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베리아-바이칼여행 - 8월13일(토)

17. 8월 13일 다시 이르쿠츠크로


아침 8시 전에 일어나 화장실에 갔다. 어제 많이 자서 몸은 좀 나아졌다. 나무바달이 산딸기 덤불을 지나 화장실까지 이어지는데 문을 열고 밖을 보면 비탈산의 자작나무와 산딸기,  하늘이 한 폭의 그림처럼 예쁘다. 한적한 집에 거의 우리 밖에 없는 셈이어서 화장실에 앉아 경치를 보는 것도 운치가 있다.

라면으로 아침을 먹고(해안이는 여전히 잘 먹는데 우리는 라면이 지겨워진다) 9시에 부두로 버스표를 사러 갔으나 바이칼 인포는 아직 문을 안 열었다. 마을 구경도 못하고 가기는 싫어서 위쪽 유르타가 있다는 곳까지 모두 산책을 하기로 했다. 몽골의 겔이 쫙 숙소로 펼쳐진 공간을 기대했건만 아무리 올라가도 유르타 는 뵈지 않는다. 결국 보통 목조건물의 숙소에 뒤쪽 산 밑에 체험하고 싶은 사람을 위해 마련한 유르타가 보여서 좀 실망을 했다. 전에 남편과 인도에 가서  모시기 팰리스 라는 곳이 궁전인 줄 알고 열심히 찾아 헤매다 보니 극장이어서 허망했던 경험이 있었는데 비슷하다. 큰 길 입구에 근사하게 유르타 선전을 해놓아서 대단한 줄 알았는데 실망이다.  

집에서 쉬다가 차를 타러 내려왔는데 역시 차는 무척 기다리게 하더니 30분 늦어 11시 반에 나타났다. 뭐 인도 버스처럼 시간도 안 지키더니 정말 더러운 편이다. 맨 뒷자리에서 졸다보니 어느새 이르쿠츠크 시내에 도착했다. 중앙시장 앞인데 내리겠다는 사람들은 다 내린다. 지나치면서 얼핏 조선식당이라는 간판을 봤던 터라 우리는 북한식당이라고 생각했다. 밥에 주린 우리는 북한음식이라면 먹어 볼 가치도 있겠다고 생각하고 잽싸게 내려 비싸더라도 먹자고 했다. 비가내리고 매우 춥다. 젖어서 더 떨리는 몸으로 도착한 식당은 알고 보니 간판만 그렇게 걸었지 중국식당이었다. 안이 무척 따듯하다. 북한음식점이 아니어서 실망이다. 그래도 밥이 나오는 곳이니까 먹기로 하고 삼선탕, 명태요리와 밥을 주문했다. 동양의 음식이라고 그래도 빵과 라면만 먹던 속이 달래지는 느낌이다. 남편과 해안은 너무나 많이 잘 먹었다. 가격은 좀 비싼 편이다.

숙소까지 가야하는데 버스 편을 모르는 우리는 그냥 비를 맞으며 걷기로 한다. 우산이 없으면 불가능할 정도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청량하게 걷는 신세라니... 오죽하면 비를 피하러 백화점과 가게에도 들어갔고 수퍼에 들러 괜히 시간 보내며 먹을 것도 잔뜩 사면서 비가 긋기를 기다렸다. 결국 포기하고 그냥 맞으며 예약해 둔 호스텔에 도착. 요 며칠은 추위, 비와 친구가 된다. 추위에 젖어 떨다가 숙소를 보니 고생 끝이라는 생각에 어찌나 반갑던지. 이래서 집이 좋은 거다. 리다는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우리 방에 그대로 들어왔다. 옷과 짐이 젖어 있어서 모두 샤워를 하고 말려두었다. 더운 물 샤워가 참 반가운 날이다. 리다는 그 구하기 어렵다는 꿈의 6인실 표를 끊어 놓았다. 믿으면서도 과연 끊었을까 걱정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게다가 돈이 남았다며 나머지를 주었다.

