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유럽/모로코여행

2. 남부 프랑스

2008.1.3(목) : 니스 - 마르세이유 - 아를르

아 침 7시가 넘어 모두 부시시 일어났다. 기차가 그냥 달리다 보니 부드럽게 표지판이 불어로 바뀐다. 신기하다. 마치 전철역 지나가 듯 어느새 모나코의 몬테카를로 역에 섰다. 역사 내부가 화려하고 잘 꾸며져 있다. 밖으로 잠깐 보이는 풍경도 부유해 보이는 도시이다. 그러나 해변 가의 절벽을 끼고 있는 곳이라 기차는 줄곧 굴 속을 지나므로 볼 수 있는 모나코의 모습은 역 근처 뿐이다.

080103_01.NiceStreet-1 080103_02.NiceStreet2
잠깐 들른 니스의 모습

잠시 후 니스에 도착했다. 다행히도 도착하는 원래 시간에 맞추어서 연착되지는 않은 셈이 되었다. 프랑스는 이탈리아에 비해 잘 사는 나라답게 모든 것이 단정하고 깨끗하다. 예약없이 마르세이유에 갈 수 있는 열차 시간에 여유가 좀 있어서 파리로 간다는 학생들과는 인사를 나누고 시내를 걸었다. 거리는 아침이라 차도 적어서 상큼하고 안정되어 보이며 테라스가 있는 집들이 예쁘다. 가로수 오렌지가 주렁주렁 열려 있어 탐스럽고 터키의 안탈랴가 생각난다. 확실히 이탈리아 내륙보다 따듯하다. 바닷가까지는 멀어서 적당한 지점에서 되돌아 온다. 중간에 시장이 있어 오렌지를 사려고 했지만 남편이 무겁다고 가서 사자고 한다. 역에 돌아오니 전광판에 기차가 떴다. 그런데 TGV가 아닌데도 예약을 해야하는 열차이다. 다행히 가격이 저렴해서 3유로를 주고 예약했다. 싸서 기분이 좋다. 1등석이 없어 2등석을 끊었는데 열차가 또 연착된다. 플랫폼의 의자에 앉아 어제 산 피자를 먹었다. 맛은 별로인 편이고 차고 딱딱하다.

080103_03.ToMarselli-1080103_04.Marselli.Station
마르세이유 가는 열차 2등석 / 마르세유 역

2등 석은 생각보다 자리도 편하고 좋았다. 남편이 기차의 열차 노선도를 보더니 보르도 가는 이 노선이 아를르를 통과한단다. 그러나 청년에게 물어 봤더니 마르세이유 다음 역은 바로 몽펠리에 라고 한다. 단지 지나가기만 하지 서지는 않는다. 잠깐 달리니 깐느이다. 영화제로 유명한 도시이지만 분위기는 니스와 비슷한 평범한 도시다. 바닷가를 끼고 지중해의 해변이 펼쳐지는데 파도치는 모습이나 느낌이 강릉 바닷가 같다. 남은 음식들을 먹고 둘 다 다시 잔다. 편하게 푹 자다가 마르세이유에 도착했다. 남편이 열차시간을 확인했다. 바로 5분 후 아를르 가는 기차가 있어 마구 달렸다. 그러나 또 연착. 어제 부터 연착으로만 이어지는 날이다. 남는 시간에 프로방스 특산품점을 구경했다. 라벤더 향수, 비누, 과자 같은 걸 판다. 라벤더가 들어 간 보라색의 제품들은 색이 참 곱다. 라벤더가 피는 계절에 온다면 보랏빛의 들판이 얼마나 아름다울까....  

열 차는 40분 후에 왔다. 1등석에는 우리 뿐이어서 편하게 오징어 왕다리를 뜯으며 얘기를 나눴다. 펼쳐지는 이 풍경들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물론 겨울이라 스산하기도 하지만 전원의 풍경 그대로이다. 이곳은 '마농의 샘', '마르셀의 여름', '나무를 심은 사람'이 만들어진 곳이다. 나는 프로방스를 아름답고 풍요로운 땅으로 상상했지만 남편은 나무를 심은 사람에 나오는 '오직 라벤더 밖에 없었다....'는 황량함을 먼저 떠올렸다고 한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꼬뜨 다 쥐르(감청색 해안)', 엑상 프로방스, 아를르 다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080103_05.ToArles-1 080103_06.ToArles2
아를가는 지역열차 1등석 / 예쁜 핸드폰 금지 표지

