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쏘렌토 (카프리)

소렌토의 멋진 호텔 Mami Camila

과연 소렌토에는 만만한 호텔이 없었다. 예약 사이트에서 그나마 찾아낸 곳은 소렌토 가기 전 한 정거장 먼저 내려야 하는 SanAgnello 지역 뿐. 소렌토에서 나폴리 가는 길 중간에 펼쳐진 가촌인데 얼핏 보기에도 안정된 분위기가 느껴졌다. 역을 나서는 느낌이 우리나라 고즈넉한 소도시의 철도역에서 나오는 것 같다. 길에서 벗어나 해안쪽으로 10여분 걸어가면 절벽이 나오는데 절벽을 끼고 4성급 이상의 고급 호텔들이 즐비하다. 호텔에서 보는 소렌토 앞바다의 전망이라면 그보다 멋진 전망은 없겠지만, 뭐 절벽에 위치한 호텔의 모습을 보는 것 또한 절경이다(^^)

우리가 묵은 곳은 절벽에 면할 수 있는 정도의 급은 아니지만 단아한 테라스와 깨끗한 객실을 가진 Mami Camila 호텔인데, 이곳은 호텔로서보다 쿠킹클래스로 제법 이름난 곳이라 한다. 다른 호텔과 달리 진입하는 쪽에 주방문이 있고 넓직한 주방 안이 훤하게 들여다 보인다. 저녁마다 예약을 받아 디너파티(18유로/1인)를 하는데 거의 숙박객이라면 파티에 참가해서 질펀하게 먹고 떠든다. 우린 너무 비싸다고 생각해서 신청을 안했었는데 다들 밤 늦게까지 술도 마시고 이야기도 하는 품이 제법 근사한 분위기라서 사실 조금 후회했다. 18유로면 유럽 레스토랑 싼 식사 값인데 이값에 여는 정통 가정식 디너파티를 거절했다니.

이 호텔에서는 아침 식사 역시 정통 유럽 가정식 아침이다. 갓 구운 크로아상, 커피전문점 급의 커피, 직접 짠 쥬스, 수제 잼과 파이, 최고급 햄과 치즈로 구성되는 아침은 지금까지 여러 호텔에서 경험했던 유럽식 아침 식사(컨티넨털 브렉퍼스트)의 질이 얼마나 엉망이었는지를 일깨워 줄 정도로 고급스럽다. 지금까지 여행경험을 통털어 호텔에서 나오는 컨티넨털 브렉퍼스트 식사만을 경험하고서는 나는 유럽식 아침식사 문화가 너무 단순하다고만 느꼈었는데 이곳에서 생각이 확 달라지게 되었다. 갓 구운 크로아상이 이렇게 환상적인 맛인지를 처음 알았다고나 할까. 하지만 이런 호텔이 어디에 또 있을까? 한가지 궁금한 점이 있다. 아침에 나온 카푸치노 커피 말인데 커피에서 비린내가 나는 거다. 아니, 비린내라고 하긴 좀 뭣하고  커피의 향이 왕창 독하게 난다고나 할까? 다른 커피에서는 약간 비치는 듯한 향인데 그 향이 독해지니까 마치 비린내와 같이 된다. 이게 무슨 향인지 참 궁금하다.

술 좋아하는 소렌토 사람들?

포지타노 마을 다녀 오는 길에 소렌토 시가지에서 봐두었던 STANDA 슈퍼마켓에 들렀는데, 정말 재미있다. 단지 슈퍼마켓 정도가 아니라 소렌토 특산물 판매점이라고 해도 될 만큼 지역화되어 있었기 때문. 특히 술을 좋아하는 나는 소렌토의 특산물인 레몬을 원료로 한 레몬술을 필두로 감귤술, 크림 드 레몬, 크림 드 코코넛 등등 지역 특산 술 코너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이탈리아 북부부터 남프랑스, 이베리아반도를 다 돌아 봤지만 세상에나 포도주 빼고 이렇게나 특산 술이 다양한 지역은 처음이다. 카프리를 포함한 소렌토지역의 Forno(구멍가게)에서는 꼭 이 특산 술과 함께 다른 종류의 리커(독주)종류를 많이들 판다. 가격도 슈퍼와 별 차이 없는데 이곳 주민들 술 많이 먹나보다.

