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유럽/모로코여행

3. 에스파냐 1부 (바르셀로나)

2008.1.7(월) : 바르셀로나

6시 반에 밥을 하고 고등어 통조림, 김, 오징어 젓에 지은 밥을 다 먹었다. 날씨가 푸근하니 파카를 입지 않고 얇게 걸치고 9시에 숙소를 나선다. 전철을 타고 골든 스퀘어 지구에 갔다. 가우디가 지은 집 까사 밀라에서 의자에 앉아 집 구경을 했다. 철제 베란다가 덩쿨이 뻗어 오르는 것처럼 가지각색으로 꿈틀거린다. 처음에 이 건물을 본 느낌은 좀 무섭고 기괴했다. 아래에서 보면 이스터 섬의 석상들 처럼 어딘가를 바라보는 모습이다. 그런데 멀리서 볼 수록 아름답고 신기하다. 100여년 전에 이런 것을 만들 생각을 한 사람이 있었다니 지금 만든다 해도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 것이다. 음산하고 이상한 기운이 도는 느낌의 건축물이라 살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가우디의 기발함도 놀랍지만 이것을 인정해 주는 스페인 사람들이 더 놀랍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정말 특이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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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디의 건축물 까싸 밀라와 까싸 바뜨요

'빵 앤 컴퍼니'라는 곳에서 향기롭고 맛있는 커피 두 잔을 먹으면서 좀 쉬었다. 나와서 바르셀로나가 1854년 도시확장을 하며 새롭게 만들어 낸 아르누보적인 모데르니스메(Modernisme/모더니즘) 양식의 건축물들을 둘러 보았다. 까사 밀라도 돈을 내고 들어 가야 하지만 가우디의 까사 바뜨요(베란다의 모습이 외계인 얼굴 같고 타일을 이용한 벽장식이 예쁘다)도 16유로의 비싼 입장료를 받고 있어 바깥에서만 구경 했다. 그 옆의 건물들도 모두 유명한데 공사중인 것도 있고 꽃무늬 장식이 아름다운 것도 있다. 각기 색다른 건물들을 구경하며 내려 가다가 까딸루니아 광장 부근의 백화점 지하에서 과일과 물을 샀다. 스페인 산의 만다린은 귤과 오렌지의 중간 형태인데 시지도 않고 맛이 좋다. 광장을 지나면 사람들이 많이 산책하는 람블라스 거리가 나온다. 여름에는 버즘나무가 숲처럼 장관을 이룬단다. 이곳에서 하루 종일 마임을 보여주는 사람, 동상처럼 서 있는 사람들, 꽃과 새 등을 파는 상점을 구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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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시아 거리와 까딸루냐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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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블라스 거리의 모습

전자 상가에서 남편이 물건을 구경하는 동안 철쭉이나 시클라멘 등 파는 꽃을 둘러 보다가 우연히 '라 보꿰리아'라는 일종의 중앙시장을 발견했다. 남편과 함께 시장 구경을 하고 과감하게도 숙성된 생돼지고기 하몽을 샀다. 언니가 큰 칼로 얇게 포를 뜨며 직접 써는 모습이 신기하다. 하몽 덩어리는 미이라처럼 보이는 돼지 통뒷다리를 얇데 썬 것인데 통짜로 걸려있는 것은 발효된 퀴퀴한 냄새가 난다. 주렁주렁 여러 개가 걸려있는 모습을 보면 좀 무섭다. 이곳 시장에는 각종 과일, 채소 음식들을 판다. 람블라스 거리를 걸어 내려가다 버거킹에서 싼 햄버거를 하나 먹었는데 남편은 맛이 괜찮다고 한다. 화장실도 들를 수 있어 이런 곳이 유용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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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에서

