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베리아-바이칼여행 -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4.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열차를 타는 설레임

하바롭스크 역은 숙소인 뚜리스트에서 걸어서 10여분 거리에 있었다. 한참 공사중인 역에서 갈 길을 못찾아 근처 역무원처럼 보이는 이에게 간단한 러시아어로 물어 보니 잘 못 알아들었는지 친구를 불러 이야기하면서도, 손짓을 섞어 가며 아주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나나 그나 전혀 말은 안되지만 바디랭귀지는 이렇게도 좋은 것이다.

역은 플랫폼까지 완전 개방되어 있으며 플랫폼 가는 길목 전광판에 열차번호와 플랫폼이 표시되면 해당 플랫폼으로 가면 되는 쉬운 방식이다. 조금을 기다려 열차가 도착하고 내가 탈 객차(10호차) 차장에게 표를 보여주고 올라탔다.

열차는 영화에서나 보던 복도가 있는 독립객실열차다. 우리 칸에는 침대가 네 개니 누구나 한명은 들어오겠지 싶었는데 열차여행 내내 아무도 안들어왔다. 아예 우리가 탄 객차 자체가 꽉 차지 않았는데다가 우리가 세명이라 차장이 적절하게 배려한 듯 싶었다. 객차는 낡은 편이었지만 잘 관리되어 있어 보였다. 러시아 전체가 그런 느낌인데 모든 기계나 건물이 낡은 건 사실이지만 잘 관리되고 있어 오래도록 사용하는 것 같았다.

차장은 무뚝뚝하게 생긴 아주머니다. 조금 무서운 얼굴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불친절하지도 않았다. 있는듯 없는 듯 하달까. 처음엔 뜨거운 물 뜨러 가는 데도 눈치를 좀 봤는데, 얼마 안 있어 편안해 졌다. 시트를 열고 안의 밀폐된 공간에 잘 안쓰는 짐을 넣고 자주 쓸 것들과 음식 같은 것은 테이블 아래 두고 나니 조금 정리가 된다. 해안이는 2층이 좋다고 올라갔는데, 2층도 올라가 보니 제법 넓고 좋다. 테이블을 앞에 놓고 시트에 앉아 있으니 이제서야 여행을 떠나는구나 하는 실감이 든다. 어제, 그제께 얼마나 정신없이 돌아쳤는지...

2박 3일. 장장 57시간의 기나긴 열차여행이 시작되려고 하고 있다. 우리의 느낌으로 보자면 너무나 긴 여행이기에 지루하다고 생각해 버리면 곧장 지옥이다. 아예 시계를 보는 습관을 버리고 풍경을 감상하며 정신없이 살아가는 조국 코리아에서는 찾기 힘든 기나긴 휴식을 즐겨야 한다.

지나는 풍경



 

처음 탄 시베리아 횡단열차였기에, 그리고 낭만의 상상속에서만 있던 열차여행이었기에 전혀 지겹지 않다. 복도쪽 창문을 열고 차창 밖의 풍경을 바라본다. 낮은 산지들과 무성히 들어찬 자작나무의 무리들. 특히 하바롭스크 주변은 우리의 역사에도 선명한 고구려와 발해의 무대가 아닌가. 낮은 구릉을 바라보며 저런 곳을 말을 타고 질주해 나갔겠거니.. 하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

가는 도중 줄곧 나오는 들꽃 무리들. 우리나라 같으면 몇 송이만 피어 있어도 사진을 찍는다 난리를 칠 텐테 이곳에서는 벌판 가득 들꽃이다. 게다가 군데군데 보이는 야생 도라지들의 무리. 몸에 그리 좋다는 바로 그 야생도라지다.



 

열차가 지나는 시골 마을 사람들은 상당히 가난하게 사는 편이다. 마치 동남아시아의 풍경을 보는 듯 번듯한 집 하나 없는데 먹고 사는 것은 얼마나 팍팍할 것인가.  곡물류로는 감자를 즐겨 먹는다 하는데 그 뿐이다. 검은 흑빵에 감자, 약간의 치즈가 전부인데 이렇게 흐드러진 많은 나물들을 우리들처럼 손질해 먹을 수 있다면 없는 살림에라도 얼마나 풍성한 식탁을 차릴 수 있을 것인가. 저렇게 흐드러진 먹을 거리들을 그대로 두고 빵과 치즈 그리고 마른 햄으로 어렵게 살다니...

기차역의 노점들

책에서 보기로는 열차가 역마다 20-30분씩 오래 서고 그 사이에 행상들이 열차 옆으로 줄을 지어 물건을 판다고 들은 것 같은데, 이 열차는 그리 오랜 시간을 서 있지를 않는다. 가끔 가다(이게 6-7시간정도다...-_-;;) 큰 역에서 20분 정도 서고 작은 역에서는 2-3분 밖에 쉬지 않는다. 그래서 자칫 침대에서 눈을 붙이다가 큰 역을 지나치면 물건을 살 수도 없다.