슈퍼에 진열된 술은 크림류의 술이 많았는데 17-20도이고 감귤주는 30도로 도수도 높다. 가격은 한병에 6.5에서 8유로 까지 다양해서 난 내가 먹을 크렘드 레몬과 아버지 드릴 감귤술을 샀고 경아씨는 소렌토 지역 치즈가 1.5유로밖에 안한다며 사들고 나왔다. 슈퍼에서 나와 포지타노에서 타고 온 STA버스표 사용시간이 빠듯했기에 전철역까지는 서둘러 걸었다. 버스표로도 전철이용이 가능했기 때문에 한 정거장이지만 타기로 한 거다. 산 것들이 무겁기도 하고. 마침 열차는 대기하고 있었고  숙소 전철역에 내려 큰길에서 숙소로 접어드는데 경아씨가 재미있는 곳을 발견했다.

"여보, 저기 포도주를 리터 단위로 팔아!"

경아씨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작은 가게 안에 스텐레스 통 여러개가 놓여 있고 수도꼭지가 달려 있는 거다.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포도주 전문 판매점. 일명 우리 옛 막걸리 가게 아닌가! 가게에는 아저씨들 여럿이서 줄을 서서 손에 페트병을 들고 서 계셨고 포도주는 종류별로 리터당 1유로부터 1.9유로까지 다양했다. 두 명의 주인 양반들 모두 내내 싱글거리고 기다리는 아저씨들도 느긋하기는 마찬가지. 우리가 들어가서 멈칫 거리는데 뒤에 온 아저씨 한 분이 포도주 통 가리키면서 뭐라 하시니까 주인이 컵을 가지고 오면서 그 아저씨에게 포도주를 시음시킨다. 그러면서 우리에게도 뭐 줄까? 하는 투로 말하길래 드라이한 걸로 달라고 한 뒤에 몇 가지를 시음해 봤는데, 어쩌면, 그리도 다 맛있을수가 있나. 술 못먹기로 이름난 경아씨도 맛있다고 홀짝홀짝 마신다. 내친 김에 경아씨가 주인에게 추천할 거 없냐니까 인상좋은 주인, 호기롭게 지하실로 따라 오랜다. 순간 긴장! 저 안에는 얼마나 좋고 비싼 게 있겠냐???

지하실은 포도주 보관소였는데 통은 단 하나다. 주인아저씨가 따라 줘서 마셔 보는데 첫맛은 달큼새큼하면서도 순간 세게 치대는 알콜의 느낌이 알싸하다. 그리고 나서는 순간 증발. 진짜 드라이한 거다. 아무래도 비쌀 거 같아...지레 겁먹고 물어 봤다.

"이거 얼마예요?"   "2.5유로예요"   "(25유로 아니다!) -_-;;;"

냉큼 가지고간 1.5리터 물병에 가득 채워 달라고 하니 3.75유로랜다. 땡큐 베리 머치! 하고 쥔양반이 말했지만 나도 땡큐베리머치다. 이런 곳을 발견하다니.

소렌토와 산 아그넬로 지역은 나폴리와는 정반대다. 밤에도 어둡지 않고 사람들도 곧잘 다니며 거리는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하다.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전혀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고 영락없는 우리네 시골 사람들 모습이다. 하지만 옷차림이라든가 주거 모양은 제법 부티가 흐른다. 이런 한적한 곳이라면 배낭여행자 모드에서 좀 벗어나서 한 사나흘 푹 쉬고 싶어지는 곳인데 안타깝게도 시간은 오직 하루 뿐.
산 아그넬로의 호텔에서 소렌토 시내까지는 Cocumella길을 따라 직진 하기만 하면 되는데 가다 보면 소렌토의 절벽위 마을 모습과 항구를 모두 조망할 수 있는 곳이 나온다. 이곳에 앉아서 항구를 보고 있으니까 저절로 돌아오라 소렌토로가 입안에 맴돈다. 이렇게 아름다운 항구를 떠나서 어디가서 잘 먹고 잘 살건가.

