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베네치아

보행자 전용 도시 베네치아

섬과 운하가 많다길래 돌아다니는데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사실 문제는 없었다. 운하버스는 시내의 경우엔 도시를 관통하는 중심 운하만 연결하는 거였고 소소한 작은 운하(폭 5m정도)들은 다리로 다들 연결되어 있거나 택시보트, 곤돌라들이 다니니 어차피 배낭객과는 거리가 먼 거였다. 물론 시내를 걸어다니는데 별 문제가 없을 정도로 시가지는 작은데다 자동차가 없으니 이보다 보행자에게 멋진 도시가 있으랴.

운하를 흐르는 물이 맑지는 않지만 운치를 느끼기엔 족하고 사람이 하나 들어갈 만한 작은 골목하나하나에도 길 이름이 붙여져 있어서 미로같은 곳이지만 지도 한장만 있으면 최소한 길을 잃지는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사람들이 많이 가는 리알토다리나 싼마르꼬 광장, 기차역(Ferrovia로 표시)은 군데군데 화살표로 표시되어 있으니 만약 지도가 없어 길을 잃는대도 문제가 전혀 없어서 부담없이 다닐 수 있다.

도착하는 날 저녁, 나폴리 가는 열차를 알아 보니 자정에 떠나는 열차가 나폴리에 아침 10시에 도착하는 게 있다길래 서둘러 다음날 기차를 예약하러 미로를 헤매 보았다. 출발 시간은 8시 40분. 지도가 없어 민박집 벽에 걸린 지도를 디카로 찍어서 그런대로 준비해 두고 리알토 다리를 건너서 길을 찾는다. 하지만 인쇄된 지도가 아니고 볼 때마다 작은 화면을 일일이 확대를 해서 봐야 하는 상태라서 지도보기를 포기한채로 화살표만 따라 가기로 했다.

예약 마감시간이 얼마 안 남았었기 때문에 마음이 급하여 미로와 같은 길을 화닥화닥 걷다가 이정표를 찾아 두리번 거리기를 몇 번, 막다른 골목에 들어가서 돌아나오기를 몇 번 하는데 뒤에서 쫓아오던 경아씨가 한 마디 한다.

"우리, 방구차 같아." (30대 이상이라면 이 말이 무언지 알 거다.)

순간 우리가 골목골목 뒤지고 다니는 모습이 마치 게임화면속 캐릭터의 움직임처럼 생각되면서 웃음이 나왔다. 방구차라니, 절묘한 비유다. 뭐, 그밖에 미로를 헤매고 다니는 실험용 쥐같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다음날 열차표는 못 끊었다. 근무시간인 9시를 10분 넘겼는데도 줄서 있던 우리를 외면하지 못해 표를 발권해 주려던 나이지긋하신 아저씨가 고맙긴 했지만 꾸셋 자리는 지금 예약이 안된다 한다. 내일 다시 확인해야 한다나. 한참 동안 걸어온 게 허탕이 되었지만 이상하게도 실망감이 들지 않는다. 남는 시간을 이용해 길을 차분히 되짚어 가다 보니 오히려 잘 되었다 싶기도 하다. 이렇게나 걷기에 좋은 도시가 있는데 뭐하러 하루 당겨서 가려고 했을까. 갈 곳이라고는 나폴리와 로마밖에 없는데. 섣불리 일정을 알아보고 성급하게 밤차티켓을 끊으려 한 행동에 알아서 제동을 걸어 주는 격이다.

이번엔 재미나게 느긋하게 걸어보자는 마음에 역 앞 다리를 건넌 뒤로는 표지판 무시하고 쭉 앞으로만 가 보기로 했다. 그래 봤자 작은 베니스 뭐 이상한데로 빠지랴 하고. 한 30분 고즈넉하고 앙증맞은 밤거리를 걸었나 보다. 간간이 예전에 사용되던 우물도 보이고 조금씩만 걷다 보면 나오는 광장. 올 때 보았던 익숙한 길이 보이길래 그랬다.

"허우적거리고 오나 천천히 오나 매한가지네 뭐"

그 말이 끝나고 5분도 안되었을 거다. 쭉 뻗은 골목 끝에 심상찮은 (그리고 낯익은) 건물이 보여서 일순 긴장했다. 혹시나 ...하면서 골목을 나선 순간, 아... 그 건물은 싼타루치아역이 아닌가. 페스와 마라케시에 이어 베니스에서도 나침반이 필요했던 걸까?

디카로 찍어 온 지도와 베네치아의 미로길을  무시하고 호기롭게 걸은 나 자신을 반성하면서 이번엔 다시금 지도를 계속 확대해 가며 걸어보는데, 그래도 길 이름을 놓쳐 헤매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알고 보니 직선으로 올 길을 빙 둘러 가고 있는 중. 경아씨가 급기야는 이런다.