40분 정도 달려서 아를르에 도착했다. 정말 고즈넉한 작은 도시이다. 인포가 문을 닫았으니 그냥 알아서 찾아 가야 한다. 역사 바깥도 작고 아기자기하다. 바람이 많이 불어 걷기 힘들 정도로 몹시 추웠다. 모자까지 다 여며 몸을 꽁꽁 싸고 예약한 호텔을 찾아 간다. 콜로세움 경기장을 눈으로 보아가며 지나다가 청소하는 아저씨께 여쭤보니 아래로 가서 왼쪽 옆으로 꺾으란다. 남편이 구글 맵에서 확인했던 위치와 달리 숙소는 도시 외곽에 있었다. 콜로세움에서 아래로 내려가다 프랑스 관광객에게 남편이 길을 물었다. 한참을 서로 얘기를 주고 받는 듯 하더니 친절하게도 그들이 가지고 있던 지도를 주었단다. 결국은 주변의 인포를 찾았갔는데 버스를 타라고 알려 준다. 어쩔까 하다가 그냥 걷기로 했다.

짐 을 지고 바람을 가르며 걷자니 만만치가 않다. 평화로운 주택가를 지나고 다리를 두개나 건너서 그래도 10여분 지나서 숙소를 찾았다. 고속도로 나들목 옆의 의외로 좋은 방갈로형 숙소인데 주로 차를 가진 사람이 이용하는 숙소이다. 모든 것이 편리하게 꾸며져 있고 과자에 차도 준비되어 있다. 게다가 어렵게 멀리 찾아 온 것이 전화위복이라고 숙소 바로 뒤에 대형 수퍼가 있다. 수퍼의 물건 가격에 정말 놀랐다. 이렇게 쌀 수가 있나... 1유로 이하의 물건들이 수두룩하다. 치즈의 나라답게 다양하고 값도 저렴한 치즈며 1유로도 안하는 와인, 좋아보이지만 모두 엄청 값이 싼 물건들에 기분이 좋아졌다. 정말 여기에 며칠 머물고 싶어 지는 가격들이다. 요런데서 물건을 사 가면서 프랑스 사람들은 재미나게들 살고 있었구나... 쌀과 과일, 생소시지, 양상치 등을 사서 숙소로 왔다. 남편이 밥을 하고 나는 오렌지를 먹으며 둘다 흐믓해 했다. 사 온 취사 도구가 아주 잘 된다. 엷은 색의 뚤루즈 소시지와 고기를 채워 넣은 생소시지들은 물에 끓였다. 오징어젓, 소시지와 쌈장을 곁들인 상치쌈이 오늘의 저녁. 처음으로 시도한 취사를 하는 여행의 시작인데 성공적이다. 소시지가 약간 느끼한 편이지만 아주 맛있게 잘 먹었다.

080103_07.Arles.supper080103_10.ArlesNight3
숙소에서 저녁해결하기 / 아를 시청앞 광장
080103_11.ArlesNight4080103_12.ArlesNightCafe.Gogh080103_14.ArlesNightCafe.Gogh3
아를 시내의 예쁜 소지품점 / 고호의 밤의까페를 배경으로

잠 시 쉬다가 밤의 아를르 구경에 나섰다. 짐이 없으니 걷기가 편하다. 역시 바람은 많이 불었지만 옷을 잘 껴입고 나온 때문에 괜찮다. 시 중심의 오벨리스크와 분수대, 예쁜 성당, 시청을 구경하고 사진을 찍었다. 구도시는 작고 아담하다. 상점의 신기한 물건들도 보고 문을 닫고 있는 가게 주인에게 물어서 '밤의 카페'에 갔다. 내가 참 좋아하는 그림인데 신기하게도 그림과 똑 같다. 이곳이 고호가 3일 밤을 그렸다던 120년 전의 그 장소라니... 그곳에 내가 와 있다니 그저 신기할 뿐이다. 물론 그림과 비슷하게 의도적으로 벽의 색이나 분위기를 만들어 놓은 측면도 있다. 사진을 찍고 다시 고호가 있었던 요양원을 찾아갔다. 밤이라 정원 문이 잠겨 밖에서 보았다. 역시 그림과 똑 같다. 밤의 카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프 로방스 지방에 와서 고호는 밝고 환한 이곳의 날씨에 안정을 되찾았고 많은 그림들을 아를르에서 그렸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늘 외로웠고 여자 모델을 구하고 싶었지만 그를 상대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어려운 처지의 고갱을 불러서 같이 한달을 살다가 서로 안맞아 갈등을 겪는다. 결국 자신의 귀를 자르고 이곳 요양소에 있다가 이곳을 떠나게 된다. 그나마 이곳은 고호가 정신적으로 가장 나았던 장소이다. 죽은 화가의 흔적이 남아 혼이 감도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이러한 궤적을 좇는다는 것이 좀 허망하기도 하다. 살아 생전에는 사람을 그렇게도 그리워 했다는데 아무도 그를 상대해 주지 않았다. 그런데 죽어서 전설이 되다니... 파리의 짐 모리슨의 묘도 얼마나 초라했던지 인생이 무상함을 느꼈었다. 결국 권총 자살, 마약으로 인한 죽음, 천재적인 능력, 단명, 괴이한 행동들, 이런 것들이 전설을 만들었다. 참 이상한 것이 밤의 카페를 그릴 때도 그 그림을 본 사람들이 있었을텐데 그것이 특이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정말 몰랐을까...

