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베리아-바이칼여행 - 8월9일(화)

13. 8월 9일 알혼섬 보트투어 - 비맞은 경험

평소보다 늦게 아침 9시에 일어났다. 식사는 건포도를 넣은 곡물 죽이다. 우리가 썩 좋아하지는 않는, 그러나 맛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죽이다. 평소보다 느리게 먹었는데 오늘도 평소처럼 안나 아줌마는 양을 듬뿍 주었다. 점심은 쵸코 과자, 빵, 어제 저녁의 만두이다. 오래 있어서 곳곳에 짐이 퍼져 있어서 대충 챙겨두며 앞으로의 일정을 얘기했다. 모레 '리스트비얀카'로 가서 이틀 자고 이르쿠츠크에 들어가 3일을 보내기로 했다.

오늘은 배를 타고 바이칼을 돌아볼까 하고 11시에 집을 나섰다. '바이칼 인포'에 갔더니 니키타의 집에 문의하란다. 우선 항구에서 떠나는 배가 있는지 물으러 항구에 갔다. 하는 말이 대충 알아듣기로는 배를 통째 빌리는 것이 1시간에 1,000R 이란다. 니키타의 집에 걸어가 문의하니 다행히 3시에 배를 타는 사람 3명이 있으니 같이 타면 비용을 나누어서 부담할 수 있단다. 두 집이 1,800R을 부담해야하니 우리가 900을 낸다. 즉 3시간 타는데 1인 300R이다. 3시에 불칸 바위로 오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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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르박물관

니키타의 집에서 나와 스콜라(학교) 내에 있는 후지르 박물관에 갔다. 브리야트인의 집, 옛러시아인의 집, 아이들의 그림과 옛 사진들, 후지르 마을의 역사와 인물 등을 자세히 볼 수 있는 곳이다. 일종의 '알혼 향토 박물관' 정도 된다. 자자분한 것이 볼만하다. 기념으로 바이칼 스톤 목걸이를 샀다.

집에서 아침에 챙겨 놓은 점심과 함께 뜨거운 물을 얻어 라면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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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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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에서 본 불칸바위

2시 40분에 해변에 와서 기다렸으나 배 비슷한 것은 나타나지 않고 결국 3시 10분에서야 바나나 보트 같은 것 두 개위에 널빤지를 깐 희한한 보트가 나타났다. 위에 채양도 없고 네모판 주변에 막대를 세워 끈을 맨 것이 전부. 이것을 배라고 부를 수 있는지... 거의 뗏목 수준이다. 어쨌든 러시아인 아저씨와 두 명이 처자인 딸들과 6살 정도의 손자, 그리고 우리 식구다. 모터가 달려있는 이 배는 두 총각이 뒤에서 운전하는데 느리게 가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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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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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란쯔이섬

탈 때는 그저 흐리던 하늘이 20분 후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다. 제법 견디기 어려운 수준까지 내린다. 채양도 없는 배에서 이것이 뭔 일인가. 배는 북쪽으로 향해 해변과는 약간 떨어져서 간다. 날이 어두워 바닥을 맑게 볼 수 있으리라던 희망과는 거리가 멀 뿐 아니라 주변 구경은 커녕 추위를 견디기에 급급한 신세가 되었다. 대충 갈매기가 사는 작은 섬을 지나 더 올라가다가 더 조그만 섬을 돌고 다시 돌아온다. 우리는 윈드점퍼라도 입고 앉아 있지만 허리가 다 보이는 티셔츠에 청바지 차람의 옷을 부실하게 입은 두 처자, 춥다고 겨울 스웨터를 입은 아저씨는 더 쫄라당 젖었을 터. 게다가 어린 꼬마는 반바지를 입고 있는데 입술이 파랗고 몸이 굳었다. 추우니 정신이 없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 셋은 소변이 너무나 마려웠던 거다. 그 상태로 3시간을 견디는 것은 거의 혹독한 고문 수준. 이 급함이 오히려 추위를 좀 무디게 했다고 해야 하나. 정말 추위도 스멀스멀 대단했다. 그저 비가 떨어지는 물만 쳐다보며(추위와 소변의 고통만 없었다면 나름대로 꽤 낭만적이며 아름다운 풍광이 될 수도 있었다) 언제 도착하나 오매불망 바라면서 아득히 멀리 있는 우리의 출발 지점을 바라본다. 그 경황에서도 소변이 급한 것에 대한 농담으로 서로 웃으면서(남편은 남자이지만 쌀 곳이 없다. 뗏목이니까 숨을 곳이 없으므로) 고통을 견딘다. 꼬마는 몸이 완전히 젖어 피부에 소름이 돋아 솜털이 다 일어났다. 모자와 타월로 무릎을 덮어 주었다.

