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남부 프랑스
서울만 보고서 한국을 보았다고 할 수 없듯이, 빠리만 보고서 프랑스를 봤다 할 수 없다 한다. 그리고 특히나 남부 프로방스 지방을 보지 않고서는 프랑스를 본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까지 들린다.
프로방스, 내게는 장 지오노의 작품 "나무를 심은 사람"의 배경으로 기억되면서 어렴풋이 아름답고 목가적인 남유럽의 풍경이 저절로 떠오르는 곳이다. 이 프로방스 지방의 주요 장소인 아를, 액상프로방스, 마르세이유를 여행루트에 넣었을 때 난 이렇게 생각했다
"드디어 10년만에 다시 프랑스에 가는 거구나! 게다가 프로방스지방. 얼마나 아름다울까!"
나의 그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듯 피렌체에서 니스를 거쳐 마르세이유에 도착했을 때 피렌체보다 확연하게 따뜻한 공기를 느꼈고, 마르세유에서 아를로 들어가는 기차여정 동안 차창 밖으로 아름다운 남프랑스 농촌의 풍경이 펼쳐져 점점 기대감에 부풀게 되었다.
하지만 아를에 가까워지자 점점 날은 흐려지고 역에 내려 숙소를 찾는데 바람이 심해 사뭇 한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게다가 아를에 있었던 이틀, 액상프로방스로 이동해서 다시 이틀 동안 햇빛을 찾아보기 힘든 데다 비까지 꽤 내려서 머리속에만 있었던 남부프랑스의 아름다운 풍경은 제대로 느낄 수도 없었다. 사회선생인 경아씨는 불평하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게 바로 지중해성 기후 지역의 겨울 모습이야! 여름은 비가 안오고 덥지만 겨울에 비가 많이오거든!"
아차...
햇님은 우리가 마르세유에서 바르셀로나로 가는 기차를 예약한 뒤 기다리는 4시간 동안 잠깐 모습을 드러냈다. 마르세유 항구 벤치에 앉아 느껴보는 남프랑스의 햇살. 그렇게나 숨어 있다가 일단 선을 보이고 나니까 강렬한 힘이 느껴진다. 아를이나 액상프로방스에서 이런 햇살을 내려줬었더라면...
아를 Arles
아를에 도착했지만 정보라고는 며칠 전에 구글맵으로 봤던 아를의 모습과 어제 인터넷으로 예약한 캉파닐 호텔의 위치밖엔 없었다. 아를이 워낙 작다기에 무작정 별 정보없이 역에 내려서 길을 헤매기 시작했다. 조금 헤매다 원형경기장 옆에서 청소원 아저씨께 예약한 호텔의 주소를 보여드리니까, 난감한 표정을 지으신다. 그곳은 이곳 아를이 아니라 Forchon이라고. 제법 멀댄다. 어? 구글맵에서는 원형경기장 바로 아래에 캉파닐 호텔이 있었는데?
실상 캉파닐 호텔은 청소원 아저씨 말대로 Forchon이라는 곳에 있는 게 맞았다. 구글맵에 표시된 캉파닐 호텔의 위치가 잘못된 것이다. 다행스러운 일이라면 그 Forchon이라는 곳을 인포메이션에서 물어 보니 우리 걸음으로 15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라는 것. 막상 걸어 보니 10분 정도 밖에 안걸렸다.
경아씨나 나나 고흐를 좋아한다. 강렬한 색감에 불타는 듯한 터치는 감히 어떤 화가라도 따라올 수 없는 경지라 생각한다. 그 고흐가 머물며 수많은 작품을 남겼던 곳, 그곳이 아를이다. 알퐁스 도데의 단편소설 '아를의 여인'의 배경이기도 한 이름조차 아름다운 아를. 아를에서는 역시나 고흐의 자취를 많이 찾을 수 있었다.
아를은 반 고흐가 가장 안정되게 그림을 그렸던 곳이었다. 화가 고갱이 고흐의 제안을 받아들여 같이 살게 되었는데 고갱과의 사이가 점점 안좋아져 고갱이 떠나려고 하자 스스로의 귀를 자르고 정신착란 증세를 보여 이곳의 생 레미 요양원에 입원한다. 고흐 그림 중 밤의 카페, 요양원(생레미 요양원의 정원), 도개교 등등이 이곳을 그린 것이며 해당 장소에 가면 당시 고흐가 그렸던 그림과 거의 꼭 같은 장면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 고흐의 그림과 같은 각도로 자신을 넣어서 사진을 찍어 보면 재미있는데 이 장소들을 찾아 가는 것이 숨은그림찾기 하듯 재미있다. 먼저 고흐 재단(원형극장 옆에 있다)에 들러서 그림을 감상한 후 관광을 시작하면 된다.