몸이 따듯해진 후라 한번 길을 나서서 향토 박물관에 가기로 했다. 비는 여전한데 그냥 맞고 걷는다. 비를 많이 맞고 와 보니 역시 입장료가 100이다. 옷을 말리면서 비가 가늘어지기를 기다려야 하므로 오랫동안 천천히 구경했다. 이 시에 대한 각종 자료들이 있다. 무엇보다 흡족한 곳은 기념품 가게인데 리스트비얀카에서 어마어마하게 비싸게 불렀던 바이칼 스톤으로 만든 장신구들이 거의1/8, 1/10 수준으로 꽤 싸다. 결국 라피스라줄리 반지, 바이칼에만 있다는 보라색 반지 2개를 샀고 남편은 옛날 배지를 샀다(나중에 이곳에서 기념품을 더 못 산 것을 후회했다). 걸어서 지도를 사기 위해 서점에 갔다.

해안이와 나는 어린이 책들을 구경했는데 러시아는 책에 관한한 선진국이다. 어린이 책들이 손바닥 반만 한 크기부터 월간지까지 정말 다양한 품목들이 구비되어 있어서 감탄할 만 했다. 들여다보기만 해도 재미있다. 바이칼 갈 때 여자 애가 보고 있던 것은 어린이용 애완동물 잡지였다. 나와도 비가 너무 와서 잠시 카페에 들어가 차라도 마셔보자며 들어갔다. 간단한 빵 종류와 먹거리들이 있어 한번 주문해 보자고 메뉴판을 들여다보니 문제가 있다. 글씨만 바글거린다. 먹는 것 이름을 알아서 그 가격만큼 표를 끊어 주문한다. 어느 것이 어떤 음식인지 우리가 어찌 아냐고... 우리는 말을 모르니 그림을 그려 놓아 쉽게 주문할 수 있도록 하는 센스가 있는 곳이 아니면 못 먹는다. 몰라서 못 먹다니 문맹의 슬픔을 경험한다.

포기하고 비를 맞으며 걷다가 수퍼에서 만두를 사고 돌아왔다. 주방에서 만두를 물에 끓여 건져 먹었는데 품질이 좋은 편으로 티벳의 모모와 맛이 비슷한 만두이다. 남편은 좋다고 하는데 나는 양 냄새 비슷하게 나는 것이 별로 안 좋다. 저녁을 많이 먹고 산책 겸 아레나 호텔에 빈방이 있는지 알아보러 갔다. 알혼 섬에서 나올 때 만났던 배낭 여행자에게 싸고 괜찮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옮길 마음이 있어서였다. 사실 이르쿠츠크 다운타운 호스텔은 다 마음에 들지만 만만한 가격은 아니다.

아레나 호텔은 1인 300이지만 방은 하나도 없다. 날씨가 궂어서 다 바이칼을 떠나 돌아왔는지 유난히 많은 관광객들이 이르쿠츠크에 모여 있는 듯하다. 그냥 호스텔에 머물기로 한다. 두명의 한국인 남자 배낭여행자들이 더 도착해서 우리 방의 남은 침대를 쓰기로 했다. 내일은 주변의 '앙가라스크'라는 도시를 가보기로 했다. 관광지가 아닌 도시에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오늘은 호스텔이 꽉 찼다. 두 청년은 몽골부터 올라와 다시 모레 몽골 가는 열차 표를 끊어 간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끼리 반가워서 저녁에 판을 벌려 우리 방에서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눴다. 사법시험 보고 여행을 온 친구 사이의 청년들이다. 마음씨들도 착하고 얘기하기를 좋아해서 중학교 때 만난 전교조 선생님들에 대한 이야기며 세상 돌아가는 것들, 심지어 심리학 책 추천까지 하는 상황이 되었다. 아직 이르 구경을 제대로 안 했다 길래 볼콘스키의 집을 권해 주었다. 옆에서 같이 끼던 해안이도 12시 반에 잠들었다. 남편도 드디어 술이 취해 누워 버리니 술도 못 먹는 내가 2시 넘도록 이 청년들과 이야기  꽃을 피웠다. 두 사람이 합격하기를 바라며 부디 생각 있는 착한 사람들이 판검사, 변호사가 되어 사람 사는 세상 만드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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