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베리아-바이칼여행 - 8월10일(수)

14. 8월 10일 알혼의 마지막날

어제 그렇게 일찍 자고도 9시에 일어났다. 비 맞고 배를 탄 경험이 힘들었던가 보다. 날씨는 흐리고 비가 오며 서늘하다. 일어나자마자 감자 빵부터 한 개 먹었다. 역시 맛있다. 밤새 비가 많이 와서 산딸기 가지들이 다 늘어졌다. 숨어 있던 큰 딸기들이 많이 보여 따먹었다. 아줌마 집에 있는 재미 중 하나가 산딸기 따먹는 것이다. 아침은 삼각형 모양의 곡물 죽인데 우리가 가장 좋아하지 않는 식사이다. 대신 야채를 넣어 구워 주신 빵은 괜찮다. 남편은 속이 안 좋아 못 먹어서 남겼다가 점심에 먹었다.

10시 반에 이웃으로 표를 사러 갔다. 주변에 물으니 청년이 알려준 곳이 바로 옆집이었다. 들어가니 버스표 파는 부스가 있어 쉽게 끊었다. 예약된 표는 수수료를 더 낸다. 가격의 숫자만큼 가위로 오려주는 표가 신기하다. 그리고 현지인들처럼 쉽게 끊은 우리가 기특하다. 모두 안나의 집을 숙소로 정한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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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이스끼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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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와 우연히 만들어진 솟대

11시에 남편과 산책을 나가고 해안이는 쉬기로 했다. 우선 가장 넓은 해변 사라이스끼가 보이는 언덕에 올랐다. 간밤의 비와 바람으로 물이 한번 뒤집어져서 누런 황토 빛이 섞여 해변으로 밀려온다. 날이 흐리다. 오늘이 마지막이니 벼랑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 보다 공중을 나는 갈매기를 본다. 첫날 여기에 앉아 신기하게 쳐다보던 때가 어제 같은데 벌써 내일 떠난다. 오랜 세월 바위에 돌같이 덮혀 버린 이끼도 참 아름답다. 불칸 바위로 걸어내려 오니 샤먼들이 제사를 지냈는지 상을 차려 놓고 해변 쪽에 누워 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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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칸곶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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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칸곶샤만의식

잠깐 만난 러시아 할머니가 샤먼들에게 물어서 알려주기를 몽골의 샤먼학교를 나온 브리야트인 이란다. 제구, 차려 놓은 상의 모습, 담겨있는 곡식과 음식의 품새가 우리와 거의 같다. 신기하여 한참을 보다가 반대쪽의 자갈해변에 가서 발을 담갔다. 파도가 세고 해초들이 많이 밀려왔다. 돌이 마구 빨려 내려간다. 앉아서 쉬다가 걸어서 돌아왔다.

점심은 감자, 야채 빵과 쿠야라면, 러시아 롤톤라면이다. 아침에 남긴 죽도 먹었다. 먹은 후 남편은 감기에 걸렸는지 머리가 아프다며 한숨 잔다. 나도 러시아의 역사에 대한 책을 읽다가 잤다. 6시에 짐을 챙겨서 모두 '우리 해변'에 갔다. 날이 완전히 개어 맑고 투명해졌다. 추워서 수영은 못할 거라 생각하고 수영복을 입지 않고 갔건만 너무나 좋은 날씨에 바람도 잔잔하다. 마지막으로 바이칼에서 놀아보라는 신의 계시가 아닌가?  어쩔 수 없이 옷을 입고 들어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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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해변의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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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오후

맑은 물에 목까지 잠겨 멀리 해가 비치는 물살을 한참동안 보고 있노라면 바이칼에 내가 잠겨있다는 느낌이 명료하게 현실로 느껴지며 온몸의 감각이 뚜렷해진다. 남편은 이곳 사람들이 잘하는 방식(수영복 비슷한 팬티차림으로 버티기)으로 한번 해본다. 바위로 가려진 곳, 한쪽 구석에서 슬그머니 들어가 놀다가 한 쪽에서 슬쩍 나와 옷을 갈아입었으므로 주변에 있던 몇 사람도 전혀 알지 못한다. 이런 방식을 기꺼이 택할 만큼 들어가지 않고는 못 배길 날씨와 물이었다. 나와서 대충 옷도 갈아입고 해가 쨍하므로 바위에 말려서도 입었다. 마냥 밝고 높은 하늘에 서늘하고 쨍한 기운이 뜨거운 가을 같다. 물에는 안 들어가겠다고 온 것이 비가 와서 더 미끄러운 벼랑길도 감수하고 내려와 수영까지 하게 된거다. 해안에는 작은 돌들이 간밤에 싹 쓸려나가 거의 사라지고 요술처럼 모래해변이 되어 있었다. 직은 유리 갈린 돌들이 새로 밀려와 있다.