걸 어서 숙소로 돌아오며 남편이 이곳에 더 머물고 싶다고 한다. 이 분위기가 좋다고. 주변도 더 돌아보자고 한다. 다른 일정을 줄이더라도 나도 아를르가 좋다. 숙소에 와서 남편이 포도주 코르크 마개와 씨름하는 동안 잠이 들었다. 지금 2시 반에 일어나 일기를 쓰는 중이다. 밖에는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내일 날씨가 어떨지...

2008. 1.4(금) : 아를르 - 엑상 프로방스

아 침 6시에 둘 다 일어났다. 역시 비가 몹시 내린다. 아침밥을 해서 상치와 함께 먹었다. 9시가 넘어도 비는 그치지 않아 일단 짐을 다 싸놓고 오전 중에 시내에 다녀 오기로 한다. 모자를 썼지만 오는 비는 다 맞으며 걷는다. 먼저 고호재단에 갔는데 11시에 문을 연다. 그래서 요양원의 정원에 갔다.

080104_01.Arles080104_03.Arles.street2
080104_05.Gogh_Garden2080104_06.Gogh_Garden3
고호의 요양원

비가 오니 시내에는 관광객들이 보이지 않는다. 정원에는 우리들 뿐이었다. 그림과 정말 똑같은 풍경이다. 아마 그림을 그렸던 때도 지금과 비슷한 계절이었을 것이다. 나무에 잎이 없고 정원의 꽃들이 작아 지금의 모습과 흡사하다. 정원이 보이는 각도가 2층이어서 위에 올라가 사진을 찍었다. 지금 이곳은 도서관에 가게들 뿐이다. 무척 조용하고 고즈넉한 곳이다. 비까지 내리니 더욱 분위기가 좋았다. 오래된 건물이지만 아직도 나름대로의 독특한 멋이 있다. 고호 재단에 가고 싶었지만 남편이 12시에 숙소를 나가야 하므로 너무 늦는다고 포기하잔다. 구도시 구경을 하다가 카지노라는 체인 수퍼에 갔는데 어제와 비교가 될 정도로 모든 것이 비싸다. 카지노 자체 브랜드로 많은 물건들이 나온다. 작은 동네 수퍼에서 1.8유로 정도의 훈제 삼겹을 샀다. 무척 질이 좋아 보이는데도 너무 싸니 안 살 수가 없다. 인포에 들러 엑상 프로방스 가는 노선을 확인해 두었다. 비가 많이 내리지만 빠르게 걸어서 숙소로 돌아왔다. 파카와 청바지, 신발까지 다 젖었다. 점심 싸 놓은 걸 꺼내서 다 먹고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하루 종일 내릴 비이다. 방을 나가서 로비에서 인터넷이나 해보려고 했으나 잘 잡히지 않아 포기하고 다시 열심히 걸어 버스 정류장에 갔다. 비를 피해가며 기다리는데 비에 젖은 도시의 풍경과 버즘나무들이 아련하게 아름답다.

080104_09.BusStand080104_10.ToAix
액상프로방스 가는 길

여러 대의 버스가 올 때 마다 물어 물어 겨우 버스를 탔다. 10유로가 넘는 가격이다. 맨 앞자리의 일명 관광객석 이랄까 구경하기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비가 오지만 앞자리는 와이퍼로 닦아주니까 잘 보인다. 도시를 벗어나자 시원하게 펼쳐지는 넓은 들판에 오래된 버즘나무 가로수가 터널처럼 끝없이 펼쳐진다. 여름이라면 하늘에서 빛이 들어 올 틈이 없겠다. 이런 나무들이 오래 자라고 있으니 부러울 뿐이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작은 마을들을 지나 몇번 고속도로로 들어서고 1시간 반 만에 엑상 프로방스에 도착한다. 여기서는 엑스라고 부른다. 오면서 비에 젖은 몸이 풀리니 노곤해서 둘다 잠도 잤다. 역 근처에서 내렸지만 인포가 작아 도심의 중심부로 걸어갔다. 여전히 비가 내린다. 인포에서 주로 트래킹을 하는 생뜨 빅뚜와르 산도 확인하고 호텔 정보, 세잔느의 궤적을 따라 가는 루트 설명 등을 가지고 나왔다. 중심지의 숙소는 80이 넘었다.