항구로 가면 60m 높이의 기둥 위에 서 있는 콜롬버스 동상이 있다. 먼 곳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 모습이 저 땅을 다 먹어 버리자고 하는 것 같다. 바다는 굉장히 맑고 마르세이유와 비슷한 인상을 준다. 신기하게도 꽤 큰 숭어 같은 물고기가 잔뜩 있다. 아마 못 잡게 하는 것 같고 오히려 먹이를 주는 사람들이 있어 사람 가까이에서 항상 맴돌고 있다. 여기는 생선이 비싼 편인데 튼실한 것이 먹으면 살이 많을 거다. 따사로운 햇살이 여유롭게 느껴지는 이곳에 사람들은 눕거나 앉아 오랬동안 햇볕을 쏘인다. 우리도 앉아서 쉬며 쵸콜릿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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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전철을 타고 가우디의 걸작 사그라타 파밀리아 성당을 보러 갔다. 한 눈에 보기에도 정말 대단하고 믿기지 않는 건축물이다. 한눈에 안 들어 오니 멀리 밖에서 사진을 찍고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옥수수 모양의 탑들은 앙코르 와트의 형상과 비슷하다. 입구인 뒷편은 각이 많이 진 예수 수난의 모습들이 새겨진 '수난의 문(서쪽)'으로 가우디의 작품은 아니다. 조각상 들이 모가 많이 나서 불길하다고 비난을 받은 논쟁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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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는 거대한 나무가 하늘로 ㅤㅅㅗㄷ구쳐 오르는 형상을 한 기둥들 위에 이파리들이 천장 쪽에 펼쳐진 형상을 하고 있다. 마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부해 밑의 생명 나무들을 떠올리게 한다. 자연에 대한 뛰어난 관찰력을 지닌 괴짜 천재라는 생각이 들어 볼 수록 감탄을 하게 된다. 정말 "와!'하는 소리 밖에 안 나온다. 내부는 공사 중인데 아마 이 건물은 100년은 더 지어야 할 것 같다. 성당 안에는 꼭대기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 가려고 줄 서서 기다리는 행렬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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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의 앞쪽으로 빠져 나가면 더 장관이 펼쳐진다. 예수의 탄생의 과정을 담은 '탄생의 문(동쪽)'은 보다 정교하고 복잡한 장식이 된 상들로 이루어져 있어 한참을 보아야 한다. 동방박사와 예수의 탄생을 기뻐하는 인간과 천사의 무리, 유대인들이 수난의 역사 등이 담겨져 있고 건물 위는 역시 나무와 비둘기의 형상들이 있다. 왼쪽으로는 포도 형상의 타일 탑도 보인다. 한 인간이 당대에 완성하지도 못할 이런 건축물을 만들려고 했다니... 대단한 욕심과 야망을 가진 자 였는지 미래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고 물질적 걱정을 뒤로 한 채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려고 했던 괴짜 천재였는지 알 수 없다. 만드는 과정이 대단히 더디고 돈이 많이 들 수 밖에 없게 되어 있는 건물이다. 모든 부분이 직선이 없고 특이해서 일일이 거푸집을 만들어 물건을 떠서 붙이고 씌우는 수작업을 반복해야 한다. 옆 쪽의 박물관에서 만드는 과정을 비디오로 보니 그 어려움을 더 잘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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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디는 모든 건축물은 구석 구석에 자연의 형상들을 차용하고 있었다. 소용돌이 무늬의 계단이나 물결 무늬의 지붕, 민들레의 잎이 돋는 과정인 로제트 형의 꽈배기, 나무 기둥의 옹이, 모래시계 모양 등 정말 다양했다. 그러한 상상력이 반영되어 그대로 건물로 만들어지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가우디는 16년 동안 성당의 작업 공간 구석을 연구실로 이용하여 침대 하나 놓고 살다가 전철에 치여 죽었는데 그 모습이 부랑자 같아서 가우디인지 몰랐다고 한다. 박물관에서 나와 서도 다시 한번 성당을 더 둘러 보았다. 처음에 안 보였던 부분이 새롭게 보인다. 시간이 되면 밤에 다시 와서 보기로 했다.

전철로 다시 람블라스 지구에 와서 구엘저택에 가 보았지만 공사중이다. 시장에서 버찌 등 과일을 사고 까르푸에 들러 필요한 것을 더 샀다. 술 종류가 정말 싸다. 전철 타고 돌아와 흑소시지와 양송이, 토마토 등을 넣은 일종의 스튜를 만들었다. 야채가 든 밥과 같이 먹었는데 흑소시지는 우리의 순대와 아주 똑 같아 먹을 만 한데 까르푸 상표의 프랑크푸르트 소시지는 너무 맛이 없다. 300원 짜리이니 싼게 비지떡인 셈이다. 먹고 싶었던 버찌는 맛있게 잘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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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먹은 저녁...하지만 너무 맛이 없었다.

