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그라나다 (알함브라)

그라나다 가는 길

그라나다는 멋진 설산이면서 에스파냐 사람들이 스키를 즐기는 명소인 시에라네바다 산 근처에 있는 도시이기 때문에 버스는 점점 높은 고도로 올라가게 된다. 그래서 거리에 비해 이동시간이 긴 편. 가는 도중엔 풍경이 멋졌기 때문에 경아씨는 여기저기 사진을 찍느라 분주했지만 난 아침버스를 탄 지라 정신없이 자다깨다 하느라 풍경은 제대로 보지 못했다. 한 세시간 넘었나? 버스가 그라나다에 도착했는데 역시나 고즈넉할 것 같은 이름과는 달리 번화하고 멋없는 도시외곽 신도시 지구에 터미널이 있었다. 마침 인터넷에서 구한 정보가 있었기에 3번 버스를 타고 구도시 도심으로 진입할 수 있었지만 아무 정보도 없는 사람이라면 난감할 것 같다. 왜냐면 터미널의 인포메이션이나 버스티켓 부스 등에서 우리가 영어로 물으면 '노 잉글레스!' 하면서 답변 자체를 거부하는 불친절함을 보였기 때문에. 지금까지 친절한 이미지로 남았던 에스파냐 사람들의 이미지를 다 구기는 그런 터미널 사람들이다.

도심에서

버스가 우리의 목적지인 대성당 앞 Gran Via 1  에 정차하니 완전 번잡한 도심지다. 내 머리속에 그렸던 호젓한 그라나다의 이미지는 잘 못된 것이군. 하지만 인터넷으로 예약했던 오아시스 호스텔의 약도를 대강 그려왔기에 숙소를 찾다 보니 이슬람 지구로 들어가면서 완연한 구도시의 모습을 보인다. 이슬람 지구는 아예 아랍권 같다. 어디나 볼 수 있는 케밥짐, 물담배가 있는 찻집, 아랍식의 장신구, 향, 옷을 파는 집들로 골목이 부산했다. 숙소에 들어가니 그제 예약했던 것은 내용이 없어졌는데도 다행히 더블 방이 하나 남아 있어 무사히 방을 잡을수 있어 다행이었다.

짚시들의 언덕

숙소인 오아시스에서 누에바 광장은 3분 거리다. 일단 누에바 광장에 들어서니 오른쪽은 알함브라 가는 쪽이고 왼쪽은 짚시의 언덕으로 올라가는 쪽이다. 알함브라 궁전은 10시부터 2시까지 무려 4시간의 쉬는 시간을 가지기에 남는 시간동안 짚시들의 언덕 쪽으로 길을 잡고 걸었다.

조금 걷다 보니 오르막이 나왔지만 한가한 주택가 길이라 힘들지는 않다. 길 양쪽으로는 지중해성 기후 특유의 흰시멘트로 발라진 집들이 예쁘다. 구도시 답게 길은 매우 좁았지만 누에바 광장 인포메이션에서 받은 지도에는 아무리 좁은 길이라도 상세히 이름이 표시되어 있어서 찾기엔 편했다. (그만큼 구 도심이 작다는 이야기다) 거의 꼭대기쯤 올라가다 예쁜 거리를 그리시는 할아버지를 발견했는데, 부부와 자식 동행하여 세계여행을 다니시는 알래스카 분이다.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니까 집이 한국에서 별로 멀지 않은 곳이라고 웃으면서 말씀하신다. (알래스카와 한국은 사실, 가깝다) 지긋하신 나이에 이런 남유럽의 고도시 그라나다에서 거리를 스케치 하시는 모습을 보니 나도 늙으면 저런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 근데, 난 그림을 못그리니 어떻게 하지? 내가 원하는 대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건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난 그런 재주가 없으니 사진으로 찍을 밖에.

알함브라

2시 약간 못미쳐 입장했는데 막상 입장 후에 어디로 가야 하는 지 난감했다. 너무나도 넓다. 다시 정문으로 뛰어가 맵을 가져다가 보는데도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를  지경이다. 어찌어찌해서 궁전 앞 요새는 찾았는데 요새에 들어가려고 하니 경아씨가 표에 씌인 시간을 상기시킨다. 궁전 입장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2시에 입장했고 지금 시간이 2시 25분인데 표에는 2시30분까지 입장하라고 씌여 있는게 아닌가? 허겁지겁 palacio 라는 표지판을 찾아 성공적으로 입장했다. 본 궁전의 정확한 명칭을 몰라서 헤맸었는데 아무래도 시간을 제한한다는 궁전이 그곳 아니겠나 하고 무작정 갔던 게 맞았다.