나 들목 쪽의 싼 숙소 들을 가 보기로 하고 다시 빗속을 한참 걸어 내려 간다. 이비스 호텔 표지를 따라 걷다가 황량한 고속도로에 도착했다. 자동차 만을 위한 표시라 어디쯤 숙소가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아래로 내려가서 다시 고속도로 맞은 편의 길을 따라 동네가 있는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 가는데 예쁜 시냇물이 흐르는 아름다운 길이다. 짐은 무겁고 비에 젖었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오솔길을 발견하는 것도 참 행운이다.

다행히 B&B호텔이 눈에 들어 온다. 가격도 45유로 정도. 에탑 급의 호텔이다. 1시간 반을 비 맞고 헤메다 발견한 숙소이다. 세금까지 46 쯤 내고 들어왔다. 숙소는 작지만 아주 짜임새 있고 깨끗하다. 캐빈형의 방이고 번호를 눌러 들어 온다. 아주머니는 불어 밖에 못했지만 대화에 별 어려움이 없이 눈치껏 다 된다. 안타깝게 인터넷은 시간 당 돈을 내야 하는 상태인 듯 해서 포기했다. 대충 먹을 것들이 있으니 상치나 사서 저녁을 해 먹기로 결정했다. 까르푸는 멀다고 해서 옆 동네의 가게로 간다. 작은 동네 채소가게에서 상치를 샀는데 값이 어느 곳 보다도 싸다. 이곳에도 카지노 수퍼가 있어 들어가 봤지만 역시 비쌌다. 남편이 버스타고 시내에 한번 가 보자고 한다. 2번 버스로 동네를 굽이굽이 돌아 중심부에 내렸다. 역시 비가 많이 와서 구경은 힘든 상태이다.

모 노플릭스 라는 백화점 지하의 수퍼에 갔다. 이틀을 있기로 한 터라 한참동안 물건을 많이 샀다. 좀 과분하게 산 듯하다. 바게트 빵을 뜯으며 물건을 바리바리 들고 버스 정류장을 찾아 가는데 좀 헤멨다. 9번 버스를 타야 숙소 앞에 바로 도착할텐데 한대를 놓쳐서 2번 버스로 처음 탔던 동네에 내렸다. 다시 걸어서 숙소로 가야하는데 밤이 되어서 길이 영 혼동 되는 거다.

겨 우 길을 찾아 비를 맞으며 걸어서 숙소에 도착했다. 정말 하루 종일 원 없이 비를 맞은 날이다. 슥소에 오니 힘이 쭉 빠진다. 밥을 하고 소시지와 삼겹 훈제를 물에 끓였다. 끓이기를 잘 한 것이 모두 많이 짜다. 특히 훈제 삼겹은 어찌나 짠지 내일 다시 한번 우려야 할 판이다. 고기 고기한 식사이다. 상치와 함께 먹고 나니 피곤해서 나는 초저녁에 잔다. 남편은 오늘 맥주를 많이 샀는데 그 중에서 특히 '바바리아'라는 네덜란드 흑맥주가 맛이 좋단다. 값이 싸서 기분이 좋은 듯하다. 내가 자는 동안 영화 보면서 맥주를 네 캔이나 먹었단다. 우리나라 맥주 크기의 1.5배에다가 7.9도 짜리이다. 내가 먹어 봐도 맛은 좋다.

얘 기 나누다가 남편은 자고 나는 일기를 쓴다. 이 숙소는 마을과도 떨어져서 고속도로 반대 편인 우리 방의 창 밖은 자연의 풍경 그대로 이기 때문에 조용하고 참 좋다. 발품을 판 보람이 있어 다행이다. 사람의 마음이 숙소를 못 잡았을 때의 부랑자 같은 처량한 신세에서 숙소라도 잡으면 그 마음 편함의 상태가 없을 때와는 극과 극이다. 지금은 비도 오지 않고 날이 좋아져서 내일은 세잔느가 주로 그렸던 아름다운 생뜨 빅뚜와르 산에 트래킹을 가려고 한다. 시내의 세잔느 궤적 따라 관광하기는 너무 시시콜콜한 장소가 다 있어서 안 하기로 했다. 비가 계속 오면 음식을 많이 샀음에도 불구하고 마르세이유로 가려고 했는데 그쳐서 다행이다. 남편은 마르세이유도 하루 있고 싶어한다. 이곳이 좋단다. 오늘은 어쩌다 보니 수퍼마켓 관광이 된 날이다.    

