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리스본
너무이른 새벽에 도착한 리스본 오리엔테역
버스 맨 뒷자리에서 자다깨다를 몇 번 하고 나니 비까번쩍한 곳에 다달아 다들 내린다. 같이 타고 온 처자가 finish!라고 말해 줘서 리스본인 건 알겠는데 마드리드에서 리스본은 참으로 먼 거리라고 들었던 것관 달리 지금 시간 4시30분. 아니, 리스본 시간으로 3시 30분. 여기가 도대체 어디야? 버스 기사분께 가까운 메트로가 어디냐고 물으니 바로 아래를 가리킨다. 메트로 역 위이기 땜에. 하지만 메트로 시작 시간은 6시 30분. 아테네 올림픽 경기장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흰색 철제 구조물 아래 선 버스. 멀리 보이는 돛배 모양의 초고층 빌딩 두채. 흰색 구조물과 연결된 쇼핑센터(문은 닫혔지만). 말로 익히 들어 왔던 리스본의 이미지와는 180도 딴 판이다.
2층으로 올라가니 인터넷 부스에서 리스본을 소개하는 페이지를 클릭할 수 있길래 이곳이 어딘지 알아 보니 오리엔테역이라네. 국철과 메트로, 버스 정류장이 함께 모여 있는 곳인데 리스본 외곽 동북쪽에 위치해 있다. 시내와는 제법 멀리 떨어져 있는 듯했다. 이곳에서 3시간 동안 하염없이 기다렸다. 전철 역은 철창으로 닫혀 있고 버스 정류장 지하에서 일찍 도착한 배낭족 몇몇과 노숙자들이 잠을 청하고 있었다. 노숙자들은 박스와 담요라도 있다지만 우린 점점 추워지는 걸 견디지 못해 현금자동지급기 부스에서 일단 시간 반동안 몸을 녹이며 도시락도 먹다 하며 버텼다.
짐 잃어버린 것도 설워라커든 이런 꼭두새벽에 리스본에 떨어져 노숙신세가 왠말인고. 5시 정도가 되자 국철의 대합실 문이 열려서 그 안에서 메트로가 시작되는 시간까지 잠을 청했다가 메트로가 시작되는 6시 30분에야 시내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귀여운 리스본의 전철 명과 그들의 역사
리스본에는 네개의 지하철 노선이 있다. 그런데 그 이름이 독특하다. 갈매기선, 해바라기선, 돛단배선, 나침반선이렇게 네 노선인데 각각의 노선 표지판엔 위의 이름에 맞는 예쁜 그림표지가 표시되어 있다. 난 지하철에 이런 예쁜 이름을 붙인 것을 지금까지 보지도 못했지만 리스본 시민들의 역사를 기억하려는 모습이 보기가 좋다. 해상왕 엔리케 왕자를 비롯해 희망봉 항로를 처음 개척한 바르톨로뮤디아스, 인도항로를 처음으로 개척한 바스코 다가마, 최초로 배를 이용해 전 세계일주를 했던 마젤란 일행등 그들의 역사에는 침탈보다는 개척의 위인들이 특히 많다. 이는, 비슷한 시기 스페인의 경우 콜럼버스를 시작으로 코르테스, 피사로 등이 그들이 새로이 발견한 아메리카를 침탈하고 원주민들을 학살했던 것과 많이 대별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알파마 지구
알파마 지구는 구시가의 주거지역으로서 건물마다 이슬람 양식의 타일로 장식되어 있었다. 이베리아 반도 자체가 오래전부터 이슬람의 영향권 아래서 문화가 발달했고 기독교인들이 다시 이 땅을 강점한 후에도 그다지 예전을 뛰어넘는 문화적 업적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구지 이슬람 양식을 뒤집어 엎을 수는 없었으리라.
성당도 스페인과는 전혀 다른 모습인데 스페인의 성당에서 볼 수 있었던 화려한 장식 대신 수수하게 벽체가 구성되어 있고 무엇보다 다른 건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가 없다는 것.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라는 이미지는 예수의 성스러움을 강조하기 보다는 예수가 받은 박해를 상징하게 되는 게 싫었던 나는 십자가+예수 대신에 성인들의 이콘이나 성화로 장식된 곳이 더욱 성스러움을 나타낸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화려한 장식은 믿는 자의 자기만족이나 믿는 자들의 권력을 상징하는 것일 뿐 외려 세속적인 모습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알파마 지구의 성당에서 더욱 좋은 느낌을 받은 것 같다.
알파마 지구는 얕은 언덕으로 되어 있고 올라가면서 고풍스러운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라서 추천하고픈 곳이다.
