 음식은 하지 못했다. 아마 토마토와 우유, 소시지를 이용한 외국식의 음식을 만든다면 조금만 환기시키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한다.

이번 여행에서 알게 된 게 토마토와 우유를 이용한 음식인데 서양요리의 독특한 향과 맛이 토마토와 우유를 이용하는 데서 왔다는 걸 처음 알았다. 고기의 느끼함을 없애기도 하고 음식에 따라서는 김치의 새콤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서도 레시피를 만드는 데 많이 이용해 봐야겠다.

놀랍고 맛있는 스페인 음식, 하몽과 실뱀장어

스페인의 특산 음식인 하몽. 돼지 다리를 잘라서 소금에 절인 뒤 산바람에 말리고 발효시킨 일종의 육포다. 시장에 가면 어디든지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돼지다리를 볼 수 있는데 표피가 발효된 냄새는 거의 청국장일 정도로 지독하다. 오래되고 잘 발효가 된 것일 수록 상급품으로 치는데 먹을 땐 겉 껍질을 잘라내고 지방 부분을 적절히 제거한 뒤에 아주 얇은 슬라이스로 만들어 판다. 바르셀로나 시장에서 이렇게 얇게 저민 것을 진공포장에 담아 팔길래 5유로라는 거금(!)을 주고 사긴 샀는데 차마 먹을 엄두가 안 나서 배낭에 박아 두고 며칠간이 지났다. 마드리드와서 그날 따라 이걸 꼭 먹어보자고 맘 먹고 먹어 보니 이런, 이렇게 맛있는 것을 배낭에만 넣어두고 다녔다니.

소금에만 절이고 일체 조리를 하지 않고 발효한 햄인데 전혀 돼지냄새가 안난다. 약간 짭쪼롬하지만 발간 살 부분은 담백하고 쫄깃하며 비계부분의 지방이 입에 감돌 땐 크림과 같은 풍미가 있다. 우리나라라면 육포나 육회같은 것과 비교되겠지만  맛은 전혀 달라서 비교불가다. 나도 우리나라 음식에 대해서라면 자부심을 심하게 가지는 사람 중 하나지만 이렇게 돼지다리를 잘라 발효시켜 맛의 예술을 이룬 음식이라면 스페인 음식 문화에도 큰 절을 올리고 싶다.

하몽을 구입할 땐 색이 발갛고 비계가 적절히 혼합된 것이 비싸고 맛있다. (물론, 하몽 전문점에서 비싼 건 다 이유가 있는데 너무 비싼 것은 그 나라 나름대로의 독특한 풍미를 가지는 법이니 우리에게는 100g 정도에 5-6유로 짜리면 가장 적합할 것 같다) 슈퍼에서 구입하는 하몽 중 싼 것은 100g에 1-2유로 짜리도 있었는데 색도 희미하고 돼지냄새가 약간 나서 결국 호스텔에서 베이컨으로 지져 먹었었다. 베이컨으로 먹으니 그제서야 맛있더구만.

실뱀장어 새끼 요리 또한 처음 봤을 땐 도저히 먹을 수 없을 것 같은 음식이었지만 하몽의 맛에 매료된 나는 이것 또한 도전해 보기로 하고 슈퍼에서 조리되어 냉장된 뱀장어 요리를 3유로 정도에 샀다. 포장지에 보니 샐러드를 만들 때 그냥 부어서 먹어도 되고 달걀을 첨가해서 약간 익혀 먹어도 된다는데 우린 달걀을 풀어 섞어 살짝 볶아 토마토 소스(슈퍼에서 한 캔에 0.5유로짜리)를 첨가해 양상치에 예쁘게 담아내 봤다.

사진의 접시는 냉동피자용 플라스틱 뚜껑인데 접시 대용으로 아주 좋았다. 뱀장어의 맛은 비린내가 거의 나지 않고 계란의 맛과 어우러져 무척 고소한 흰살생선을 먹는 것 같은 느낌이다. 생긴 모습하며 비린내가 날 것이라는 선입견이 더해지면 어떤 음식이라도 꽤 먹기 힘들 텐데 이건 그런 선입견에도 불구하고 맛있다! 난 비린내 나는 생선을 잘 못먹는 식성인데도 옆에서 경아씨가 조금 비린내가 난다고 말해 봐도 내겐 전혀 비린내가 안난다! 이렇게 맛있을 수가 있나!

스페인 사람들의 겨울 별미라더니 그 이유를 알 만 했다. 슈퍼에서 산 것을 대강 조리해서 먹어도 맛이 이런데 제대로 된 식당에서 먹으면 그 맛이 오죽할까?

너무나도 싼 가죽구두의 값

바르셀로나에선 숙소 주변이 명동 같은 중심가라서 할인판매를 하는 옷이나 구두점이 많았다. 그런데, 가죽으로 된 구두 가격이 15유로에서 40유로 정도가 아닌가? 멋진 부츠도 35유로에서 비싸야 50유로 정도다. 한국에서는 15-25만원 이하로 주고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살 디자인의 멋진 가죽 부츠가 겨우 35유로랜다.(진짜 가죽이다...이게 어찌된 가격인지..) 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여행을 계속해야 하는 지라 다 그림의 떡일 뿐. 이런 물가는 마드리드에서도 비슷했는데 겨울이라 세일 폭이 큰 건지 가죽 부츠를 이렇게 싸게 팔다니.

그런데, 이런 가죽 부츠 한 켤레의 가격이 겨우 식당 식사 두끼 값이라고? 물가 감각을 어디에 기준해야 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