비경 포지타노

강씨민박 아주머니께서 소개해 주신 곳이다. 아말피 마을 가는 길 중간에 절벽을 깎아 만든 마을. 다들 아말피 마을로 가는데 아주머니께서는 이 포지타노를 빼먹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어차피 폼페이를 다녀온 만큼 시간이 많이 지나서 아말피까지는 가지도 못할 터라 포지타노를 다녀오기로 한 거다. 버스는 얼마 정도 산을 오르면서 마을 이곳저곳에 내리더니 산을 넘고 나서는 절벽길을 따라 달린다. 버스에는 꼭 오른쪽에 타라고 하신 아주머니 말씀대로 오른쪽으로는 절벽 저 멀리 아래 바닷물이 넘실대고 버스는 모퉁이를 돌 때마다 빵빵 거리며 모퉁이 너머에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40분쯤 달리니 절벽을 깎아 만든 마을 포지타노가 나타난다. 버스는 우리를 포지타노 센터에 내려주고 떠났는데 이곳이 마을의 중간쯤 되는 곳이다. (거리가 아니라 높이로 ^^) 아래 해변까지는 물론 차길도 나 있고 마을버스도 다니지만 우리는 사람 다니라고 만들어 놓은 직통 계단을 따라 해변으로 향했다. 마침 해가 질 무렵이어서 하늘은 붉은 색으로 변하고 있었고 해변에서 바라보는 포지타노 마을은 동화의 나라를 옮겨놓은 듯 하다. 이런 절벽을 깎아서 마을을 만들다니. 경아씨는 집 수리하는데 인건비가 많이 들겠다는 현실적인 (!) 전망을 내 놓기도 했다.

포지타노에서 돌아 올 때 탄 버스는 마침 나폴리행이어서 올 때와는 달리 산을 바로 넘어 나폴리 방향으로 직행하는 경로를 택했다. 시간이 늦었는지 기사분의 운전은 곡예를 방불케 했는데 오랜시간 동안 지나다닌 실력이라 위험스런 길을 가는 데도 거침이 없다. 올 땐 1시간이 걸렸지만 돌아간 시간은 겨우 20분. 쏘렌토라며 버스가 우리를 내려 준 곳은 처음보는 막막한 곳이어서 일순 당황했다. 역 앞이긴 한데 역이름도 없고 도대체 어디야? 하다가 역 안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아주머니께 물어 보니 (이탈리아어를 전혀 몰라서 손가락으로 역 바닥을 가리키며 Nom?하고 물었다.) Meta란 곳이라고. 쏘렌토 중앙역 4정거장 앞이다. 혹시나 하고 버스표를 티켓체크기에 넣어 보니 오케이! 열차를 기다려 쏘렌토 중앙역으로 돌아왔다.

카프리

카프리에 대해 별 정보는 없었다. 쏘렌토와 더불어 휴양지라고 알고 있었고 푸른동굴 정도가 꼭 가볼 만 한 곳이라는 것 밖에는. 하지만 나폴리 인근 지역은 여행의 말미에 휴식을 취하러 간다는 태도였기 때문에 그리스의 산토리니에 비견할 만한 지중해의 아름다운 섬으로 놀러 간다는 생각만을 가지고 카프리로 향했다. 맑은 햇살에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도착한 항구에는 한국인 단체여행객들이 하루를 보내신 듯 배를 기다리고 계셨는데, 이야기를 들어 보니 관광에 관련된 대부분의 시설이 운행을 중단하고 있다는 말씀이다. 잘 되었다 싶다. 이런 비수기라면 호젓하게 우리만의 노닥거림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니까.

