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베리아-바이칼여행 - 8월17일(수)

21. 8월 17일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하루

기차에서는 주로 차가 설 때 깨게 된다. 정차하는 기미에 일어나니 9시 반이다. 우리가 먹고 있는 것들은 물론 빵과 라면인데 이제 그것 먹기도 너무 지쳤다. 잠결에 역에 나가서 만두를 샀는데 완전 바가지이다. 몇 개 안되는 만두를 50을 받는 거다. 담은 것을 다 뺄 수도 없고 그냥 줬는데 와서 먹어 보니 음식도 차고 고기만두는 겉이 안 익었다. 속만 먹고 버렸다. 한번 팔고 말거라고 이렇게 장사를 하면 안 되는데 말이다. 잠결에 사러 나가서 꼼꼼히 묻고 비교하지를 못한 내 탓이다. 그 옆집이 더 잘되고 있었던 것 같다. 사람이 많아 급한 김에 한적한 집에서 산건데(열차 떠나는 시간을 모를 때는 급한 마음이 된다) 잘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줄이 길고 사람 많은 집이 맛있는 집이라는 것은 진리이다. 이르 시장의 잘나가는 집에서 사왔던 흑빵은 최고였다. 구수하니 맛이 좋아 수시로 뜯어먹고 있다. 전반적으로 식욕이 없어 배고픔을 면하는 수준으로 먹는다.  

만두 사고 들어오면서 쥬스와 물도 사왔다. 남편이 산 물 중에 짠맛과 약간의 비린내 비슷한 향까지 나는 탄산수가 있어서 서로 먹기를 기피하고 있다. 나는 아까워서 가끔 마시는데 물을 살 때에는 어떤 종류인지 성분까지 꼼꼼히 비교해야 한다. 러시아는 탄산수가 유명한 나라인데 다양한 염도를 가진 물들이 많다.

무엇보다 특이한 것은 이 사람들이 하루에 한 끼 정도는 누구나 우리나라 제품인 도시락 면을 먹는다는 사실. 같은 라면을 먹고 있는 우리는 면발이 부서질세라 조심하며 먹을 때는 젓가락을 이용한다. 하지만, 어제 꼬마도 그랬지만 이 사람들은 일단 라면을 네 쪽으로 나눈 뒤 한쪽 씩 양손에 감싸 쥐고 바수어서 물을 부은 후 나중에 수저로 맛있게 떠먹는다. 장거리 여행이 낳은 히트 상품이 도시락면 이다.

남편이 사온 것 중 스프는 좀 짜고 이상한 맛을 가진 것도 있다. 별로 인기가 없다. 라면은 해안이만 좋아하고 있어서 모두 하바에 가면 고려인 가게에서 김밥과 김치를 사 먹자고 벼르는 중이다. 가끔 크래커에 초코 스프레드나 치즈를 발라 식사대용으로 먹는다. 해안이는 같은 숫자의 크래커를 모아 초코를 발라 붙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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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에서 보는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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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에서 보는 구름

오늘은 책을 보거나 자는 일의 반복이다. 창밖으로는 구름이 장관이다. 날이 흐리거나 비가 오는 구간을 지날 때도 있고 다시 화창해진다. 올 때는 야생화 구경이었다면 갈 때는 구름이 주요 테마가 된다. 오후 늦게는 실내가 더워졌다. 해안이는 그림 그리며 놀고, 나는 걸리버 여행기를 본다.

0816.열차안에서.말리나1.jpg어제부터 등장한 유난히도 예쁜 여자애가 있다. 이름은 밀라나. 우리 건너편의 남자 두 분 중 외삼촌 닮은 이가 유난히 애들을 예뻐해서 밀라나가 자주 놀러온다. 경계하던 기색은 모든 애들이 그렇듯이 과자를 주면 누그러진다. 아저씨와 얘기할 때는 제법 의젓하고 또렷이 말하는 품이 3살짜리로 꼬마 같지가 않다. 우리 나이로 네다섯 정도인데 말이다. 그래도 우린 기본적인 대화도 나눌 수가 없으니 데리고 놀 방법이 없었다. 잘해주니까 가끔 우리 자리에 와서 앉아 있다가 간다.

이 칸의 사람들은 거의 바른 생활 사나이들로 조용하고 건전하다. 러시아에서 보드카를 마시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보였다. 주로 맥주를 즐겨 마시며 차에서는 카드를 하거나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분위기이다. 신사의 나라다. 밤 12시가 되어 소등을 해서 잠을 자야 한다. 책을 더 읽고 싶어도, 낮에 많이 자서 졸립지 않아도 무조건 자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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