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홈 :: 2013 발칸/동유럽
1.11 (금) 소피아, 불가리아 게바라 : 아침 8시에 간단한 식사를 한다. 사샤가 팬케잌을 구워 준다. 릴라 가는 길은 미카엘에게 전화로 들었다. 5번 트램을 타고 11 정거장 가면 버스정류장이 있다고 한다. 트램은 느렸고 버스정류장은 12번째 였다. 방송을 알아들을 수가 없어 손으로 꼽아 가며 센다. 정류장에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들이 많았다. 대합실 안의 할머니가 친절하게 쪽지에 적어 차편을 알려 주었다. 1인 11이다. 주변에 학교가 있다. 일찍 도착한 셈이어서 근처 수퍼를 향한다. 길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서 눈싸움을 하던 남학생들 중 건너편의 한명이 나를 맞춘다. 쳐다보니 벌써 도망갔다. 국적을 초월해 이 나이 애들은 똑같다. 수퍼에서 말린 과일 등을 샀다. 남편이 고른 보리 미숫가루 같은 액체는 맛이 기묘했다. 시고 달고 사카린 맛이 난다. 아나키 : 릴라사원 스태프에게 릴라 사원 가는 길을 물었다. "릴라 가려면 센트랄 버스터미널 가면 돼? "쉬워. 트램길 따라 가다가 저기 사자상 있는 건물에서 트램 5번타고 11정거장 가면 돼. 거기 오브차쿠펠 터미널에 가면 있어." 법원 앞에서 트램이 어디 서는지 잠깐 헤메다 찾았다. 트램에 올라 운전기사 뒤에 마련된 티켓발권기에 1레바 넣으니 티켓이 찍 나왔다. 동전밖에 못써서 불편하다. 숙소 스탭인 싸샤가 11정거장이라기에 정거장을 세며 갔다. 방송소리도 들어 봤다. 쏼라..콤플렉스 히포드롬 ... 하는 말이 들렸다. 지도를 잽싸게 꺼내 위치를 확인해본다. 하지만, 좀 더 확실하게 하려고 주변 청년에게 물었다. "릴라 가는 버스정류장은 어디서 내려요?" "다음 정거장이예요." 그런 뒤 우리가 내릴 때 한번 더 방향을 가르쳐준다. 친절하기도 하지. 터미널 티켓부스에서 릴라가는 표를 물으니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께서 소피아...프맨...릴라.. 뭐라뭐라 하며 쪽지에 내용을 써주셨다. 여기서 10:20 출발, 13:00도착, 릴라에서 3시 출발, 소피아 5:30 도착. 릴라가는 차 안에서 생각했다. '난 여기에 왜 가는 걸까?' 차만 타면 이내 졸린다. 저녁에 잠을 잘 못잔 탓도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여행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 고갈 때문이다. 난 오늘까지도 이번 여행을 왜 왔는지 근본적인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그냥 관성적으로, 한 번은 가 봐야 할 것 같기에 여기에 온 것 같다. 마눌님 경아는 나와 다르다. 여행에 대한 근본적인 호기심 있고 흥미진진하게 일어나는 일을 바라보는 편. 새로운 여행지에 대해서 강한 호기심도 유지한다. 우리가 탄 소형 버스의 앞쪽에 슬라브 국가 중 한곳에서 온 듯한 처자 둘이 탔다. 불가리아어도 잘 통하고 들은 내용을 우리에게 영어로 친절히 전해 주어 많은 도움을 주었던 이들. 뒤에서 보는 그 둘의 모습은 여행을 처음 했을 때 처럼 호기심 가득 차 눈에 보이는 갖가지 것들을 담고자 발랑하게 움직인다. 내가 잃어버린 모습. "당신이 늙은 거야." 마눌님이 그런다. 그렇다. 이건 분명 의식의 노화현상. 학교에서 맞닥뜨리는 많은 감정노동 상황을 이성적으로 끌어 나가기 위해 의도적으로 감정을 통제한 결과, 그만, 무뎌져 버렸다. 이게 바로 노화라면 노화다. 눈 앞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miracle임을 알고 흥미진진하게 바라보라고 했거늘, 종종 의식의 노화상태인 미망에 빠진다. 이래서는 안될 것 같아. 