고흐의 발자취를 찾는 게 재미있어서 아를에 하루 더 있을까 했는데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도저히 돌아다닐 상태가 아니었다. 밤 새 내리던 비가 아침을 해 먹고 나니까 잠깐 그었길래 시내로 가서 고흐의 정원을 구경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비가 다시 내려 흠뻑 젖었다. 내 옷은 그나마 방수가 되는 오리털파카였지만 경아씨의 오리털 파카는 방수도 안되는 것이라 모습이 실로 처량했다.
숙소에서 짐을 꾸리는데도 계속 비가 온다. 아를에 있기를 포기하고 호텔 체크아웃을 마친 후 길을 나서는 데도 계속 내리는 비. 액스에 가면 좀 그치려나.
액상프로방스 Aix-en-Pronence
추 적추적 내리는 비속에 액스로 가는 버스를 탔다. 이게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하는 버스여행인데 마침 맨 앞자리를 차지했기에 비내리는 프로방스의 풍경을 맘껏 즐게게 되었다. 비록 겨울이라 앙상한 가지만 드러냈지만 길을 따라 양쪽의 아름드리 가로수가 서로 가지를 엉키고 서 있는 모습이 아름다웠는데, 만일 봄이나 가을에 이곳을 지난다면 마치 푸른 터널을 지나듯이 지금과는 엄청나게 다른 느낌을 받게 되지 않았을까.
액스에 도착하니 비는 좀 그었지만 원하는 숙소를 찾지 못해 무거운 짐을 들고 한참 동안 고생했다. 시가지 안의 숙소는 80유로가 넘는 비싼 값이라 외곽쪽의 체인호텔인 에탑이나 이비스를 찾아 보려고 했는데 자동차를 위한 표식만 믿고 무작정 따라가기만 한 거다. 한참 헤매다가 고속도로변의 B&B호텔에 묵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가 찾던 에탑이나 이비스는 걷기에는 엄청 먼 거리에 있었던 거다.
첫날은 이미 늦어서 짐을 풀고 쉬는 데 바빴고 둘째날은 세잔느가 주로 그렸었던 생트 빅트와르 산에 트레킹가려 했지만 막상 산 아래에 내리고 보니 상상을 초월하는 추위 때문에 타고 왔던 버스가 종점을 거쳐 돌아 나오는 걸 바로 타고 나와버렸다. 호기롭게 등산한다고 갔던 사람들이 그 버스를 다시 타고 나오니 참 우습기도 했을 거다.
하지만 생트 빅투와르 산은 예사 산이 아닌 모습이다. 산을 올라서려는 그 지점에서 본 산은 한 마디로 기를 팍 죽게 만든다. 차마 올라갈 엄두가 안날 정도다. 날씨가 춥다는 핑계로 다시 돌아오긴 했지만 날씨가 좋다고 해도 어디 올라갈 엄두가 났겠나. 약 300여m정도 나무 하나 없는 흰 절벽만 계속되는 까닭에 올라가다 보면 오금이 저려 발을 떼기가 힘들지 않았겠나...
하긴 쉬운 등산로도 있다고 한다. 우리가 차를 내렸던 곳에 메종 생 빅트와르라는 산악등반 안내소가 있었는데, 하필이면 우리가 내린 지점이 난코스 지점이라 하면서 다른 곳은 그나마 낫댄다. 하지만 날씨가 너무 추워서 그 또한 갈 상황이 아니었다.
시내로 돌아와서 구시가지를 구경하다 보니 마치 놀이동산에 와 있는 느낌이 든다. 낡디 낡은 옛 건축물들을 모두다 보존하고 있고 길 역시 옛날 길 그대로다. 사람들의 삶의 모습도 아마 100여년 전에도 그랬을 것 처럼 자연스럽다. 만일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그런 옛날 집에 쭉 살라면 아마 가만있지 않았을 성 싶은데. 문화를 먼저 생각하는 프랑스인에 대해 좀 질투가 나려고 한다.
아를르 (프랑스)
엑상프로방스 (프랑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