깎아지른 하얀 절벽과 시리도록 푸른 바다와 울창한 숲 각각이 원색에 가까운 빛깔을 보내는 아름다운 곳. 항구에서 카프리 센터라는 표지를 따라 올라가는 길 역시 골목골목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이 살아오며 뿌리내린 흔적이 완연하다. 사람 둘 정도가 간신히 지나다닐 좁은 길 곳곳에 박혀 있는 예쁜 집과 문패들이 앙증맞고 호젓한 분위기다. 카프리 센터까지는 상당한 오르막이 계속되는지라 겨울철을 제외하고는 등산철도가 운행될 정도지만 길의 분위기에 빠진 사람에게는 힘든 느낌 조차 들어올 틈이 없다. 아침 날씨는 약간 차가울 정도지만 올라가는 동안 땀이 흐를 정도라서 잠깐씩 쉬는 휴식이 시원하다.

골목길을 20여분 오르니까 역시나 작은 카프리 센터 광장이 나온다. 벤치에 앉아 쉬면서 항구쪽을 내려다 보니 벌써 이만큼이나 올라왔어? 하는 놀람이 새어나온다. 광장에는 이렇게 쉬는 사람을 배려하기라도 하는 양 바다쪽 가까이 벤치가 놓여져 있어 휴식하면서 전망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었는데 아마 차를 타고 불쑥 올라오는 것과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올라오는 것은 휴식의 느낌이 다를 거다.

조금 쉬다가 아나카프리 쪽으로 향했다. 작고 좁은 길에 맞도록 이곳을 운행하는 버스 역시 앙증맞기 짝이 없고 사람들이 운송을 위해 이용하는 수단도 50CC 피아지오 오토바이를 개조한 듯한 귀여운 용달들과 전기자동차들이 다수다. 오토바이를 개조한 용달은 큰 소리도 소리지만 배기가스를 제법 내뿜기 때문에 길을 걷는 게 쾌적하지만은 않았지만 이곳의 깨끗한 공기가 그쯤은 수용하는 듯 , 마치 등산하는 것처럼 그리 힘들지 않았다. 걷는 도중 화장실이 급해져서 화장실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아 난감했었는데 길 가에 있는 작은 자동차 수리공장에 부탁하니 약간 계면쩍은 얼굴로 작업실에 있는 화장실을 안내해 주시는 모습이 무척 따뜻하다.

아나카프리로 가는 길은 구불구불한 도로 사이사이를 가로지르는 직통 계단길이 만들어져 있고 이런 길들은 사람의 통행이 무척 드문 듯 자연과 일체가 되어 있는 모습이어서 걷기에 재미를 더해 준다. 그리도 좁고 통행도 많지 않은 계단길이지만 숲이 울창한 곳은 낮에도 가로등이 켜져 있어 일정 정도 걷는 사람을 배려한 느낌을 주었다. 얼마간을 걷다 보니 항구에서 까마득하게 올려다 보이던 절벽가장자리 도로까지 왔나 보다. 아래에서 볼 때는 뭐 저런 곳에 길이 있어? 하는 식의 섬뜩한 길이었는데 역시나 도로변은 직강하 절벽인데다가 도로의 난간도 살짝 무너져 있어 무시무시할 정도다. 바이칼에서 고소공포증을 극복했다지만 이런 길에서는 다시 오금이 저려 도저히 서서 포즈를 잡을 수 없어서 주저앉아서 사진을 찍을 수 밖에. 경아씨가 놀리면서도 사실 자기도 움찔거릴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은 그야말로 절경이다. 2백여 미터 아래의 푸른 물빛과 까마득한 타운의 모습, 멀리 보이는 나폴리만의 모습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단체관광객의 경우엔 가이드가 위험하다고 했는지 그 난간쪽 까지는 가지 않는 모습이 완연했는데 우리는 배낭족. On my own risk인 거니까. 절벽길 아래 있는 사원 같은 건물에는 절벽길을 따라 내려가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아마도 예전에 수도사들이 쓰던 길이 아니었을까. 종종 절벽에 수도원 건물을 짓기도 하니까. 그 계단을 따라 내려가지는 못하게 막아 놓은 상태다.  절벽 아래서 봤을 땐 저런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제대로 떨리겠다 싶었는데 의외로 난간은 꽤 안전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그래도 안 가는게 차라리 나을 정도로 무서운 계단이다.