릴라 수도원가는 버스를 갈아타는 마을에 섰다. 20분 기다려 릴라수도원 가는 버스로 갈아탔는데 같이 타고 온 사람들은 차비를 안낸다. 마을에서 새로 탄 사람들은 다 내고 타는데. 뭔일인지 궁금했지만 물어 볼 용기가 안났다. "저 처자한테 물어 봐. 당신의 틀을 벗어나서." "디쥬 페이 더 버스 피?" "위 올레디 페이드. 앳 더 블루 원." 처자의 명쾌한 대답. 우리가 소피아에서 타고 온 차에서 이미 냈다는 이야기. 맞다! 아까 버스비 11레바 낼 때 왠지 10레바짜리 표 하나, 1.10레바짜리 표 하나 해서 두 장을 끊어 주더라니. 릴라 사원 올라가는 길에선 점점 눈이 많이 오고 있다. 미니버스 운전사 아저씨는 능숙하게 빠른 속도로 올라가고 있다. 30여분 정도 올라가는 길. 어쩌면 강원도 오대산 중의 사찰에 찾아가는 길 같기도 하다. 올라가는 동안엔 몸과 마음 모두 다 조금 더 깨어 있도록 집중했더니 좀 낫다. 릴라사원 앞에선 소형 불도저가 눈을 계속 치우고 있다. 무척 춥다. 사원을 느껴보기보다 먼저 추위가 엄습한다. 메쉬 재질 신발 앞쪽으로 눈 물이 들어왔는지 발가락이 어는 느낌이다. 마눌님이 자기가 신고 있던 수면양말을 내게 주어 좀 낫긴 했지만 한번 얼어버린 발가락이 쉬 돌아오지 않는다. 사원 중앙의 교회에 갔다. 교회 외벽엔 불교의 사원처럼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내용이 그림으로 나타나 있다. 하늘나라와 지옥의 대비, 악마의 속삼임과 그 꼬임에 빠진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뱀들, 악마가 온갖 방법으로 예수를 유혹하는 장면 등등. 조금은 유치한 듯 하지만 당시의 무식자들을 교화시키는데는 효과적이지 않았겠나. 하지만 저 유치한 설정들이 현대 기독교에 까지 이어져 악마의 이미지를 그와 같이 고착화시키고 있다는 데 안타까움을 느낀다. 실제 악마가 저 그림에서와 같이 두 개의 뿔에 박쥐의 날개에 새의 부리를 가지고 회색 몸체에 사자의 꼬리를 가졌다고 믿는 분들이 계서서다. 악마가 악마처럼 모습을 하고 있으면 누가 악마의 꼬임에 빠질까? 진정 악마는 우리가 그의 꼬임에 빠지는 줄도 모르게, 그의 논리를 찬양하게 만드는 그런 모습으로 나타날 것인데. 수도원 2~3층으로 올라간 이들이 있어 우리도 따라 올라갔더니 안내하시는 듯한 분이 몸짓으로 뮤지엄에서 표를 끊어야 된다고 하길래 그냥 구경만 하다 내려왔다. 수도원 회랑을 따라 걷다가 좀 덜 추운곳에 앉아서 싸온 도시락을 몰래 까먹었다. 뭐, 밥 먹지 말라는 말은 없지만 아무도 수도원 안에서 먹을 것을 안 꺼내는 분위기라... 추위에 기다림이 길어, 3시 경 차 문이 열리고 차 안으로 들어갈 때 얼마나 고맙던지. 릴라 마을까지 오는 길 내내 발가락 녹이면서 내려왔다. 학부모 영농단 같이 하는 윤배형님은 에일듯이 추울 때 삶의 실감을 하신다지만 난 글쎄... 넘 춥기만 한걸! 게바라 : 10시 20분 경 출발. 작은 미니버스에서 졸면서 간다. 어제 기차에서 본 풍경과 비슷하다. 산지와 벌판이 넓게 펼쳐진다. 릴라 마을에 도착했다. 주변 집들은 통로와 집 앞을 포도나무를 이용하여 채양을 만든다. 사람 키 높이 이상으로 키워 양쪽으로 벌린다. 효과적인 태양 가리개다. 이왕이면 등나무보다 먹을 수 있는 포도나무가 실용적이지. 앞으로 시도해 보고 싶다. 20분 정도 후에 릴라사원 가는 마을버스가 왔다. 설악산에 오르듯 눈 온 길을 하염없이 30분경 오른다. 마을버스비는 처음 낸 11에 포함되어 있다. 영어를 못하니까 버스에 탄 영어가 가능한 언니에게 계속 물어 본다. 산 위로 갈수록 눈이 더 내리고 설경이 펼쳐진다. 1시 20분쯤 도착했다. 깊은 산속에 이런 규모의 수도원이 있을까. 불가리아 정교의 정신적 지주라는 이 사원, 일단 멋지고 아름답다. 우리나라의 산 속 절 같은 이미지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사진에서 본 색색의 문양이 색돌을 끼워 넣은 것이 아니다. 단지 회벽에 그린 것에 불과하다. 스페인에서 본 메스키타를 상상했는데 전혀 아니다. 