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구겐하임미술관의 도시 빌바오

예정에 없던 일정

원래는 바르셀로나에서 발렌시아로 갈 예정이었다. 워낙에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춥게 지냈기 때문에 좀 따뜻하고 풍요로운 곳으로 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바르셀로나에서 며칠간 봄 날씨를 경험하고 나니 참으로 간사하게도 추웠던 경험은 금새 사라지고 좀 더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빌바오쪽으로 갑자기 계획을 바꾼 것이다. 사실 에스파냐 북부 바스끄 지방은 ETA의 분리독립 투쟁이 활발했던 곳이라 문화적 차이를 느끼기 위해 꼭 가고 싶었던 곳이긴 하다. (바스끄어로는 빌보라고 한다)

날씨가 춥다고 하는 말도 들었고 여행 일정 진행상 너무 돌아가기 때문에 염두에 두지 못했던 곳이라서 아쉬움이 있었나 보다. 바르셀로나에 있던 며칠 동안 생각을 거듭한 끝에 여정을 바꾸기로 했다. 오렌지로 유명한 따뜻한 남쪽 나라 발렌시아보다는 문화기행을 택한 거다. 게다가 빌바오는 인터넷 이미지로만 봐 왔던 초현대식 건축물 구겐하임 미술관이 있는 곳이 아닌가. 열차표를 끊는 동안 바르셀로나에서 9시간이 넘게 걸린다는 걸 알고서는 잠깐 후회하기도 했지만, 일단 밀어붙이기로 한 거, 후회없이 진행하기로 했다.

빌바오에 도착한 시간은 10시20분. 전혀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태라 걱정되는 차에 도착하는 시간이 넘었건만 기차는 작은 소도시를 지나는 듯한데 거리엔 인적 하나 없어 자꾸만 걱정이 되는 거다. 한적한 기차역에 기차가 서고 안내방송에서 뭐라뭐라 쏼라쏼라 해서 내리려고 하니까 사람들이 이곳이 아니고 빌바오는 종점이니까 그냥 있으랜다. 아, 다행이다. 이렇게 한적한 곳이라면 숙소를 어떻게 찾나 고민했는데.

빌바오 abandon역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여행객을 맞아주는 것은 역 구내의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다. 보통 종교적 의미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많이 봤지만 빌바오의 것은 농민과 노동자들을 표현한 것으로서 독특하며 상당히 역동적이다. 역은 늦은 시간임에도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고, 역을 나서다 보니 시내지도와 숙소정보가 표시되어 있어서 별 어려움 없이 숙소를 구할 수 있었긴 했지만 제법 비쌌다.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하루를 보내다

빌바오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도 없는데 여행안내소는 버젓이 있지만 도통 문을 열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는 것이라고는 구겐하임박물관 뿐. 숙소에서 구한 빌바오 지도에서 박물관으로 추정되는 건물을 대략 찍어 (건물 소개가 없는 지도였다) 한 30여분 걸었나 보다. 눈 앞에 멋진 건물이 나타나긴 했는데, 미술관은 아니다. 지도를 잘 못 본 것. 덕분에 아름다운 공원을 거닐게 되기는 했다.  다시금 강가를 따라 걷다 보니 구겐하임 미술관을 만날 수 있었다.  알고보니 숙소에서 무척 가까운게 아닌가.

아름답다. 사진에서 이미 많이 본 바 있긴 했지만 실제로 보는 것과는 그 느낌이 다르다. 건물 자체가 엄청나게 스케일이 큰 조형물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빌바오 강에 떠가는 배를 형상화시킨 것 같기도 하고 막 피어나는 꽃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저녁에는 미술관 조형의 한 부분인 다리 위에 올라서 미술관 전경을 여러 각도에서 찍어 봤는데 어스름이 해가 지는 검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한 구겐하임은 SF영화에서나 나올 수 있는 미래도시를 연상케 했다.

전시 작품은 대부분 현대예술로서 영상과 음향이 어우러진 멀티미디어 예술이라고 할 만 했는데 마침 이번엔 구겐하임 재단이 미국에 소재한 만큼 미국 예술 200년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특히 서부 강점기의 미국 회화를 보면 그들이 신대륙이라 부르는 땅에 와서 느꼈던 대자연의 경외로움이 회화에 잘 드러나 있다. 풍경 하나하나가 신령스러운 기운이 감돌아서 왜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그렇게나 영적인 기운이 넘치는 사람들이 되었는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했다. 영국의 이주민들은 저렇게 아름답고 영적인 기운이 충만했던 땅을 인디언들로부터 빼앗고 그 땅의 주인이었던 인디언들을 보호구역에 몰아 넣어 지금의 폭력적인 국가 미국의 땅으로 만들고 만 것이다. 전시작품을 보면서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느꼈던 선입견과는 별개로 아메리카의 대지에는 한번 발을 들여 놓고싶다는 마음이 자꾸만 들었다.