절벽길을 지나자 아나카프리에 다 왔는지 주택가가 보인다. 비토리아 광장에는 카프리 섬의 정상인 몬테솔라로 까지 올라가는 리프트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역시나 운행 중단. 내친김에 사람들 가는 데 까지는 가 보자 하고 주변 아저씨들에게 등산로를 물어 봤는데 지도에도 버젓이 표시된 Via Monte Solaro 라는 길이 맞았다. 정원과 같은 길을 조금 지나자 오른쪽으로 올라가는 오솔길이 나와 긴가민가했지만 골목 벽 표지판에 via Monte Solaro 라는 말이 보여서 확신하고 길을 올랐다. 하지만 지도에 제대로 된 길처럼 나온 것과는 사뭇 다르게 그냥 산 오르는 오솔길인데?

몬테솔라로 산에 오르는 건 수리산 등산보다 쉬웠다. 길은 험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오르면서 보이는 바다의 전망이 정말 시원했으니까. 길 중간중간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고 오르는 부조가 새겨진 바위가 보이는 것이, 아마 십자가 고난의 길로 쓰이지 않나 싶다. 리프트 정상의 맞은편 바위 정상에 제법 큰 십자가가 우뚝 솟아 있는 게 보였으니. 두번 쯤 쉬었나 보다. 쉬면서 어제 산 아그넬로 마을에서 산 됫병 포도주와 치즈를 간식 삼아 먹는데, 마치 우리나라에서 산에 오르다 막걸리와 김치를 먹는 것 같아 우습다. 막걸리 대신 포도주에 김치 대신 치즈라니. 이게 지중해식 등산법일까?

리프트 터미널이 있는 정상쪽은 나무가 울창하고 야생 수선화가 예쁘게 모습을 내밀고 있는 언덕이었고 십자가가 있는 쪽은 벌판에 가깝다. 갈림길에는 Monte Solaro 라는 표지판이 있었고 길이 계속 이어지는 걸로 봐서 산 너머 반대쪽으로 가는 길이 있나 보다. 날씨도 좋고 산도 적당히 가팔라서 우리나라 같으면 등산객들로 무척 북적일만큼 좋은 길인데도 오가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나마 오가는 사람들도 등산이 아니라 건너편으로 넘어가려는 사람들밖에 없는 것이 우리나라와 비교해 신기한 점이다.  워낙에 공기가 맑은 데다 바쁘지 않게 사는 사람들이기에 구지 산에 올라서 탁트인 전망을 봐야 속이 시원한 한국사람들과는 다른 정서를 가지고 있는 걸까?

십자가가 있는 꼭대기가 탁 트여 보여서 그곳에 올라가니 쏘렌토가 위치한 반도의 끝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온다. 산에 올라 보니까 미리 구글맵에서 확인한 바처럼 카프리 섬이 반도에 가까이 붙어 있다는 게 실감난다. 정상에 앉아서 싸온 빵과 치즈로 점심을 해결하면서 잠깐 쉬었다. 별로 올라온 것 같지 않을 정도로 힘도 안드는데 아나카프리 마을은 까마득하게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정상에서 보니 250미터 정도의 높은 고원지형에 있는 아나카프리 마을이 카프리 마을보다 훨씬 더 넓고 크게 주거지가 분포된 것이 보인다.

