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베리아-바이칼여행 - 8월2일(화)

6. 8월 2일 이르쿠츠크

워낙 좋은 새 숙소의 독방을 차지해서 푹 잘 잤다. 창밖을 열어두면 맑고 청명한 공기가 들어와 방이 시원해진다. 바깥은 나무들이 보이는 주택가이다. 서늘한 탓인지 모기는 들어오지 않는다. 원목침대는 우리 식으로 딱딱하고 편하다. 게다가 이 숙소의 마루는 오래된 나무로 매끄럽고 대단히 좋아서 우리 집도 이랬으면 하고 생각할 정도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바닥에서 요가도 하고 모두가 주로 깨끗한 이 마루에 앉아 생활을 한다. 잠은 2층을 좋아하는 해안이 만 올라가서 자고 우리는 아래서 잔다. 이 방은 4인실인데 우리뿐이다.

8시 반에 모두를 깨워 아침식사. 비록 빵과 차 등이지만 가격에 포함되어 있다. 거주지 등록을 위해 여권을 맡겨두고 나간다. 리다의 말대로 경찰을 만나서 봉변당할 일은 거의 없다니 믿기로 했다. 복사를 못해서 어쩔 도리도 없지만 왠지 이곳은 분위기가 느긋해 보이므로 별 걱정이 없다. 리다는 24시간 근무를 마치고 미소가 아름다운 여주인 율리아와 교대했다. 메일을 주고받으며 '율리아와 알렉세이로 부터'라는 말을 토대로 볼 때 둘이 부부라고 생각했다. 부부냐는 내 말을 듣고는 부부가 아니라 동업자라며 한참 웃는다. 짱돌같이 단단하고 일 처리가 빠르며 화통한 리다와 명랑하고 사람이 좋으며 항시 덜렁대는 처녀 율리아, 먼저 만난 순박한 안드레이는 모두 친구 사이로 22살의 영어를 할 줄 아는 젊은 친구들이다. 영어 만 잘해도 돈이 보이는 곳이 이곳이다. 숙박비가 얼마나 비싼가! 이 틈새시장을 노리며 돈을 잘 벌고 있다.

집을 나서서 공원 앞에서 대규모의 시위대를 만났다. 경찰도 많이 나와 있고 신기한데 무엇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우선 버스터미널로 열심히 걸었다. 아침, 저녁으로 날이 서늘하여 긴팔을 입고 다닌다. 창구에서 표를 끊으려고 글을 읽고 다녀도 알혼 섬이라는 글씨가 없다. 주변에 물어도 영어를 못하니 그냥 아무데나 줄을 섰다. 다행히 남편이 러시아어로 "알혼, 바이칼, 내일, 8시, 세장!" 이라고 한 몇 마디 말로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 직원이 금방 알아듣고 친절하게 금방 끊어주었다. 우리의 힘으로 표를 샀다는 것이 어찌나 신기하고 기쁘던지 서로 좋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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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베츠카야의집

그 곳에서 가까운 데 있는 데카브리스트들의 집 중 하나인 '트루베츠카야'의 집에 갔다. 쉬는 날이라 닫혀 있다. 다시 주변의 '볼콘스키 공작'의 집에 가다가 그 앞의 조그맣고 예쁜 러시아 정교 성당에 들어갔다. 고요한 내부를 구경하고는 성물 파는 곳에서 구경을 하는데 할머니께서 완벽하고도 세련된 영어로 이것저것 설명을 하셔서 깜짝 놀랐다. 어떻게 영어를 배우셨을까? 이르쿠츠크에서는 영어가 되는 러시아 사람을 가끔 만날 수 있어 참 반가웠다. 사실 영어를 하는 서양여행자들만 만나도 너무 반갑다. 아주 드물기 때문이다. 해안이는 작은 십자가 목걸이를, 남편은 예수 얼굴이 들어있는 목걸이를 샀다.

볼콘스키의 집은 1인당 120R 씩이나 받았으나 충분히 가 볼 가치가 있는 의미 있는 곳이었다. 우리가 러시아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데도 안내해주는 할머니는 열심히 설명을 하신다. 몇 가지의 단어, 표정, 몸짓만으로도 그들이 했던 일과 의미를 짐작할 수 있을 만큼 설명을 듣는 것은 의미가 있었다. 할머니의 진지하고 적극적인 태도에서 러시아인들이 볼콘스키를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아이들에게도 전기로 읽히기 위해 많은 책들이 만들어졌다.