저녁을 먹고 물가 조사차 숙소 주변의 수퍼에 갔는데 까르푸 만큼 가격이 싸다. 특히 술 값은 맥주나 와인이 물값이었다. 물을 퍼서 장사를 하는 것인지 몇 백원 짜리들도 많다. 내일은 이곳에서 장을 보기로 하고 커피 하나 사서 돌아 온다. 이 부근이 상점들은 신발과 옷을 대폭 세일 중이라 가게 마다 사람이 넘쳐 나고 흥청거린다. 밥 8시가 넘었는데도 수퍼와 상점이 번잡한 나라는 스페인 뿐 일 것이다. 남편은 숙소의 인터넷을 이용하여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해안이가 국토 순례에 잘 갔다고 한다. 우리 딸은 얼마나 고생을 하고 있을지... 남편이 사진을 정리하고 일정을 짜는 동안 나는 한숨 자고 일어났다.  일기를 쓰고 있는 동안 남편이 잠 들었다. 내일은 갈 곳이 너무 많아 어느 곳을 포기해야 할지 생각해야 한다.

 

2008.1.8(화) : 바르셀로나

아침에 파스타를 끓여 먹고 빵과 치즈, 과일을 도시락으로 쌌다. 9시가 넘어서 나서서 고딕지구로 지하철을 타고 갔다. 성당을 찾아 다니다가 우연히 유기농 매장을 발견하여 반가워서 들어가 살펴 보다가 보리 시리얼과 과자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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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의 예쁜 안내표지 / 대성당 앞의 갤러리 문

바르셀로나 대성당은 이사벨라 여왕이 콜롬버스를 영접한 유명하고 역사가 깊은 곳이다. 성당은 지금까지 보았던 유럽의 어떤 성당보다도 아름답고 섬세했다.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기교란 기교는 다 부려서 나무를 다듬어 깎고 철을 구부려 성스럽고 아름다운 모습을 표현했다. 전형적인 고딕 양식인 이 성당을 보니 가우디의 성당이 더 잘 이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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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딕 양식의 기둥도 나무와 비슷하게 천장을 향해 뻗어 자라는 생명의 나무 모양을 하고 있는데 예전에는 미처 ㅤㄲㅒㅤ닫지 못한 것이다. 밖의 옥수수 지붕도 가우디의 지붕과 비슷하다. 이곳의 성가대석이 유명한데 의자마다 장식의 모양이 다 다르고 대단히 아름답다. 양쪽 벽면의 상들 중에는 부처님 같은 예수님도 있고 다양하며 아기자기 하다. 정원에는 시원스럽게 나무들이 자라고 있으며 그 의미는 잘 모르겠으나 이곳만의 독특한 특징인 거위를 기르고 있었다. 이 정도로 멋진 성당을 만들었다면 충분히 남미의 인디오들을 야만인으로 취급하고 함부로 할 수 있을 정도로 오만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문명과 야만으로 나누었던 그들의 오만이 대량으로 인디오들을 학살하고 그들의 문명을 파괴했으니 그 죄를 다 어찌할까... 이곳에는 인디오 7명을 데려와 세례를 주었다는 표지판도 있다. 열심히 걸어 피카소 미술관에 갔지만 오늘부터 14일까지 공사 중이란다. 하필이면 딱 맞췄나 싶지만 못 볼 운명이니 할 수 없지 어쩌겠나.

전철로 까탈루냐 광장으로 가서 24번 버스를 타고 한참 산길을 올라 구엘공원에 갔다. 이렇게 외지고 높은 곳에 공원이 있을 줄은 몰랐다. 가우디의 놀라운 상상력이 다시 한번 나타나는 곳이다. 파도치는 모양으로 기울어진 신기한 회랑을구경하고 기둥을 끼고 위쪽으로 올라가 산책을 했다. 다시 내려와서 조각 타일로 장식된 긴 의자에 앉아 빵과 토마토, 치즈, 소시지로 점심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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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엘 공원의 이모저모

그 아래 쪽에 놓인 정문 양쪽에는 놀이 동산에서 볼 법한 예쁜 집 두채가 있다. 파도무늬 회랑을 끼고 내려가 도마뱀 장식의 유명한 분수대도 찍고 넓은 홀의 타일 천장 장식도 구경한다. 다양한 색감의 타일을 사용하는 방식은 이슬람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생각한다. 다시 공원 위로 걸어 올라와 옆길로 나가서 24번을 타고 시내에 내렸다. 발렌시아 가는 버스를 알아 보려고 전철로 터미널에 갔다. 다양한 시간대에 버스가 많아서 일단 기차와 비교해 본후 결정하기로 했다. 70분 이내에는 계속 표가 한번으로 인정되므로 부리나케 다시 국철을 탔다. 여기까지 버스, 전철, 국철이 표 한장으로 해결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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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쥬익 올림픽 경기장