2008. 1.5(토) : 엑상 프로방스

일 기 쓰다가 3시에 잤다. 7시에 일어나 밥을 한다. 어제 밤은 침구가 부드럽고 포근해서 너무나 잘 잤다. 게다가 방이 더울 정도로 따듯하다. 하늘이 흐리기는 하지만 날이 개었으니 오늘은 등산을 하기로 한다. 어제 남은 소시지를 다시 끓였더니 짠 맛이 더 빠졌다. 오늘은 렌탈 콩과 소시지가 든 캔을 땄는데 생각보다 맛이 좋아서 남편과 거의 다 먹었다. 속에 있는 소시지도 맛이 있는 것이 모노플릭스의 제품은 믿을 수 있다. 나머지 소시지는 렌탈 콩과 함께 도시락으로 쌌다. 어제 밤에 오다가 어디에 지갑을 흘렸는지 없어져서 40유로 이상을 잃어 버렸다. 비 오는데 서둘러 오다 주머니에서 빠졌나 본데 영 아깝다.

080105_01.Information080105_05.Mt.St.Victoire3
아를 시내의 인포 건물 / 생뜨 빅뚜와르 산

9시 넘어서 숙비를 하루치 더 지불하고 종점에 대기 중인 9번 버스를 타러 뛰었다. 중앙에 내려 인포에서 생뜨 빅뚜와르 산에 가는 버스를 묻고 10회 버스권을 끊었다. 그런데 대기 중인 기사에게 물으니 이 버스는 10회권을 쓸 수 없단다. 반납이 안된다는 걸 겨우 돈으로 돌려 받았다. 작은 봉고형 버스로 산에 가는 길은 교외의 지역을 굽이굽이 돌아 올라가는데 풍경이 좋다. 생뜨 빅뚜와르 산은 1000m가 넘는 아주 큰 덩어리의 바위산이었다. 인디언의 영산과 같은 기운이 감돌고 희고 회색의 절벽들이 아찔해 보인다. 세잔느가 그리고 싶었을 만큼, 안 보면 후회될 만큼 멋진 산이다. 기사 언니가 내려 준 곳은 가장 높은 지점인 '메종 생뜨 빅뚜와르'이다. 날씨가 무척 춥고 비도 조금씩 내리는데 무엇보다 바람이 심해서 등산을 할 수 있을까 싶은 지경이다. 바로 앞의 메종(집)에서는 이 산에 대한 정보와 등산로를 알려주었고 또한 간단한 전시실도 갖추고 있었다. 기사 언니나 설명해 주는 직원 누구도 이런 날씨에 왜 등산을 하느냐는 이야기를 안한다. 판단력을 가진 성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이 사람들의 체질이라는 느낌이다. 그래서 농담으로 내가 "이런 날씨에는 누군가 말려 줘야 정이 있는거 아냐? 이 사람들은 정이 없어!"하고 농담을 하며 웃었다. 우리는 프랑스 사람들의 이런 정신을 높이 산다.

080105_10.At.Mt.St.Victoire080105_11.At.Mt.St.Victoire2
생뜨 빅뚜와르 산 앞에서

꼭대기도 아닌 가장 쉽고 가까운 경로로도 3시간 반 이상이 걸린다고 하고 곧바로 정상으로 가는 길은 아주 험하단다. 밖으로 나와 보고 우리는 시원스럽게 포기하기로 했다. 아니, 바람 속에 서 있으면 몇 초도 견디기 어려워 절로 포기가 된다. 산 위로는 검은 먹구름이 몰려온다. 겨우 30여 분 버스를 기다리는 데도 너무나 추워서 측백나무 옆에 숨어서 서 있었다. 이렇게 번듯한 나무를 고호는 소용돌이 치는 것으로 인식해서 그리다니... 11시 15 분에 차가 나타나니 참 반가웠다. 30여분 만에 호기롭게 등산하겠다던 사람들이 다시 탔으니 우리도 쑥스러워서 너무 춥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080105_13.At.oldstreet080105_15.At.oldstreet3080105_16.At.oldstreet4
아를 시내에서

시내에 내려서 주변을 둘러 보기로 했다. 토요일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이 나와서 돌아다니고 점심 시간이라 빵들을 사서 끼고 다닌다. 나도 바삭한 빵이 먹고 싶어 괜히 바게트 빵을 사자고 했고 남편은 앤초비 피자를 골랐다. 바게트는 바삭하니 맛이 있었다. 그렇지만 엔쵸비는 우리의 짠 멸젓과 거의 똑같아서 처음엔 으악했는데 먹을 수록 나름 풍미가 느껴졌다. 위쪽 동네에서는 거리에 장이 열려 다양한 품목들을 파는데 야채 시장에서 토마토와 양파를 샀다. 거리를 돌다가 날도 스산하고 피곤하니 수퍼에 들러 숙소에서 쉬기로 한다. 모노플릭스에서 필요한 것만 사고 9번 타고 돌아왔다.

