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베리아-바이칼여행 - 8월3일(수)

7. 8월 3일 알혼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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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혼가는버스

7시에 모두를 깨웠다. 아침 식사로 주는 빵에 치즈를 끼워 싼 후 짐을 챙겨 출발했다. 30분을 열심히 걸어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후지르 마을로 가는 큰 버스가 오길래 오르려 했더니 표를 확인한 아저씨는 아니라면서 내리란다. 이 차는 10분 차이고 잠시 후 작은 미니버스가 왔다. 8시 20분 차다. 작고 자리도 별로지만 그럭저럭 앉아서 갈 만 했다. 차츰 날씨가 쨍해졌다. 넓게 펼쳐진 평원의 풍경이 몽골의 들판과 똑같다. 중간에 휴게실이라며 잠시 들린 곳의 화장실은 이름만 화장실이지 거의 방치된 곳으로 많이 더러웠다. 맑은 날이지만 무척 춥다. 차에서 정신없이 졸다보니 4시간 만에 선착장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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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휴르타선착장에서

깨어나서 처음 본 모습이 가 본 적은 없지만 꼭 그리스 같다. 내가 그림 속에 던져진 듯하다. 사람들은 내려서 주로 산책을 한다. 어떤 이들은 벌써 비키니 차람으로 누워 일광욕을 한다. 맑은 물을 들여다보면서 만져도 보고 건너편 절벽 위로 올라가 보기도 한다. 물이 알가라 강물보다는 덜 차갑다. 모든 것이 다 아름답다. 차들이 길게 줄을 서서 배타기를 기다리는데 우리의 요령 있는 기사 아저씨는 원주민의 특권인지 바로 앞에다 대어 버렸다. 먼저 출발했던 큰 차는 우리보다 나중에 와서 뒤쪽에 섰다. 작은 가게에서 크로켓 비슷한 튀김 빵을 사 먹었다. 첫 번 배가 오자 아저씨가 버스를 먼저 차를 실었다. 건너편 까지는 금방이다. 같은 버스에 탔던 러시아 가족과 인사를 나누었다. 손녀딸 이리야는 수줍음이 많다. 차에서는 해안이가 애완동물 잡지도 빌리고 자일리톨 껌을 주었다. 할아버지는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말에 엄지손가락을 들어서 내민다. 러시아인들은 한국 사람에게 호의적이다.

가까운 거리라서 배는 금방 도착하였다. 선착장에는 나가는 사람과 차로 붐비는데 모두 짙은 구리 빛 피부들이다. 이 사람들은 심할 지경으로 태운다. 우리가 백인같다. 이번에는 알혼 섬의 길을 달린다. 풀도 적은 허허벌판, 거의 민둥 벌판과 언덕의 초원이다. 중간에 걷다가 지쳐 버린 러시아인 가족들을 태웠다. 이런 날씨에 걷다니 시도 자체가 대단하다. 누가 알혼 섬을 걸어서 구경하고 싶다는 무서운 말을 감히 했을까. 날씨와 풍광이 거의 사막스럽다. 후지르 마을의 중간에 차가 한번 서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렸는데 어쩔까 망설이다가 그냥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차는 꺾어져서 좀 더 가다가 소나무가 있는 길의 끝에 섰다. 이리야의 가족들도 여기서 내려 눈앞의 집(숙소)으로 쏙 들어가고 우리 만 남았다. 불과 잠시 동안 서 있었을 뿐인데도 새로운 곳이라는 생각에 막막한 느낌이다.

그때 아주머니 한분이 다가왔다. 러시아 말을 하면서 몸짓으로 자기 집에서 묶으란다. '니키타의 집'이나 '손네취나야'에 갈 거라니까 바닥에 써가면서 니키타는 500R, 손네취나야는 700R, 자기 집은 자는 것이 150R, 먹는 것을 합하면 350R 이니 자기 집이 더 낫단다. 이름을 물으니 '안나'라고 한다. 일단 니키타와 손네취나야가 어딘지 물으니 푸른 체크무늬의 내 남방에서 붉은 줄을 집고는 멀리 왼편으로 보이는 붉은 지붕의 집을 가리킨다. 그곳이 니키타의 집이란다. 다시 푸른 색을 집고는 오른 편의 푸른 지붕을 가리키며 손네취나야라고 말한다. 이 아줌마의 뛰어난 적응 능력에 놀랐다. 서로 말이 안 통해도 거의 완벽하게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니키타, 손네취나야, 안나"라고 말하면서 순서대로 그 집들의 방향을 가리켰다. 다 다녀보고 마지막으로 안나 집에 오겠다는 얘기다. 고개를 끄덕인다. 뜨거운 볕 속을 열심히 걸어 니키타의 집에 갔다. 대기가 맑기 때문에 눈에 잘 보이던 니키타의 집이 꽤 멀다. 짐은 무겁고 더운데 걷기가 만만치 않다. 해안이는 마을 길을 걷다가 이상한 풀인지 벌레인지에 쏘였는데 무척 아프다고 난리가 났다. 모기 물린 것처럼 줄줄이 부풀어 오른다. 니키타의 집은 좋으나 사람들이 북적대는 것이 시장통 같이 정신이 없다. 정신없는 것은 싫어서 그곳에서 만난 한국 사람의 소개로 주변의 민박을 돌아보았지만 방은 없다. 다시 언덕을 너머 손네취나야로 간다. 멀리 사막 같은 곳과 다른 편의 타이가 숲이 보이는 언덕이다. 사막 너머에는 넓은 바이칼의 해변이 보인다. 이곳은 통나무집이 한 채씩 떨어져 있다.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하며 니키타와는 완전 반대로 절간 분위기이다. 조용함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제격이겠다. 그러나 여기까지 와서 저런 고요함에만 빠진다면 지루할 것이다. 숙비는 650R 이나 하지만 방도 없다.