러시아 말을 모르는데도 왠지 알아들을 만 하다는 우리의 태도는 그 상황이 아니라면 이해하기 힘들 것 같다. 볼콘스키의 삶은 그만큼 감동적이었다. 왕에 반기를 들고 공화정을 만들려는 혁명시도와 좌절, 시베리아로의 유배, 목숨을 걸고 따라 온 부인 마리아의 소설보다 더 아름다운 이야기. 그들은 시베리아의 이르쿠츠크를 '동양의 파리'라고 불리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후세에 귀감이 되는 인물이 되어 결국 러시아 혁명을 이끈 토대를 만들었다. 내가 그나 그의 부인이었다면 과연 공작의 기득권을 버리고 민중을 위해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만감이 교차되는 장소였다. 시대를 앞서간 뛰어난 인물이다. 사진 속 그의 눈빛에서 선량함과 단호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톨스토이의 외숙으로 '전쟁과 평화'의 모델이 되었다. 이런 분이 외숙이었으니 그렇게 멋진 톨스토이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데카브리스트들의 삶을 진하게 느낄 수 있는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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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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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장도시락점

다시 어제 갔던 중앙시장에 갔다. 조금을 사도 서비스가 좋았던 과일가게의 그 청년에게 갔다. 이름을 물으니 세르게이란다. 착하고 성실하게 뵈는 청년이다. 천도, 자두, 사과를 샀는데 역시 다른 과일 하나를 덤으로 더 준다. 시장의 안쪽 건물에서 피자 빵, 화이트 초콜릿 케잌?사 먹었는데 맛이 좋다. 완제품으로 만들어진 요리된 음식들도 많다. 고기 전, 닭튀김, 소시지와 밥, 고기만두를 사서 바깥의 그늘에 앉아 먹었다. 먹는 품새는 완전 부랑자 스타일이다. 맛이 있으면 그만이다.

0802.수병들을찍다.jpg과일까지 챙겨 먹고 이웃해 있는 백화점에 들어갔다. 우리와는 달리 러시아는 상가의 상점스타일로 나뉘어져 있다. 물건의 질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 나와서 중심가를 걸어 미술관에 갔는데 입장료는 140이나 된다. 그림들이 괜찮은 편이고 오래된 이콘 들과 암각화 등을 볼 수 있다. 대형 수퍼에 들렀다. 몇 가지 음료를 산 후 앙가라 강 쪽으로 가다가 레닌동상이 서 있는 공원에 앉아서 먹으며 레닌에 대한 이야기를 해안에게 들려주고는 다시 걸었다. 아침에 시위하던 그 사람들이 이제 해산을 하는 모양이다. 수군 복장의 청년들 한 무리가 맥주를 마셨는지 약간 취해 비틀거리며 걸어온다. 처음에는 마주치다 무슨 행패라도 부릴까 봐 약간 저어되었지만 순진해보여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오히려 그들은 기념으로 펜을 달라고 한다. 없다고 하니까 사진을 찍어달란다. 찍고 나서 보여주니 좋아하는 모습이 명랑하고 무척 귀엽다. 참 악의 없는 사람들이다.

강가에 도착하니 날은 화창하고 바람이 많이 불어 시원하면서 서늘할 지경이다. 호버크래프트가 강을 떠다닌다. 들렀던 수퍼에 다시 가서 장을 보고 숙소로 돌아오는 도중 고려공산당 터의 건물 번지를 찾아 확인해 보았다(그곳이라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아닌 듯). 숙소에 와서 사온 스테이크, 닭, 연어, 과일과 빵 등을 먹었다. 0802.앙가라강소공원에서1.jpg율리야에게 여권을 찾으려니까 아예 자기에게 맡겨 놓으면 기차표를 끊어 놓을 터이니 여권 복사물만 가져가라고 한다. 1인 1700R 정도에 6인실(쁠라쯔까르타)을 끊어 놓겠단다. 4인실을 1인당 4000R 넘게 주고 온 우리는 고마울 밖에. 율리야가 알려 준 인뚜리스트 호텔에 복사하러 갔더니 8시가 다 되었는데도 쉽게 금방 해준다. 옆의 강가로 내려가 물에 발을 담그어 보았다. 바이칼의 예행연습이랄까... 그런데 얼음장같이 차다. 주변에 맥주병도 많이 깨져서 흩어져있고 물속이 좀 미끈대기는 하기만 그래도 깨끗한 편이다. 숙소에 와서 율리야에게 돈과 여권을 주고 쉬고 있던 해안이를 데리고 다시 강가로 갔다. 누가 물속에서 오래 견디나 발 담그기 내기도 하고 사람들이 강물로 막대기를 던져 개가 가져오도록 훈련시키는 모습도 본다. 9시가 되어도 긴 해와 시원한 바람, 청량한 날씨의 전형적인 북구의 여름이 아름답기 만하다. 숙소로 돌아와 일기를 쓰는데 어제보다 시원하건만 모기가 들어와 자꾸 문다. 문을 계속 열어 놔서 그런가. 일찍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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