출발했던 해안에 도착했을 때는 너무도 기뻤다. 배를 타는데 2시간 35분이 걸렸다. 같이 타신 러시아 아저씨가 돈을 꺼내길래 나도 1,000R을 꺼내니 아저씨가 어떻게 총각하고 흥정을 하셨는지 내 돈을 가져 가시고 나에게 500R을 거슬러서 주신다. 아저씨는 우리보다 좀 더 내신 듯하다. 아마 총각들에게 '부실한 배에 태워서 홀랑 젖게 했으니 탄 우리도 제대로 구경도 못한 채 고생했고 한편으로는 너희도 고생했으니 이 정도만 받아라' 하면서 주었던가 보다. 그러고는 가버리셔서 400R을 갑자기 번 셈이 되었다. 이런 행운이 있나!

적게 받은 애들도 수긍이 갔는지 어두운 표정이 아니다. 모두들 적당히 주변에서 급한 소변부터 해결하고 진흙이 녹아내려 미끄러운 길을 죽죽 미끄러져 가며 처량하고 춥지만 돈을 번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간다. 나름대로 기이한 체험이었다. 몸의 중심을 잘 잡지 않으면 배수가 안 되는 동네의 골목도 물이 흘러내려 매우 미끄러워 넘어지게 된다. 비가 꽤 오는데 가끔 중심을 잃어 휘청거리기도 하고 농담도 해가며 낄낄대면서 재미있게 걷는다. 덜덜 떨고 있지만 일단 소변을 봐서 기쁘다. 언제 이렇게 옴팡지게 비를 맞아 보겠는가 하는 생각도 즐거웠다. 그렇다! 결국은 돈을 번 것이 이 어려움을 더 기쁘게 만든 것이다. 가게에서 먹고 싶은 것 막 고르라고 했지만 우리 모두 절약정신이 몸에 밴 터라 특별한 것은 안 샀다. 가게 두 군데에서 먹을 것을 사고 집에 왔다. 옷을 갈아입고 피자 빵과 요구르트를 먹고 모두 두꺼운 이불 속에 들어가 잠을 잤다. 추위에 에너지 소비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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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식사

저녁은 맛있는 감자 빵이다. 속에 감자를 부드럽게 으깨어 넣고 구우셨다. 뜨끈한 이 빵이 참 좋아서 제일 먼저 두 개를 금방 먹어 버렸는데 양도 푸짐하게 많이 주셨다. 설탕을 찍어 먹으면 더 맛이 있다. 또한 소시지 파스타를 주셨다. 아줌마는 우리의 맘을 너무 잘 아신다. 뜨끈하고 부드러운 것이 모두 오늘 음식으로 딱 맞다. 다 먹은 후 남편은 추위에 떨다가 자서 몸이 약한 상태에서 많이 먹은 탓인지 약간 체했다. 결국 약을 먹고 우리가 등을 두드렸다. 10시에 나는 일찍 자고 두 부녀는 걸리버이야기를 하다가 스위프트로 넘어가서 결국 야후, 구글까지 갔단다. 우리는 모두 조나단 스위프트의 광팬이다. 잠결에 아련히 이런 이야기를 약간 들었다. 남편은 보통 체할 때는 화장실에 가서 토해버리는 습관이 있는데 이곳은 재래식이라 토할 곳이 없어 그냥 참는다고 한다. 참 가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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