역에서 물건을 파는 것 또한 하바롭스크에서 이르쿠츠크에 가까워질 수록 줄어든다. 처음 하루 동안은 큰역에서 물건 파는 행상들이 많이 줄을 서서 물건을 팔았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째가 되자 눈에 띄게 행상이 줄어들더니 오후부터는 아예 역 매점까지 달려가서 물건을 사야 했다. 게다가 열차는 시도 때도 없이 기적을 울려 대니 마음이 급해서 편하게 물건을 살 수도 없는데 이런 것은 같이 타는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서 머리를 잘 굴려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한국에서 자기가 탈 열차의 정차 일정표를 프린트해 가는 것인데, 막상 어떤 열차를 타게 될 지 모르니 그것도 어렵다. 눈치로 살 수 밖에.
참고하셔요 : 우리가 타고 간 열차 일정표
http://www.poezda.net/ru/train_timetable?st_from=2034000&st_to=2054000&order=&cur=uah&dateDay=30&dateMonth=7&dateYear=2005&tr_code=94

사람들

우리가 탄 객차에 몽골풍의 한 아저씨가 있었다. 그분 열 방에는 러시아 백인 아저씨가 타고 갔는데 이틀째 부터는 아예 두분이서 복도 창가를  점유하고 이야기꽃을 피운다. 우리 나라에서처럼 한두시간을 만나서 같이 가는 사이가 아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다른 객실에서 있는데도 달리 이야기 상대가 없으니 두분이서 복도를 점유하고 한정없이 이야기꽃이다.  좀 있다 보면 들어갔다가도 좀 있다 나오면 여전히 둘이 이야기한다. 모르는 사람끼리 뭔 이야기할 것이 그리도 많은지... 몽골풍 아저씨는 역시나 몽골계인 부랴치아 공화국 주도 울란우데에 내렸지만 그때까지 무려 30여 시간동안을 이야기하며 지낸거다.

우리가 본 러시아 인의 인상은 그것이다.

너무나 오랜 여행이기에 아무나 만나면 친구가 되고 이야기하기를 즐기는 모습. 무뚝뚝한 인상 뒤에 가지고 있는 따뜻한 감성의 소유자들. 몽골풍 아저씨는 복도를 지나다 눈인사만 십 수번째를 한 아저씨이지만 내려서는 우리에게도 정겹게 손을 흔들어 준다. 저런 사람들과 말이 통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신기한 사실

책에서 보기엔 차장이 시트를 줄 때도 돈을 내야 한다 들었고 식사는 사먹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우리 열차는 워낙에 비싸게 주고 탄 열차라 그런지 시트 값도 안 받고 점심 식사가 나온다. 첨엔 몰라서 안 먹으려 했지만, 식사를 가져온 예쁜 언니들의 분위기가 뭘 사라는 분위기라기 보다는 몇 명이냐고 묻는 분위기라 3명이라고 하고 냉큼 식사를 받았다. 하바롭스크에서 보람씨가 표를 살 때 매표원이 모든게 포함되어 있다고 말했다고 한 기억이 나서였다.

식사는 간단한 러시아식이었지만 먹을 만 했다. 하지만 식사를 준다는 게 어딘가. 과연 비싼 열차로군.. 하는 생각이 드는데, 저녁이나 아침도 주나 나중에 눈치를 봤는데 결국 점심만 주는 것이었다.

열차 타기 전 슈퍼에서 컵라면과 봉지면을 몇 개 샀는데, 이상한 부분이 있다. 한국에서 듣기로는 야쿠르트의 도시락면이 유명하다 들었는데 이곳의 도시락면 상표는 koya다. 게다가 그 KOYA 에서 만드는 KBISTI 라는 봉지면이 조금 비싸길래 몇 개 샀다. 아무래도 유사품 같았는데, 막상 뜨거운 물을 넣어 보니 우리나라의 면발이 나온다. 게다가 봉지면 역시 먹던 도시락면 통에 넣어 뜨거운 물을 부어 보니 면발이 괜찮다. 만약 유사품이라면 너무나도 잘 만든 것이지만 우리나라 것이라면 도데체 코야라는 이름은 뭐란 말인가?

더위를 먹다

첫날 객차 안이 너무 더워 이불을 차고 잔 데다, 다음 날 시원한 물과 정차역 노점에서 파는 얼린 크바스(러시아 전통음료)만 줄창 먹는 바람에 그만 더위를 먹어 버렸다. 한낮의 태양 때문에 땀은 줄줄 흐르는데 온 몸에 힘이 없다. 객차안의 온도는 22도를 유지한다고 들었건만 사실 첫날엔 너무 더웠다. 복도 창문을 열고 침대에 누우면 조금씩 바람이 오는데 그 바람을 맞고 더위를 식혀야 했다. 이게 뭔 일인지... 시베리아에서 더위를 먹다니.

둘째날은 내내 힘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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