이슬람은 모든 것이 진짜 이건만 돈과 물자가 별로 없었겠지. 좀 실망이다. 그래도 사원의 경건함이나 수도사들의 풋풋한 모습이 보기 좋다. 이콘들도 정교하고 하려하다. 엄청난 눈 때문에 처마 끝에 큰 고드름 침이 생겼다. 떨어지면서 사람들을 찌를까봐 수도사 둘이 눈덩이로 열심히 던져 맞히려고 한다. 얼굴도 스님들처럼 순하다. 남이 다칠까 생각하는 마음이 인상적이다. 사원 뒤편의 가게들도 겨울에는 다 문을 닫는다. 산의 나무들은 설화를 피워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모습이다. 계속 눈이 내려 혹 못 갈까 걱정도 된다. 3시에 떠난다는데 쉴 곳이 없다. 남편은 너무나 추워한다. 의자에 앉아 빵과 치즈를 먹었다. 몸이 좀 얼고 나서야 3시 차를 탔다. 다행히 마을에서 기다리지 않고 바로 대형버스로 갈아타고 소피아로 간다. 졸다가 터미널에 도착했다. 5번 트램타고 돌아와서 환전소를 찾으며 춤 백화점에 갔다. 여러 점포가 들어 있다. 로즈 오일이 든 핸드크림과 향수를 10에 샀다. 싸고 질이 좋다. 세계 최대의 장미 산지이니 의미 있는 물건이다. 환전소 환율이 너무 안 좋다. 결국 버스터미널까지 걸어간다. 어제와 같은 환율로 환전(100유로, 10달러). 9시 30분 스코피에 가는 표를 1인 32에 끊고 걸어온다. 시내의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성당에 갔다. 상상했던 것보다 크고 아름답다. 특히 문 위의 모자이크 이콘이 아름답고 완벽하다. 밤이라 사람도 없다. 주변이 한가해서 한참 둘러보았다.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우린 이렇게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지붕에 그렇게 호화로운 금박이 필요했을까. 미얀마의 부처공이 떠오른다. 예수가 이런 호사스런 성당을 원하지는 않았을 것인데.. 어쨌거나 눈요기는 잘했다. 빌라에 들러 삼겹 양념고기 등 내일 점심 쌀 것을 샀다. 아나키 : 알렉산더 네프스키 성당 내일 스코피에 가는 차표를 끊고 나서 마지막으로 네프스키성당이나 보자고 발걸음을 돌렸다. 춤 백화점 뒤편으로 여러 개의 국가 기관,박물관 건물들이 줄지어 있다. 건물들이 세워진 가운데 길은 벽돌포장길. 길가 건물들의 규모는 웅장, 압도. 이게 불가리아 왕국의 호화로움인가? 네프스키 성당은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된다. 특히 인상적인 건 출입문들 위에 나타난 모자이크화들. 모자이크로 섬세하게 표현된 생동감 넘치는 표정이 아름다웠다. 다른 곳에선 성인의 모습을 나타내는 데 그쳤다면 네프스키성당의 모자이크 이콘은 나타난 성인들의 감정까지 엿보게 해 준달까. 게바라 : 숙소에 짐을 놓고 전통 식당에 가려고 사샤에게 물었다. 우리나라 여자분 2명이 와 있다. 같이 식사하러 가잔다. 사샤가 어떻게 알려준 건지 길 자체도 다른 곳이었다. 포기하고 '해피 바 & 그릴'에서 리조또와 생선 지짐, 맥주를 마시며 여행 다닌 얘기들을 들었다. 짜고 맛도 별로다. 게다가 병맥주를 주다니 실망이다. 그런데 웬 사람이 그리 많은지... 이 여자 분들은 거의 1년 간 여행할 예정이며 이미 발칸도 다녀왔단다. 갈 곳과 주의 사항들, 경험한 에피소드를 들었다. 나는 졸지에 발칸의 역사를 강의하게 되고. 한참 얘기하다 12시 넘어 집에 와서 내일 가져갈 식사 준비를 한다. 재워진 고기를 굽고 그 기름에 야채를 볶는다. 밥도 해서 같이 곁들여 한 접시 주었다. 맛있게 드신다. 그런데 불을 잘못 켜면서 인덕션의 오븐 불도 켜 놓았다가 그만 오븐 안에 있던 플라스틱 국자 대가 녹았다. 사고를 친 거다. 낼 아침 사샤에게 고백하고 물어 주어야 한다. 왜 이리 기계를 잘 못 다루는지... 피곤해서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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