카프리까지 와서 등산을 하리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지만 모든 관광 시설이 멈춰 있었기에 시작한 등산. 생각 외로 다른 감동을 준다. 저 아래 항구부터 올라왔는데 만일 차를 타고 불쑥 아나카프리에 올랐다가 다시 리프트를 타고 정상에 올랐었으면 절대로 느낄 수 없었을 상쾌함이 남다르다. 이런 것이 시간에서 자유로운 배낭여행자의 특권이 아닐까.

조금 쉬고 나니 시간은 1시 40분. 원래는 차를 타고 항구로 내려가려던 생각이었는데 경아씨는 내친 김에 온 길을 뒤집어 걸어 내려가 보자고 한다. 어차피 계속 내리막이니 뭔 문제가 있겠나 한다. 속마음은 아까의 인상깊은 절벽길에 다시 가보고 싶어서라고 했다. 다시금 차만 다닐 뿐 인적은 드문 길을 따라 내려오면서 계단을 찾아 내려오다 보니까 올라올 때 봤던 계단과는 다른 계단이 하나 보인다. 아마 아래쪽 마을로 내려가는 계단이겠지 싶지만 아래쪽 마을 역시 평지가 아니라 나름 절벽위에 위치한 마을이란 걸 생각하고서는 왔던 길을 따라 내려왔다.  사람들 마음은 어디나 같아서 빙 둘러 내려가는 길에는 어김없이 직통으로 연결되는 계단이 있으니 그 마을에서 항구로 내려가는 길은 있겠지 싶었지만 우리가 타려는 배가 3시30분 배였기 때문에 모험은 포기하기로 하고.  내려오는 길은 태양의 위치가 달라 느낌이 달랐다. 어쩌면 생소하게까지 보이는 길. 역시나 빛은 풍경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항구로 내려 오니 3시다. 나름대로 카프리 완전정복(?)한 거라서 뿌듯하다. 가는 배 매표소 앞에는 그림지도가 설치되어 있고 마치 등산로 소개처럼 여러 루트별로 차와 도보로 소요되는 시간이 표기되어 있어서 이것 역시 도보여행하는 사람을 위한 배려가 아닐까 생각했다. 내려와서 생각하니 오늘 카프리 완전정복하는데 가장 큰 도움은 무거운 짐을 나폴리 강씨민박집에 맡겨두고 나온 것이 아닐까 한다. 짐을 지고는 도저히 올라가지 못할 곳이니까.

카프리는 크게 큰 항구를 가리키는 마리나 그랑데와 언덕 위에 있는 카프리 타운, 섬 반대편의 마리나 피꼴로, 항구에서 오른쪽으로 높이 보이는 절벽 건너편의 아나카프리 타운의 네 구역으로 나뉘는데 아무 정보 없는 상태에서 우리가 움직인 경로는 항구-카프리센터-아나카프리-몬테솔라로 산의 순이다. 하루를 카프리에서 묵을 요량이었으면 반대쪽 해변인 마리나 피꼴로까지 가 봤겠지만 저녁에 나폴리에서 로마 가는 완행을 타야 했기에 포기했다.

나폴리로 가는 배 위에서는 베수비오 화산의 언저리에 타운을 이루고 있는 나폴리와 인근의 폼페이가 마치 화산 자락에 얹혀 사는 것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다. 폼페이 번성기에도 저러 했겠지.

여행을 마친 뒤에 집에 돌아와서 카프리에 대해 개략적으로 알아 보니 이미 알고 있던 푸른 동굴 이외에도 아우구스투스의 정원, 황제의 저택이었던 빌라 요비스등 참고할 거리가 많은 곳인데 우린 그냥 자연경관만 즐기다 온 셈이다. 관광안내소에서 준 지도에 카프리 관광 포인트가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는 것도 돌아와서 알았다. 무료지도는 설명이 독일어였고 1유로 받고 파는 지도가 자세한 영어판이었는데 무료지도를 선택한 우리로서는 뭐가 뭔지 알았겠나. 아마 영어판 지도를 샀으면 조금 더 알차게 카프리를 여행 했거나 지도에 표시된 관광지를 쫓아 가는 핵심체크 위주의 재미없는 관광을 했거나 둘 중의 하나일 거다. 아마 후자쪽이겠지.  폼페이에서 느겼던 것처럼 상세한 가이드북을 가지고 나면 가이드북에 일정정도 종속되는 경향이 있으니.

