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베리아-바이칼여행 - 8월11일(목)

15. 8월 11일 리스트뱐카로

아침 7시에 일어나 바깥 골목의 길에서 소나무들도 한번 쳐다본다. 간밤에 비가 왔는지 길이 젖어있다. 뒤뜰도 구경하고 널어놓은 빨래를 다 걷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데 모든 것이 서운하다. 떠나는 날이라 다른 때보다 이르게 아침 8시가 넘어 아침을 주셨다. 우리가 좋아하는 스프 같은 부드러운 곡물 죽과 도넛(내가 어려서 잘 만들어 먹던 것과 똑같은 맛)을 튀겨주셨다. 좀 퍽퍽하고 고소한 맛이 내 도넛과 비슷하다. 워낙 많이 주셔서 많이 챙겨두었다. 짐 챙겨 출발하면서 우리가 안 쓴 새 세수 비누와 빨래비누, 'Dynamic Korea'라고 쓰여진 스티카를 드렸다. 안나 아줌마는 나중에 가면서 먹으라고 도넛을 더 싸주셨다. 식구들이 모두 문 앞까지 나와 배웅해 주신다.

우리가 탈 버스는 바로 옆집에서 출발하는데 대형이다. 옆방에서 잤던 부부도 같이 떠난다. 러시아어를 모르는데 여행한다는 용감한 한국 여자분 두 분도 탔다. 서쪽으로 떠난 버스는 한적한 알혼 섬 선착장에 도착했다. 차도 적고 날이 춥다. 호수를 건너 다시 출발한 버스는 유난히도 느리고 덜컹댄다. 비도 내리고 스산한 날씨에 창이 흐려 바깥 풍경이 잘 안 보인다. 그 긴 시간을 내리 정신없이 잠만 잤다. 점심은 아줌마의 도넛을 몇개 먹었다. 목이 메어서 아주 천천히 먹어야 한다(호연지기가 필요하다).

잠시 들른 휴게실도 밖이 초겨울처럼 추워서 얼른 들어왔다. 버스는 평소보다 늦게 4시가 넘어서야 이르쿠츠크에 도착했다. 4시 반 차인 '리스트비얀카' 버스를 타기위해 서둘러 표를 끊으러 갔는데 역시 시각표에서는 보이지 않아 그냥 줄서서 끊었다. 밖에서도 타는 곳을 몰라 겨우 물어가며 기다리고 있는데 버스가 너무 안 온다. 급하게 다녀서 정신이 없다. 우리  물건도 잘 챙기질 못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옆의 아주머니가 찾는 물건이 있는 곳을 알려주며 챙겨준다. 외국인이 허둥대고 있으니 무심한 척 하면서도 계속 지켜보고 있는 거다. 차는 5시 10분이 되어서야 나타났다.

리스트비얀카 가는 길은 자작나무와 소나무 숲이 교대로 나타나는 아름다운 길이다. 마치 놀이동산처럼 높은 언덕을 스르르 올라갔다 내려가는 길의 반복이다. 자작나무 숲길은 원시의 모습그대로 어디론 가 이어질 것이고 우연히 만나는 마을에서 하루 밤 자자고 청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직선으로 이어지던 길은  바다와 같은 바이칼을 만나면서 왼편으로 꺾인다. 박물관 앞에서 사람들을 내려 놓고는 잠시 후 리스트 비얀카 선착장에 도착했다. 오물 굽은 님새, 기념품 좌판들, 특히 배가 고파서 샤실릭 냄새에 끌린다. 가격이 100이나 해서 먹는 것은 자제하기로 했다. 우연히 맥주집 앞에서 한국인들을 만났는데 배낭여행하는 가족이라고 대단하다는 둥  그런 얘기를 한다. 어디서 묵느냐고 물으니 바이칼 호텔에 있단다. 나중에 남편이 남자는 국회의원 뱃지를 달고 있었다나... 한국의 국회의원을 여기서 만나는 기분, 반가운 것이 아니라 찜찜하기 그지없다. 뭐하러 이곳까지 왔을까. 생각해보니 자연스럽게 말을 하고 있어도 뭔가 정치인스러움이 있었다. 우리가 참 싫어하는 닳고 식상한 태도, 묘한 분위기가 정치인들에게는 있다.  

거슬러 올라 작은 마을의 입구에 접어들었다. 방이 있다고 써놓은 아담한 짐을 열심히 두드려도 사람이 있는 흔적은 없고 개만 짖는다. 돌아서서 몇 발자국을 걸었는데 할아버지 한분이 나오셨다. 거의 슬로우 비디오처럼 걷는 이분이 우리를 가까운 산 밑의 집으로 데리고 가셨다.  아주머니를 불러 집 구경을 시켜 주신다. 이 집은 무엇보다 한적한 곳에 있고 앞, 뒷마당에는 산딸기가 지천으로  널려있다. 2층 목조 주택의 아래층을 우리가 쓰기로 했다. 50을 깎아 700에 흥정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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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트뱐카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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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트뱐카숙소 안

3인실에 큰 페치카와 식탁, 핫 플레이트와 물 끓이는 주전자가 완비된 콘도형 집이다. 2층은 아직 공사가 덜 끝나 있다. 본채 앞에 작업실이 예쁘게 있는데 할아버지 것이란다. 아마도 이집을 틈틈이 할아버지가 지으신 모양이다. 약간 높은 산 쪽에 별채가 더 있고 이미 러시아인들이 한집 들어와 있다. 아주머니가 산딸기를 따시다가 해안이에게 한 웅큼 주셨다. 물이 많은 개울 옆인데다가 햇볕이 잘 안 비치는 산지 틈에 끼인 곳이라 안나 아줌마의 것보다 더 무르고 덜 달다. 이미 고스라져서 썩고 있는 놈들도 많아서 여기에 머물며 많이 따먹었다.

짐을 두고 선착장에 걸어 나가서 걸국 그 냄새에 오물(30)과 샤실릭을 사먹었다. 아주 맛있다. 수퍼에 들러 장을 보고 돌아왔다. 산딸기 따시는 할아버지를 해안이와 같이 도와드리다가 들어와서 저녁을 잘 먹었다. 밤에는 잠깐 달이 떠서(이상하게 이곳은 달이 얼마 후 사라져 버린다) 집앞에서 내려다 본 호수는 은빛을 뿌려 놓은 듯 예뻤다. 밤에는 별이 무척 많았지만 추워서 오랫동안은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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