다시 전철에서 버스로 갈아 타며 몬주익 언덕에 올라가다가 올림픽 경기장에서 내렸다. 사진을 찍고 나오다 보니 유명한 황영조 선수의 상이 입구에 있다. 게다가 바르셀로나는 경기도와 자매도시라고 푯말과 기념비가 새겨져 있었다. 생각도 하지 않던 곳에서 이런 걸 보니 매우 반가웠다.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어도 우리나라 사람은 유난히 애국심이 강하다. 이런 걸로 이렇게 좋아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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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걸어가서 후안 미로 재단에 갔다. 세계에서 미로의 작품이 가장 많은 곳이다. 들어가면 피카소, 마그리트의 작품도 있고 초현실주의 미술가들의 다른 작품들도 많다. 어릴 때는 미로의 그림을 보아도 그 의미를 전혀 알 수 없었는데 이제 보니 뭔가 일상적인 인간의 단계를 넘어 선 인간의 작품이 느껴진다. 어린이의 그림 같으면서도 색이 선명하여 강렬한 인상을 준다. 건축가인 친구가 미로를 위하여 만든 건물이라 미로의 그림들에 걸맞게 공간이 만들어지고 편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동선이 잘 배치되어 이어지므로 감상하기에 좋다. 피카소의 그림을 못 봐서 아쉬웠는데 미로의 그림은 실컷 볼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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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 내려오다 바르셀로나가 한 눈에 조망되는 유명한 국립예술박물관 앞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며 사진을 찍었다. 겨울이라 분수대는 켜지 않는 듯 하다. 스페인 마을은 만일 내일 아침 시간이 된다면 그때 올까 생각 중이다. 내려와서 커다란 폭의 강남과 같은 대로를 걸어 산츠역에 와서 발렌시아 가는 기차를 알아 보았다. 남편이 미리 검색해 둔 것이 있다고 해서 숙소에서 확인하기로 하고 수퍼로 향한다. 좁은 골목길을 가로질러 가니 푸근한 작은 동네가 보여 우리도 잠시 조그만 광장의 벤치에 앉아 쉬었다. 수퍼에서 먹거리를 사고 숙소에 와서 냉동식품 오징어 먹물밥을 만들었다. 쌀이 우리 것과 비슷해서 가져 온 취사 도구로는 밥 하기가 힘들었다. 맛은 짜장과 비슷하고 별로 대단한 맛은 아니다. 여러 색의 소시지 모듬도 샀는데 짜서 한참을 물에 끓이고 우려 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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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거리의 예술품, 가로등

남편이 바르셀로나 축구 구장인 누캄프 경기장에 가고 싶다고 해서 산책 겸 걸어 갔다. 막상 가 보니 문이 다 닫겨 있어 겉모습 만 볼 수 있었다. 유럽에서 가장 큰 경기장이라고 한다. 돌아 오는 길에 브라질 거리 쪽으로 걸어 왔다. 넓고 쾌적한 공간에 마치 스탠드처럼 생긴 재밌는 가로등들이 여러 방향으로 서 있는데 이것 때문에 바르셀로나가 더 자유분방하고 특이하게 느껴진다. 남편은 이제 바르셀로나가 대충 눈에 들어 오는데 내일 떠나기가 아쉽단다. 사실 나도 이곳이 무척 마음에 들기 때문에 뭔가 덜 본 것 같은 상태에서 떠나기가 아쉽기는 하다. 숙소로 돌아왔는데 남편이 발렌시아는 별로 볼 것이 없는 것 같으니 다른 곳으로 가면 어떨까 얘기 한다. 내일 만일 발렌시아를 안 간다면 어디로 갈지 더 의논을 해야 하는데 아마도 빌바오로 가게 될 가능성이 크다.  

 

2008.1.9(수) : 바르셀로나 - 빌바오

아침에 어제 남은 오징어 먹물밥과 살라미 비슷한 소시지들을 먹었다. 달걀도 삶아 두고 점심 먹을 준비도 해 두었다. 짐을 다 싸서 숙소에 두고 8시 넘어 나가서 빌바오 가는 12시 30분 차표를 끊었는데 9시간이나 걸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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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샤 거리의 그래피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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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마을에서

걸어서 몬주익 언덕의 스페인 마을에 올라갔다. 우리나라나 말레이시아의 민속촌 정도는 되는 줄 알았더니 아주 조그맣다. 게다가 집안을 구경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전국의 집 형태들을 모아 놓았다. 우리가 보기에는 집들이 비슷해서 별다른 차이를 못 느끼겠다. 게다가 집들은 식당이거나 기념품 점이다. 남편은 1인당 8유로 씩이나 내고 들어와 겨우 상점 구경을 하는 게 어디에 있냐고 불평을 하는데 사실 나도 실망스러웠다. 그나마 베니스 처럼 유리공예를 하는 것을 보여 주는 공장이 있어 만드는 과정을 재미있게 보았다. 유리를 다루고 입으로 불어 화병을 만드는 과정이 신기하다. 주변도 산책하고 유리공예 상점 등 여러 곳도 구경하다가 나왔는데 돈이 좀 아까웠다. 오늘 오전의 시간을 보내기에는 산책도 했으니 그럭저럭 적절했다. 그러나 이토록 별로란 것을 알았더라면 안 왔을거다.