이렇게 아무 정보도 없는 쪽이 무목적한 여행이 주는, 펼쳐진 길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찾기에 좋지 않을까 싶다.


소렌토, 카프리

  1. 소렌토 외곽 포지타노, 아말피 마을 가기
    빼어난 절벽 절경으로 유명한 포지타노, 아말피 마을은 소렌토에서 STA버스로 이동한다. 소렌토역 바로 앞에서 버스가 출발하며 표는 역 아래 교차로에 있는 바 (BAR)에서 구입한다. (이 표로 전철 이용도 가능했다.) 소렌토에서 포지타노까지 1시간, 다시 포지타노에서 아말피까지 40여분 걸리는데, 이용되는 버스는 소렌토-아말피간 버스다. 때에 따라서는 소렌토-살레르노까지 운행하는 것도 있다. (역 앞 STA버스 정류장에 노선과 시간표가 있다) 돌아오는 것을 감안해 왕복표를 끊어야 한다. (포지타노까지 왕복 2.8유로)
     
  2. 쏘렌토에서 카프리로 이동하기
    카프리까지 가는 제트포일은 8시30분 부터 대략 1시간마다 있다. 아침에 일찍 카프리로 가야 카프리를 충분히 즐기고 나폴리로 들어갈 수 있다. 편도 13유로, 25분 걸린다.
  3. 카프리에서 나폴리로 이동하기
    나폴리로 가는 배는 페리와 제트포일 등 자주 있으며 항구에 있는 투어 인포메이션에서 배 시간을 알아보면 된다. 제트포일은 40분, 페리는 종류에 따라 50분걸리는 것과 1시간30분 걸리는 것이 있다. 우리는 페리를 탔는데 제트포일급으로 대단히 빠른 배였고 가격은 쏘렌토-카프리 구간과 비슷한 13.5유로였다.
     
  4. 카프리 내부 이동
    항구, 카프리, 아나카프리 각각을 연결하는 정기 소형버스가 있고, 항구에서 카프리센터까지는 등산열차(푸니쿨라)도 다닌다. (등산열차는 겨울엔 운행 안함) 도보로 이동도 가능한데 항구에서 카프리센터까지는 직통 오솔길을 이용하면 25분정도 걸린다. 항구에서 아나카프리까지 가려면 도보로 50분정도 걸리지만 돌아올 때는 30분 정도다 (내리막이기 때문에 쉽다.)
    유명한 카프리의 푸른동굴은 비수기엔 가는 배가 없지만 항구에서 카프리 섬 주위를 도는 보트를 운행하는 분이 섬을 돌아보지 않겠냐고 물어 보시는 걸로 봐서 그 보트라면 동굴로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5. 숙박하기
    소렌토에서는 전철 종점 바로 앞 역인 Sant Agnello역에서 조금 해변쪽에 위치한 Mami Camila 호텔에 묵었다. (50유로, 인터넷으로 예약), 카프리에도 숙박업소는 있는데 주로 고급이다.
  6. 먹고 살기
    소렌토 중앙역을 나와 광장에서 왼쪽으로 조금만 가면 STANDA 슈퍼마켓이 있다. 단지 슈퍼가 아니라 지역 백화점 같은 분위기로 온갖 잡화와 옷, 식품과 소렌토 특산품을 판다. 특히 이곳의 소렌토 지역 술은 별미. 선물용으로 포장용기가 참 예쁘기도 하다. 소렌토와 산 아그넬로 시가지에는 군데군데에 잡화점인 Forno가 있고 가격도 비싸지 않아 이용할 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