발견의 탑
페리 선착장 주변의 중앙광장에서 트램을 타고 리스본 서부 벨렝 지구로 가면 유명한 발견의 탑을 만날 수 있다. 어린 시절, 세계의 여행 이라는 유명한 세계각지의 풍물을 소개하는 책이 있었다. 그 책의 포르투갈을 소개하는 부분에 전면 사진으로 소개되었던 이 탑. 항해왕 엔리케 왕자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것이라 하는데 왕자의 뒤를 따라 항해사, 천문학자 등등의 사람들이 배치된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포르투갈 하면 이 탑이 떠올랐었다.
빵이 맛있는 포르투갈
우리가 흔히 쓰는 말 "빵". 이건 원래 포르투갈어 păo (빵이라 읽는다)에서 온 말이다. 난 빵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릴 때야 물론 좋아했겠지만 나이가 좀 든 뒤론 도통 빵을 먹지 않는데 그건 여행 와서도 마찬가지. 특히 96년 유럽여행 때 빵 위주의 식사에 왕창 질려 버렸기 때문에 식사로 면이나 밥 대신 빵을 먹는 다는 건 전혀 생각 밖의 일인 것이다. 그러면 빵이란 말의 원조 포르투갈의 빵은 어떨까?
리스본의 한 빵집에 들러 빵을 먹었는데,,, 아니 맛있잖아! 이 사람들 빵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적당히 달고 적당히 부드럽게 쫄깃하게, 빵이 맛있기로 소문난 프랑스와 터키에서도 빵은 논외였는데 포르투갈의 빵은 빵을 싫어하는 까탈스런 내 식성까지 만족시키니 이건 진짜 맛있는 게 아닌가.
"출구"라는 말의 변화를 통해 본 언어의 변화
원래 유럽의 모든 족속 언어가 로마의 라틴어에서 비롯된 건 다 아는 사실. 어쩌면 유럽 각국의 언어는 다 형제간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은데 이번 여행 중 '출구'라는 말의 변화를 통해 언어의 지역적 차이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의 여행 경로는 이탈리아0프랑스-까딸루냐-까스띠야(에스파냐)-포르투갈로서 점차 서진하는 형국인데, 배낭족인 관계로 지하철을 많이 타다 보니 지하철 출구를 나타내는 말이 쉽게 눈에 들어왔다.
먼저 프랑스어로 출구는 sortie(소ㅋ띠에) 이다. 이 말이 까딸루냐지방으로 가면서 sortida(소ㅋ띠다)가 되고 까스띠야 지방에서는 salida(살리다) 가 되더니 아예 포르투갈에서는 saida (사이다) 로 변하고 있다. 한 언어가 지역을 달리하면서 전달되는 과정에서 과감하게 발음하기 어려운 말들이 생략된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문화의 전파 역시 이탈리아-프랑스-까딸루냐-스페인-포르투갈 순으로 진행되어 왔을거란 생각을 하게 된다.
이 비슷한 예로서는 태국어의 인사말인 사왓디가 태국의 북부지방과 인접한 라오스어에서는 싸바이디 로 바뀌는 현상과도 비슷한 것이다. 또 스페인어에서 뇨- 냐- 로 발음되는 ň 이 포르투갈어에서는 nh로 바뀌는 것도 언어의 단순화 현상을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 espaňa - espanha , seňora - senhora )
신트라
꼭 가봐야 할 아름다운 도시라길래 남의 말을 잘 듣는 우리들도 역시나 가 봤다. SETE RIOS역에서 국철을 타고 40여분을 가니 종점인 신트라에 도착한다. 타고 가는 내내 비가 와서 걱정했었는데 잠깐 그치더니 길을 잘 못들어 헤매고 있는데 비가 또 온다.
마침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던 아주머니께서 우리가 워낙에 얼측없는 곳에서 헤매는 데다 비까지 오고 있으니 안쓰러우셨던지 우리에게 어디 가느냐 물어보시고 차를 태워서 제대로 궁전 앞에 데려다 주셨다. 지도가 잘 못된 것 같다고 말씀하시는데 우리가 헤매던 곳은 궁전과는 완전히 반대쪽. 다른 마을로 나갈 뻔 했다. -_-;; 고마운 아주머니.
신트라 궁전은 솔직히 말해, 이상하다. 흰 원뿔 두 개가 솟은 궁전이라니. 이 멋없는 양식의 궁전이 왜 이 도시의 상징이 되는지 잘 모르겠는데 식견이 부족한 탓이겠지. 좀 누군가 알려 주었으면. 작은 도시를 이리저리 걸으면서 구경했는데 타일에 옛날 신트라의 모습을 그린 것이 참 예뻤고 지나치다 보인 간판에는 신트라 주변 도보여행에 관한 안내가 있어 눈길을 끌었다. 직접 걸으면서 느껴보란 말이렸다. 실제로 그렇게 걷기에 아담하고 예쁜 모습이긴 하다. 마치 터키의 샤프란볼루를 연상시키는 산골 도시다. 다만 비만 오지 않았더라도 조금 더 예뻤을 텐데. 비가 오니까 당최 걸을 수 있어야지...
리스본 (포르투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