내일 떠난다는 단아한 독일 아줌마는 벼랑 위에서 수영하고 있는 나를 보다가 결심하고 내려 오셨는데 같이 물에 들어와 수영하셨다. 추운 표정을 짓고 금방 나가더니 일광욕 모드가 된다. 혼자 와서 2주 반이나 있었다는데 해안이가 줍는 유리가 예쁘고 신기한지 같이 줍는다. 기념으로 가지고 갈 건가 보다. 이곳에서 젊은 부부를 만났는데 우리 숙소 얘기를 듣고는 이곳으로 옮기겠다고 한다. 물론 러시아 말이 되는 사람들이다.

아쉬운 마음으로 해변을 떠나 집으로 오는데, 큰길에서 전에 불칸에서 만난 머리와 수염이 긴 러시아인을 만났다. 미국인 친구와 함께 왔다며 우리에게 'FRIEND'라는 표현을 써가며 밝게 먼저 인사를 하셔서 인상적이었던 분이다. 어디에 묵냐고 하니까 자기는 이 마을!이라고 라고 하길래 무슨 일을 하시냐니까 이 마을의 신부란다! 나에게 신을 믿느냐 하길래 그냥 기분 좋으시라고 가톨릭이라고 대답하니까 내일 아침 10시에 성당을 보여 줄 테니 놀러오라고 하신다. 우리가 떠나는 시간 후이다. 안타까워하시며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러시아 정교를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이지만 배울 운은 아닌가보다. 더 진한 원주민이 될 기회를 놓쳐 아쉽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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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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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식사

빠샤랑 놀다가(망 안에서 노는 빠샤를 하루 종일 지켜보기만 하는 할머니는 '발리아 발렌티나'라는 어여쁜 이름을 가진 나꼴라이 아저씨의 이모이다) 들어와서 저녁을 먹었다. 오물회와 감자, 소시지이다. 나는 비려서 별로인데 오물회가 정말 맛있다며 남편이 두 마리를 다 먹었다. 나중에 사진을 부쳐 주려고 빠샤와 할머니를 더 찍었다.

마지막으로 바냐에 간다. 오늘은 때수건도 가지고 가서 본격적으로 잘 씻었다. 남편도 두통이 있고 몸이 안 좋으니 오늘은 30분 이상 누워서라도 버텨보자며 들어갔다. 전보다 덜 더워서 견딜 만하다. 그런데 결국 남편이 못 참겠다고 먼저 나가는 바람에 우리도 나왔다. 모두 잘 씻어서 사람의 때깔이 달라졌다.

안나 아줌마의 둘째 딸 율리아가 '건강하라'는 축복의 말을 하며 뜨거운 홍차를 가져온다. 바냐 후에 던지는 러시아식 인사란다. 하라쇼에서 내일 먹을 음식을 좀 샀다. 한밤에 식탁에 남은 야식을 더 챙겨 먹고 마지막 행사인 별을 보러 뒷마당을 지나 바깥 공터에 나간다. 오늘은 붉게 번지는 일몰, 잠깐 떴다 사라지는 달(왜 인지 모르나 이곳은 달이 잠깐 보이고 사라진다.), 별까지 모두 아름답다. 위성도 별똥별도 잘 보인다. 보이는 별 하나 하나가 모두 태양이라는 남편의 설명을 듣고 신비로운 하늘의 한 점 먼지인 우리는 얼마나 작은지 생각했다. 이미 사라진 별이 우리 눈에 보이기도 하겠지. 1시 반에 들어와서도 잠이 오지 않는다. 여기를 떠난다는 것이 믿기지 않기 때문이다. 집, 마당, 산딸기, 안나와 딸들, 아저씨, 빠샤와 할머니까지 모두 익숙한데 말이다. 특히 신부님과의 만남도 참 아쉽다. 사실 원래 일정 보다 이틀 먼저 떠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생각해보면 쉬는 것 말고는 이곳에서는 이제 더 할 것이 없어서 그나마 덜 섭섭하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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