남 편은 밥을 준비하고 나는 지갑을 찾으러 어제밤에 왔었던 길을 되집어 갔다. 별 기대는 안했지만 역시 없다! 버스에서 빠뜨렸을 수도 있다. 동네 채소가게에서 포도 한 송이 사고 돌아왔다. 남편이 토마토와 양파를 넣은 소시지 볶음을 했는데 맛이 좋은 편이다. 포근한 침대에서 낮잠 자고 나니 5시 경이 되어 서서히 해가 저문다. 9시에 날이 밝아져 5시면 어두워진다. 바게트 빵에 쌀푸딩, 밥도 배부르게 먹었다. 오늘 오후는 늘어지게 쉬는 날이다. 내일은 마르세이유에 가서 하루 잘 것이다.

2008.1.6(일) : 엑상 프로방스 - 마르세이유 - 몽펠리에 - 바르셀로나

아 침 6시 넘어 일어났다. 밤새 너무 오래 자서 좀 뒤척였다. 라비올리 캔을 따서 토마토를 더 썰어 넣고 우유를 부어 스프 비슷하게 만들어 바게트와 같이 먹었는데 아침으로는 괜찮다. 소시지를 많이 먹어서 차라리 깔끔한 음식이 낫다. 동이 트기도 전 7시 45분에 숙소를 나섰다. 9번 버스 타는 곳에 가서 시간표를 살펴보니 일요일은 버스 운행이 없다!

080106_02.FantasticParking 080106_03.ToMar
가는 길에 본 스마트. 이렇게 좁은 곳에 주차할 수 있다니! / 마르세유 가는 길

다 시 2번 버스를 타러 걸어 올라 가다가 그냥 역까지 걸어 가기로 한다. 먹을 것을 많이 산 채 그대로 떠나는 거라 짐이 꽤 무겁지만 할 수 없다. 건너 편 길에 아주머니 한 분이 기다리고 서 있길래 왜 그럴까 생각했는 데 나중에 알고 보니 굳이 역까지 가지 않아도 그곳에서 버스가 서는 곳이었다. 우리는 잘 몰라서 그냥 역까지 걸었다. 길을 걸으면서 보니 길 가에 주차된 차들 마다 거의 모든 사이드 미러가 파손되어 있다. 몇 십대의 차들이 그렇다. 못된 녀석들이 이곳에도 물론 있겠지만 너무 심하다. 역 앞에서 바로 마르세이유 가는 버스가 왔다. 가는 길은 안개가 끼어 산과 들판이 아른거려 참 예쁜 풍경이었다. 무엇보다 비가 개어서 다행이다. 20분후 역 근처에 도착해서 차 시간을 보러 갔다. 다시 숙소를 잡고 하루 머물 생각을 하니 그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라 그냥 오늘 바르셀로나로 가기로 했다. 표 끊는 직원은 자리가 없는 듯 8일까지 검색을 해보더니 다행히도 열차표를 끊어 준다. 짐을 보관할까 했는데 작은 짐 한 개가 4유로 라고 하니 그냥 짐을 지고 비외 포트(항구)까지 걷기로 한다.

080106_05.Marseille080106_06.MarseillePort
마르세유 풍경

해가 환하게 나와 거리도 깨끗하고 마음까지 밝아진다. 이곳은 프랑스 혁명의 정신을 살렸던 바로 그 도시가 아닌가... 프랑스의 국가도 '라 마르세예즈'이고 말이다. 건물들은 남프랑스의 전형적인 베란다가 있는 것들이다. 짐이 무거운 것이 흠이지만 어쨌든 걸어서 항구에 도착하니 생선 노점이 열려 사람들이 기웃거린다. 서대, 새우, 오징어, 문어, 대형 갑오징어, 작은 생선들까지 참 다양한 생선들을 먹는다. 가격은 웬만하면 10유로가 넘는다.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배경인 이프섬에 가려고 했지만 일요일은 2시 반에 배가 있다고 한다. 인포에 가서 자료도 보고 부이야베스가 맛있는 집을 추천해 달라고 하니 두 군데를 말하는데 값이 비싸다.