돌아다니면서도 내내 역시 러시아인의 생활을 체험하기에는 적극적인 안나 아줌마의 집이 낫겠다는 말을 서로 나누었다. 자연스레 안나의 집으로 갔다. 넓은 마을을 짐을 메고 가장 더운 시간에 걷기란 쉽지 않았다. 아줌마가 우리에게 보여준 건물은 집의 본채이다. 여름동안 식구들은 마당 건너편의 별채를 쓴다. 본채로 들어서면 신발을 벗어 놓는 공간과 식탁이 놓여진 식당이 있고 방 3개에 거실이 있다. 거실에는 장, 소파, 사진들, TV, 이콘 등 살림살이가 그대로 놓여있다. 우리 방은 안쪽이다. 침대가 두 개 밖에 없길래 3개가 필요하다고 했더니 한명은 소파에서 자라는 몸짓을 한다. 우리는 식구니까 한방에서 자야 한다며 딸과 같은 침대를 쓸 터이니 딸은 식비만 받으라고 흥정을 하여 1050R이 될 것을 900R에 합의 봤다. 온갖 몸짓과 숫자가 동원된 거래이다. 아줌마는 내일 영어교사인 딸이 이르쿠츠크에서 올 것이라고 한다. 우리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을 거라는 얘기다. 방은 창밖으로 아줌마의 온실과 야채밭이 보이는 포근한 곳으로 시트도 깨끗하고 수납공간도 많아 아주 좋다. 우리 방이 안방이다. 거울장 뒤에는 아줌마의 약품이며 살림들이 그대로 들어있다. 드나들 때는 뒷마당을 가로질러서 작은 나무문을 쓰면 마을 중심부 바로 앞에 도착한다. 어쩌다 보니 후지르 마을 중앙의 집에 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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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칸곶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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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칸곶해변

속에 수영복을 갖춰 입고 출발. 덥지만 열심히 걸어서 마을을 가로질러 이 섬의 가장 유명한 불칸곶, 샤먼의 바위에 갔다. 왼쪽은 물결이 잔잔한 모래해변, 오른쪽은 파도가 좀 이는 자갈 해변이다. 신성한 바위 앞에 큰 유람선이 정박해 있는 모습이 보기에 안 좋았다. 주변의 경치도 아름답지만 많은 사람들이 고요한 모래 해변 가에서 일광욕을 하고 있다. 우리도 모래 해변으로 가서 바로 벗고 들어간다. 안나의 집은 샤워가 안 된다. 간단한 세수만 할 수 있다. 무조건 한번은 물에 몸을 담가야 한다. 물에 들어간 사람들이 거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참 알싸하게 춥다. 그래도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나 생각해 보면 바로 이것 때문에 멀리서 고생하며 온 것이다. 꾹 참고 좀 있으니 목욕탕의 냉탕보다 견딜 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수영도 하고 가만히 몸을 담그고 있기도 하고. 물은 참 깨끗해서 물안경이 필요 없다. 그런데 한번 밖으로 나오면 다시 들어갈 수 없다. 어찌나 떨리는지 적당히 햇볕에 앉아 있다가(뜨거운 햇볕이 간사하게도 무척 고맙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수건으로 닦고 옷을 입는다.

자갈해변 쪽으로 가려는데 벼랑처럼 가파른 길을 끼고 걸어야 하므로 남편은 좀 두려워했다. 자갈해변에는 몇 사람들이 수영하고 있었다. 건너편에 본토가 보이고 다른 편 멀리 수평선이 보이므로 훨씬 바다 같은 곳이다. 길도 아닌 곳을 올라 위쪽으로 가려다가 수풀에 들어섰는데 졸지에 해안이가 당했던 상황을 우리 둘도 경험했다. 무언가가 따끔하게 쏘는데 벌에 쏘인 듯 무척이나 아프고 금방 부풀어 오르는 거다. 어떤 식물인지 괴물스러운 놈이다. 당장 내려올 수밖에. 다시 물가로 내려와 물수제비도 뜨고 공기 돌도 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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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의비상

앉아 있다가 길로 접어들어 위로 올라갔다. 가끔 불칸 바위를 오르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는 오르지 않는다. 신성한 바위는 신성한 채로 두기로 했다. 꽤 높은 벼랑의 위쪽에 앉아 하늘을 보니 갈매기가 비행하는 모습이 다 보인다. 다리를 쫙 붙인 채 우아하고 유연하게 바람을 타는 모습을 바로 그 밑 가까이에서 보는 거다. 신기하다. 참 아름다운 생명체이다. 가끔 제비도 날고 까마귀도 보인다. 작은 풀들만이 자라는 언덕에는 사람들이 하얀 돌로 낙서하듯 글이나 그림을 만들어 놓았다.