전시관에서는 일절 사진을 찍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사진으로 남긴 건 없지만 잠깐 화장실에 들어 갔을 때 다시금 놀랐기에 사진으로 남겨 두었다. 이 곳은 화장실 마저 예술이다.

오후에 언덕위로 올라가는 푸니쿨라를 타게 된 건 순전히 미술관을 원경에서 보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언덕 위로 올라서니 아직 해가 지지 않아 미술관을 밝히는 조명도 없어 어정쩡하게 사진이 나온다. 해질녘까지 잠깐의 한가로움을 즐긴 뒤 푸니쿨라를 타고 내려와 다시금 강변의 미술관으로 향했다.  미술관을 지을 때 같이 고려하며 지었다는 다리, 그 기둥은 마치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스코트의 얼굴인 코비를 연상시킬 정도로 귀엽다. 거대한 조형물에 대해 귀엽다는 표현을 쓰다니... 하지만 진짜 귀엽다. 구겐하임의 정문 마당에 설치된 꽃개 역시 거대하면서도 귀여웠는데 이 미술관의 전체 컨셉은 아마 거대하며 현대적이면서도 친근함을 주는 것이 아니었을까.

구겐하임 미술관이 살린 도시 빌바오

빌바오는 몰락해가던 공업도시가 어떻게 세계 최고의 문화도시가 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도시가 새로운 생명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새로운 비전 제시와 더불어 살고 있는 사람들의 근본적인 인식전환이 필요한데 빌바오 정부와 시민들은 이것을 해 낸 것이다.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하고 난 후 세계적인 관심을 받게 되면서 도시 전체의 컨셉이 문화, 예술로 바뀌게 되었고 지금의 빌바오는 예전 산업 도시였던 모습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을 정도다. 신도시권인 빌바오 강변엔 초현대식 건물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는데 이 디자인들이 심상치 않다. 하나하나의 건축물들이 스스로의 색깔을 뽐낼 만큼 독특하며 그러면서도 인간에 대한 배려가 느껴지고 있다. 보고 있으면 초현대식 양식에 위압감이 드는 게 아니라 자꾸 재미있어진다고나 할까.  진정한 미래형 건축물들은 사람들에게 편안함과 재미를 주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유쾌한 미래상을 이 빌바오에서 보게 되었다.  또, 기행 내내 빌바오의 혁신적인 건축물들을 스케치하는 많은 학생들을 보았고 빌바오 강 가 건축물들은 그 자체로 거대한 조형공원이 되겠구나하고 느꼈다.

이곳 , 재미있다.


빌바오 (에스파냐)

  1. 바르셀로나-빌바오 이동하기
    바르셀로나 산츠역에서 빌바오 가는 열차가 12:30분, 21:30분 이렇게 하루 두대 있다. (TALGO열차, 1등석 50유로/2등석 30유로/유레일패스 예약비 10유로)우리는 12:30분 발 열차를 탔는데 빌바오 도착은 원래시간보다 50분 늦은 10시30분이었다. 빌바오는 역이 하나며 역 이름은 abondon이다.
  2. 도착후 숙소 정하기
    역을 나서며 보이는 시내지도와 호텔 안내도에 호텔 위치가 잘 나와 있으므로 참조. 별 하나짜리라도 60유로 정도로 비싸다. 구겐하임 미술관에 접근하기 쉽고 산책하는 데도 참 좋으므로 되도록 강변에 있는 숙소를 정하는 게 좋다.
  3. 빌바오 시내교통
    시내버스와 트램이 자주 다니지만 시내가 작아서 걸어다면서 기행하면 된다. 트램 중 녹색라인(다리를 건너와서 역 앞에서 탈 수 있는 것)을 타면 빌바오 강가를 따라 지나가며 현대적인 건축물들의 아름다운 모습과 예쁜 경치들을 볼 수 있어서 한번은 타 볼 만하다.또 멋진 아치 장식이 있는 Zubizuri 다리에서 언덕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언덕을 오르는 등산기차 푸니쿨라를 탈 수 있다 (0.86유로)
  4. 먹고 살기
    빌바오 역 앞에 엘꼬르테스 잉글레즈 백화점이 있고 거기에 대형 슈퍼가 있다. 그 외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별다른 슈퍼를 발견한 바 없지만 푸니쿨라 역 앞에 중대형 슈퍼 eroski가 있었다. 또 역에서 GranVia거리를 걸어가다 Plaza Moyua를 지나면서 큰길 오른쪽으로 오리엔탈 부페가 있는데 1인당 12.5유로로 아시아식 음식을 실컷 먹을 수 있다. 중국인이 경영하며 진열되어 있는 신선한 재료들 중 골라 주방장에게 가져다주면 철판에 구워주는데 쇠고기 스테이크가 정말 맛있었다. 점심시간엔 빌바오 시민들로 북적이는 가게다.
  5. 꼭 가볼만한 곳
    구겐하임 미술관만으로 빌바오는 가치가 있다. 하루종일 투자해도 아깝잖은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