080106_08.MarseillePort_Voirbaise080106_09.MarseillePort3
오늘의 비싼(!) 메뉴 부이야베이스 / 항구 어시장 앞에서

바 닷가의 식당가를 걸으며 가격표를 살펴 보다가 16정도에 오늘의 메뉴로 부이야베스를 먹을 수 있는 곳을 찾았다. 가격 때문에 남편도 좀 고민을 하더니 먹기로 했다. 부이야베스(16)와 연어 크림치즈 파스타(12)를 시켰다. 물도 공짜로 주고 서민적인 느낌의 식당이다. 식당에서는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어 좋다. 마르세이유 특산물이라는 부이야베스가 어떤 맛일지 참 궁금했다. 처음에는 작은 바게트를 바싹 구워 마늘 소스 같은 걸 발라 먹도록 곁들여 나온다. 본 요리인 부이야베스가 나오는 걸 보고는 신기해서 놀랐다. 생선찜 같이 나오는 걸 갸르송(보이)이 살만 발라주고 머리와 뼈는 가져 간다(아깝다!). 그 다음에 다시 스프를 가져와서 요리에 부어 준다(카레색이나 된장국 같은 색). 그런데 그 맛이 유럽의 요리가 아니라 미얀마 정도의 느낌이 나는 거다. 싱싱하지만 약간 비린 생선에 된장을 풀어 끓인 것 같은 아주 동양적인 맛이다. 남편은 감탄을 하면서 한동안 잘 먹더니 느끼하다며 나를 주어 버린다. 특히 장어인지 아구인지 이상한 생선이 무척 고소하며 비린 맛이 났다. 마르세이유는 느낌이 목포같고 이 요리는 목포의 갈치국 같다. 내 요리인 파스타도 생크림을 넣어 부드럽고 고소하다. 남편은 연어 파스타도 무척 잘 만든 요리라고 칭찬을 했다. 정말 배부르고 맛있게 먹었다. 맛이 진해서 당분간 생선은 먹기 싫을 것 같다. 팁까지 30 유로가 들었지만 맛이나 모든 면에서 잘 먹었다는 생각이 들어 만족스러웠다.

080106_10.MarseillePort4080106_11.MarseillePort5
080106_12.MarseillePort080106_14.MarseillePort6
080106_13.MarseillePort080106_15.MarseillePort7

배 가 부르니 항구를 끼고 돌아 햇살이 따듯한 벤치에 앉았다. 모두들 그렇게 앉아 해바라기를 많이 한다. 바로 이것이 남프랑스의 날씨이구나 싶을 만큼 기막히게 좋은 날이다. 한동안 앉아 사람 구경을 하다가 다시 걸어서 역으로 돌아왔다. 이곳에서도 1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 플랫폼의 의자에 앉아 헤어지는 사람들 구경을 한다. 뺨뽀뽀(비쥬)를 하거나 키스를 끊임없이 해대며 헤어지는 연인들, 손자를 배웅하는 할아버지의 모습까지 사는 것이 다 비슷하다.

비 쥬를 하는 걸 보면 특히 이 사람들이 따듯하게 느껴진다. 좋은 구경을 했다. 기차는 Corail TEOZ로 TGV는 아니지만 그 만큼 빠르다. 3시 정각에 떠났는데 1등석 자리가 많이 지저분 하다. 기차가 고속으로 달려서 인지 약간 어지러울 만큼 많이 흔들린다. 어이 없게도 아를르 역에 기차가 서고 니메를 지난다. 아를르를 지나는 줄 알았다면 여행 루트가 좀 달라졌을 것이다. 우리 칸이 열차의 첫 칸인데 화장실을 한참 뒤지고 다녀도 문이 잠겨 있어 못쓰고 있었는데 내릴 때쯤 우리 자리 바로 뒤의 마지막 부분의 화장실 만 열린 것을 발견했다. 눈앞에 두고도 못찾은 것이다.

080106_17.InTalgo080106_18.Talgo
바르셀로나 가는 탈고(TALGO) 열차

1시간 반만에 몽펠리에에 도착했다. 내리는 열차 바로 앞에 바르셀로나 가는 열차가 대기하고 있어 아주 쉽게 탈 수 있었다. 그런데 얼마나 탈고 1등석이 낡았는지 황당하고 놀라울 정도이다. 우리나라 60, 70년대 스타일의 응접실 의자가 놓여있다. 앉아 보면 의외로 편하지만 옷걸이 하나나 테이블도 없어 프랑스의 열차와 극대비를 이룬다. 그러나 좌석의 간격이 넓고 뒤로 많이 넘어 가서 좋았다. 해가 지는 벌판을 바라 보며 져녁 대신 과자와 과일을 먹었다. 앞 사람의 의자가 갑자기 심하게 뒤로 제껴지는 바람에 고개를 숙이던 남편과 부딪치는 사고가 났다. 많이 아파하는 걸 보니 정말 탈고 의자가 사람 잡겠다.