집으로 가는 길은 정말 멀다. 하염없이 걸어야 한다(나중에는 자주 다니다 보니 멀지 않게 느껴졌다. 모든 것이 상대적이다). 이곳의 대표적인 가게는 좀 현대적인 '하라쇼'인데 마을을 걷다가 대로에서 새로운 식품점 '가스트로놈'을 발견했다. 외국인이 많이 가는 하라쇼보다 이곳은 현지인이 이용하는 곳으로 가격이 더 싸다. 앞으로 이곳을 애용하기로 했다.

집에 오니 우리 옆방의 사람들이 돌아와 있다. 부부가 거실 바닥에 말리고 있는 식물(꽃과 풀로 차 종류)을 보고 있다. 눈이 파랗고 세련되어 보여 처음에는 서유럽 쪽의 사람들인가 했다. 여자가 서툰 영어로 이 풀에 대해 우리에게 설명을 해주려고 한다. 러시아 사람들이구나... 허브 종류의 식물 두 가지는 감기나 암을 예방하는 몸에 좋은 풀로 말려서 차로 마신단다. 거의 몇 개의 단어로 말하다가 헤매면 우리가 단어를 대어 가며 힘들게 알아들어야 하는 상태. 그래도 몇 개의 단어를 안다는 게 어디냐고. 참으로 반가울 수밖에 없다. 부인 리아나는 34세의 의사, 남편 램은(부르르 떨며 발음해야 하므로 해안이는 '으르램'이라고 적어놓는다) 작은 공장의 사장이다. 14살의 딸 아냐는 키도 크고 늘씬한 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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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냐와 해안이

이 식구들과 저녁을 같이 먹었다. 메뉴는 오물(바이칼의 대표적인 청어과 물고기)튀김, 오물 회(살을 작게 썰어 소금을 치고 양파와 함께 버무린 것으로 먹을 만하다), 버터를 살짝 두른 통감자, 피망과 소스를 곁들인 오이 샐러드이다. 오물튀김은 싱싱한 것을 튀겨서 맛이 환상적이며 아줌마의 마당에서 갓 캔 감자의 맛도 아주 좋다. 우리가 제대로 된 따듯한 식사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감개무량이다. 오물에 발라 먹으려고 소고기 고추장 통을 가져오자 매운 음식을 좋아한다는 램은 빵에 두껍게 발라 먹기 시작한다 (이분은 빵에 겨자를 발라먹는 매운 맛 매니아). 처음 먹어 본다는데 맛이 '하이 클라스'라며 거의 고추장통을 삼킬 듯 노려보며 계속 발라 먹는다. 한국에 가서 사서 부쳐주고 싶을 정도로 좋아한다. 삽시간에 절반이 사라졌다. 오랫동안 아껴 먹으려 했는데 저렇게 먹으니 위기의식을 느낄 정도다. 다시 살 곳도 없는데...  혹시 한통이 더 있으면 팔라고 한다. 우리에게는 작은 북어 고추장 튜브가 남아있을 뿐이다. 이것은 비장의 무기로 안 내놓기로 우리끼리 합의를 본다. 램이 짜고 매운 고추장을 어찌나 잘 먹는지 신기했다. 나중에 갈 때 남은 것을 나눠주기로 했다(그러나 만난 지 3일 만에 램이 끝냈다). 음식의 양이 많았지만 해안이까지 모두 배부르게 다 먹었다. 짐작한대로 아줌마의 요리 솜씨는 최고다. 후식은 쿠키, 우유, 홍차이다.

잘 먹고 세수하고 나니(작게 쫄쫄 흐르는 물을 쓴다) 서서히 해가 졌다. 이 집은 이틀 동안 전기가 안 들어온단다. 일기도 못쓰고 자게 되었다. 식료품점에서 물을 사왔다. 오늘은 물이 귀한 이 집에서 어렵지만 빨래도 몇 가지했고(물을 퍼다가 뒷마당에서 한다) 밭 주변의 산딸기(우리와는 다른 종류로 크고 윤이 나지 않으며 향이 좋다)와 앵두(우리 것보다 시다)도 따 먹었다. 저녁노을은 오랫동안 아름다웠다. 전기가 없으니 칠흑 같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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