외부에서 보면 이 궁전은 평범한 모습이다. 너무나 평범해서 그냥 잘 사는 사람 집 같은 분위기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벽체를 세밀하게 '조각' 된 기하학 무늬들이 꽉 채우고 있고 기둥이나 처마 같은 부분 역시 세심하게 조각된 무늬들이다, 너무 섬세해서 약간 떨어져서 보면 마치 드레스의 레이스 같은 분위기를 줄 정도다. 박물관 같은 데 보면 유물들이나 조각상이 이렇게 섬세하게 조각된 것을 자주 보았지만 여긴 온전한 건축물 아닌가. 왕궁 전체가 그런 부조들이라니 과연 어떤 수단으로 그런 공덕이 드는 일들을 시킬 수 있었을까? 왕정 독재국가라면 강제로 시켜서라도 한다지만 이곳은 800여년간 지속되었던 이슬람 왕조, 강제노동은 생각할 수도 없는 곳인데 말이다. 하느님을 향한 신심인가 군주에 대한 존경인가. 가끔씩 미처 색이 바래지 않은 부분을 보면서 옛날 그라나다 왕국시기에는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상상했다. 하얀 대리석 벽체에 레이스마냥 조각하고 각각에 푸른색 염료를 칠한 모습. 상상이 잘 안될 정도다.

내부를 화려하게 하고 외부를 수수하게 꾸미는 것은 외부의 위화감을 가져오지 않고 내부적으로 내가 즐길 것만 즐기겠다는 태도로서 허투루이 가진것을 자랑하지 않는 진정한 강자의 태도다.

이런 엄청난 예술 작품앞에서 이곳을 점령한 기독교 세력조차 이 궁전을 파괴할 순 없었을 거다. 다른 지역의 모스크는 철저히 파괴하고 그 위에 성당을 짓거나 모스크를 많이 훼손하면서 성당으로 변모시켰지만 이곳은 궁전을 파괴하지 않았으며  단지 이 아름다운 궁 옆에 겉모습이 화려한 기독교 식의 궁을 따로 세우는 것으로 끝냈으니. 그들도 보는 눈은 있어서였을거다.

알함브라 궁의 압권은 연못을 마주하고 있는 두 건물에서 두드러졌다. 태양은 두 궁전이 연못에 비치는 모습을 서로 다르게 만들어 주는데 연못의 물이 마치 거울처럼 마주한 궁전을 비치는 것이다.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밝게 비쳤다가 어둡게 비쳤다가 할 터인데 밝은 부분은 밝은 부분대로, 어두운 부분은 어두운 부분대로 깊이감을 나타내고 있었다.  특히 어두운 부분이 비치는 쪽을 차분히 쳐다보고 있노라면 건물의 높이만큼의 깊이감이 느껴져 와 일순 어지러워 지기도 했다. 사실 같으되 허상이라...

잠깐 참새가 물을 먹으러 연못에 들렀다 가니 그 작은 몸짓에도 허상의 세계는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여기서는 사람들의 모습 또한 물에 비쳐서 또 하나의 세계를 보여주는데 재미있는 것은, 물에 비치는 사람 자신은 절대 대 놓고 들여다보기 전에는 건물과 함께 자연스럽게 물에 비친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단지 지켜보아지는 존재, 실상의 모습을 반영한 허상의 세계에 인간 역시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 준댈까?  

물에 비치는 모습 또한 건축의 일부로 보는 것은 한국의 고급 정원 건축 양식에서 나오는 기법인데 이슬람권에서도 그런 건축의 멋을 안다는 거다. 이곳 외에도 인도의 타지마할에서도 그런 기법이 사용되고 있다. 이런 것은 눈에 보이는 것만 대상으로 하는 서양의 건축개념과는 판이한 것이다.  

이 외에도 한국 고 건축에서 잘 쓰이는 차경(외부의 경치를 빌려 옴)도 방에 따라 사용되고 있다. 사시사철 외부의 변화무쌍한 모습을 건축물 내부로 담아오는 차경 기법은 자연과 건축물이 합일되는 것을 지향하는 것으로서 자연친화적인 건축관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렇게 입이 딱 벌어지는 건축물들을 보고 있노라니 그 디자인적인 면에서 바르셀로나에서 봤던 가우디의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도 한다. 건축학도라면 누구든지 이곳의 건축물에 매료되지 않을 자가 없었을 것이니 가우디 역시 오래 전 이곳을 견학했으리라. 가우디의 건축에서 보이는 그로테스크한 면의 일부가 이곳에서 보이고 있었다.


그라나다

  1. 시내로 진입하기
    그라나다의 버스 터미널은 시의 외곽에 있고 3번과 33번을 타고 GranVia1 에 내리면 구시가 중심지인 대성당 앞에 정차한다.
  2. 시내교통
    관광지 대부분은 걸을 수 있다.
  3. 먹고 살기
    대성당이 있는 Gran Via 길에서 알함브라 궁 가는 길 방향의 반대방향으로 내려오는 길 Reyes Catolics 길을 따라 내려 오다 Acera del darro  길로 접어 들어 조금만 걸으면 엘꼬르테스잉글레즈 백화점이 있다.
  4. 알함브라 궁전 입장하기
    성수기엔 홈페이지를 통해 미리 예약해야 입장할 수 있다고 한다. 대략 6-7천명을 한도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겨울철 비수기엔 예약 없이도 입장할 수 있다. 왕의 여름궁전과 정원인 헤네랄리페(Generalife)입장료로 나뉘는데 보통 입장료는 12유로지만 헤네랄리페에만 들어갈 경우는 6유로다. 입장 후에도 군데군데에서 표를 검사하며 특히 알함브라 궁전은 입장권에 입장가능 시간이 적혀 있으니(보통 정문 입장 후 30분 이내) 그 시간을 잘 지켜야 한다. (중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