이 야기를 나누다가 한숨 자는데 갑자기 '뻥'하고 터지는 소리가 앞에서 나서 무슨 작은 폭발물이 터지나 했다. 우리 앞의 앞자리의 창 위쪽이 주먹 만하게 터졌다. 다행히도 아줌마가 커튼을 치고 있어서 커튼과 창 사이에 유리가 거의 떨어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커튼을 열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닫고 있어서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승무원이 와서 조사를 하려고 짐을 두고 옆칸으로 옮기라고 한다. 옆칸에 자리를 잡고 앞 자리의 언니에게 물어 보니 아마 누가 달리는 열차에 돌을 던진 것 같다고 한다. 남편은 혹시 총을 쏜 것이 아닐까 의심스럽다고 한다. 뭔지는 모르지만 빠르게 달리는 열차에 이런 행위를 한다는 것은 참 무서운 일이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다치게 하려는 행위는 정말 황당한 일이었다. 아침에도 차의 사이드 미러가 다 부러졌었는데 여기도 이상한 사람들이 꽤 있나 보다.

9 시 45분에 역에서 내려 산츠역 쪽에 민박이 몰려있으니 일단 그리로 이동하기로 했다. 민박에 들 것은 아니지만 싼 숙소는 그 부근에 있다고 했었다. 그런데 밖으로 나와 보니 늦은데다 너무 넓은 도시여서 도무지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다.

몇 사람에게 전철역을 묻다가 다행히 그쪽으로 가는 오빠를 만나서 같이 따라 갔다. 한참 같이 걸었는데 늦은 밤에도 식당이나 먹는 곳에 사람들이 많았다. 벨기에 말고는 밤에도 이렇게 늦게까지 잘 노는 유럽인들은 없었다. 모두 여유있게 노는 모습들이다. 물론 일반 가게는 다 닫혀 있다.

오빠가 전철 10회권 끊는 법과 타는 법을 잘 알려 줘서 쉽게 산츠역까지 왔다. 전철에서 본 스페인 사람들은 키가 작으나 골격이 크고 특히 얼굴이 커서(앞 얼굴은 좁으나 전체적인 머리 크기가 우리 만하여 덩실해 보인다) 지금까지의 유럽인들과는 많이 달라 보인다. 이탈리아는 남자가 잘 생기고 스페인은 여자가 예쁘다더니 과연 전철 안의 젊은 언니들이 이목구비가 또렷한 것이 예뻤다. 산츠역에서 밖으로 나오니 역시 어리벙벙하다. 역의 호텔은 무척 호화로워 보여 엄두가 안나고 길은 크고 횡해서 어디로 가야할 지 알 수 없다.

다행히 멀리 커다랗게 건물에 'hostal'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우선 그쪽으로 가며 다른 곳이 있는지 찾아 보기로 한다. 대로에는 불이 환하고 사람들도 걸어다니고 있어서 새로운 도시인데도 낯설거나 어색하지 않고 편안하다. 'hostal'은 2인실이 46유로여서 가격도 괜찮았는데 들어와 보니 넓고 쾌적한 공간에 욕실도 좋고 깨끗하다. 이 가격에 이 정도라니 감격이다. 확실히 프랑스 보다 물가가 싼 모양이다.

밖에 나가서 물을 사 보려 했지만 역시 연 곳이 없다. 밥을 해 먹는 것은 포기하기로 하고 적당히 먹고 자기로 결정했다. 이곳은 날씨가 어찌나 포근한지 봄밤 같다. 사람들의 옷차림도 얇아 우리 오리털 파카가 덥게 느껴진다. 걸어다닐 때 부는 엷은 바람이 상쾌하게 느껴진다. 이탈리아가 겨울이었다면 아를르는 겨울을 앞두고 비를 뿌리는 늦가을 정도였는데 이곳은 봄밤이니 살 만하다. 실내는 난방이 잘 되어 덥다. 창을 여니 시원하게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이 좋다. 숙소를 아주 잘 잡았다. 둘 다 샤워를 했고 남편은 지금 내일 일정을 확인하고 있다. 대충 감이 잡힌다고 한다. 우리가 내렸던 프란사역이 모든 것의 중심이 되는 곳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찌하여 이곳까지 오게 된 셈인데 숙소가 마음에 들고 이 근처의 분위기도 좋아 만족하고 있다. 먹을 걸 조금 먹고 자야겠다.

 

상위메뉴로 다음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