"우리 이러다 길가에서 자는 거 아니야?"

8시 40분에 숙소를 나서서 도로 도착한 건 10시 20분. 확실하게 헤맨 탓에 재미있는 밤 산책이 됐지만 다린 많이 아팠다.

베네치아는 가면의 홍수였다.

상점마다 가면을 놓아두지 않은 곳이 거의 없다. 이 많은 가면들을 다 여기서 만드는지, 아니면 중국 같은 저렴한 생산기지에서 대량생산해서 들여 오는지 모르겠다. 10유로짜리 간단한 눈 가면부터 30유로 이상의 얼굴 전면 가면들 까지 다양한 가격대에 다양한 디자인들이다. 인상으로 말하자면 대부분 대동소이해서 그다지 특징은 없어보였지만  화려함은 지나칠 정도다. 가면 외에도 가면 쓴 이들이 두르게 되는 빌로드 망또도 흔하다. 거리에는 깃털을 꽂아 화려하게 장식된 눈가면을 쓴 여행객들이 수두룩하고 일부는 전면 가면에 망또까지, 완전히 몸을 감추어 두르고 다닌다. 또한 축제 기간이 임박한 탓에 이벤트용으로 완전 중세 복장을 하고 홍보차 다니는 이들도 많아서 마치 거대한 놀이동산에 온 기분이 들기도 한다. 어떤 가족은 부모와 아이까지 세트로 분장을 하고 다니는 게 보였는데 다른 도시에서라면 제정신으로 가면을 쓰고 다니겠냐만은 놀이동산 같은 이곳의 분위기가 사람들로 하여금 좀 더 쉽게 즐기게 하나 보다. 그리고 관광객이 어찌나 많은지 베네치아 시민보다 한 열배는 더 되는 사람들이 거리에 다니는 것 같다.

한국친구들도 가면을 쓰고 다니거나 길쭉한 모자를 쓰고 다니는 이가 많았는데 그걸 본 배낭객인 우리의 걱정스런 첫 마디.

"저거, 갈 때 배낭에 어떻에 넣고 가지?"

우리는 천상 우아한 여행객은 못되나 보다.


베네치아

  1. 공항에서 시내로
    공항을 나오면 공항버스들이 대기하고 있는데 Ple.Roma(로마광장)가는 버스를 찾아 타면 된다. (표지판에 잘 나와 있음. 3유로). 로마광장과 싼타루치아 역은 서로 걸어서 5분이내 거리에 있다(보인다)
  2. 싼타루치아 역에서 중심가로
    비슷한 이름의 베네치아 메스트레 역을 지나 종착역인 베네치아 싼타루치아역에 내려 역 밖으로 나오면 워터버스의 Ferrovia 정류장이 보인다. 베네치아의 중심지는 로마광장과 싼마르코광장, 리알토 다리의 세곳 정돈데 싼타루치아 역은 로마광장의 바로 옆에 있다. Ferrovia정류장에서 Rialto나 싼마르꼬로 가는 1번,2번을 타면 된다. 리알토 다리까지 걸어가는 것도 가능. 도보로 30분 걸린다.
  3. 시내 교통
    자동차가 전혀 없으니 걷기에는 최적의 도시다. 각 골목마다 이정 화살표도 있으니 재미있는 미로찾기 산책코스라고 불러도 되겠다. 다만 도시 외곽의 섬으로 갈 때나 도시를 가로질러 가려고 할 때 타게 되는 것이 워터버스인데 1회권은 6유로(*.*), 12시간권은 13유로, 24시간권은 15유로다. 36시간권도 있으니 베네치아에 머무르는 일정을 생각해서 구입하면 된다. 일단 시간권을 구입하면 워터버스와 외곽으로 나가는 시내버스를 자유롭게 탈 수 있다. 
  4. 숙박하기
    호텔이 지나치게 비싸서 자매민박을 찾았다. 피렌체에 있던 그 민박집과 같은 집인데 리알토다리와 싼마르꼬 광장 사이에 있어서 위치가 대단히 좋았고 피렌체 자매민박보다는 방을 좀 널찍하게 쓸 수 있어서 좋다.
  5. 먹고 살기
    역시나 식당 물가는 상당히 비싸서 먹을 만하지가 않지만 워터버스 카도로 역 뒷편 Strada Nova 길 변에 있는 빌라 슈퍼마켓을 이용하면 무척 싸게 먹을 수 있다. 무라노 섬에도 SPAR슈퍼마켓이 있는데 무라노 섬 내려서 남들 다 가는 운하길을 따라 가다 보면 표지판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