T10 표가 마지막으로 남아 있어서 버스를 타고 언덕을 쉽게 내려가 전철로 숙소 앞에 내렸다. 수퍼에서 과자를 사고 돌아왔다. 점심 거리가 될 만한 것들을 꺼내 먹고 쉬다가 11시 45분 쯤 나가서 빌바오 가는 기차를 기다렸다. 이곳은 신기하게도 마치 공항처럼 짐을 스캔하고 열차 표의 끝을 떼어 받는다. 직원들도 공항 직원같은 차림을 하고 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는 자기 표만 있으면 별 절차 없이 바로 열차를 타는데 이렇게 철저히 검사를 하다니 좀 황당하다. 게다가 역시나 1등석 탈고의 자리는 낡고 별로다. 의자는 바르셀로나 올 때 보다 더 나중에 만든 것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서로 마주 보는 마지막 자리에 앉았는데 상대편의 덩치가 큰 아저씨는 불편하신지 열심히 다른 곳으로 이동해 다니셔서 그나마 편히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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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풍경은 황량한 평원이 펼쳐지거나 얕은 산이며 계속 고원지대로 올라간다. 날이 흐려지고 뿌옇게 되어서 앞도 희미하게 보이는데 하필이면 겨울 강수량이 전국에서 가장 많다는 빌바오에 가는 것이 과연 잘 하는 것인지 걱정스럽기도 했다.

우리는 다리도 올렸다가 건너편 좌석에 슬쩍 걸쳐 보기도 하고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데 반대편의 잘사는 집 마나님 같은 할머니는 우아한 자세로 앉아 잡지만 보고 가시는데 대단하시다. 주무시지도 않고 드시지도 않은 채 자세가 흐트러짐이 없다. 그 뒷편의 노부부는 두 분이 형제처럼 비슷하게 생기셨는데 만들어 온 도시락 샌드위치도 드시고 우리나라 사람처럼 오손도손 가신다. 우리 차 한량만이 빌바오에 간다.

처음 몇 시간은 자다가 일어났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책도 보고 노닥거리며 간다. 기차는 처음에 지도 상으로 볼 때 약간 아래쪽으로 내려가 따라고나, 사라고사를 거쳐 계속 위로 쭉 올라갔다. 중간에 두번이나 우리 앞 쪽의 기차가 떼어져 다른 방향으로 가고 새 기관차가 붙고 뒤에도 더 달렸다. 그럴 때마다 전기가 다 나간다. 나중에는 처음 탈 때 마지막 칸이었던 우리 차가 첫 기차가 되었다. 고지대를 오를 때나 이렇게 다른 기차를 붙일 때마다 많은 시간이 지체되었다. 달걀, 빵, 쵸코 과자 등을 부지런히 먹고 노닥거리며 정말 어떻게 9시간 이상을 갈 수 있었는지 우리도 대단하다. 그다지 지루한 여행이라고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열차가 30분 이상이나 연착해서 10시 20분 정도가 되니 시간은 늦어지고 도시나 숙소에 대한 정보도 없는 우리로서는 좀 난감했다. 인상 좋은 할아버지께 얹혀 볼까도 생각했으나 빌바오 전에 다 내리셨고 우아한 할머니도 인사를 건네고 진즉 가셨으니 우리 만 남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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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바오 역의 멋진 스테인드글래스

빌바오 역은 노동자와 농민을 담은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인상적인 곳이다. 도시의 이미지가 상당히 좋다. 밑으로 내려와 지도를 보니 별 1개 짜리 호텔이 두개가 주변에 있다. 가까운 곳에 있는 리파 호텔에 갔는데 60유로나 한다. 시간도 늦었기 때문에 그냥 들어 갔다. 밤 기온은 13도 정도로 푸근한 편이라 다행이다. 들어 가자마자 나는 지쳐서 씻지도 앉고 자고 남편은 일본 만화 영화를 보았는데 꽤 재미있었다고 한다. 혼자 와인과 참치 캔 같은 걸 먹으며 나보다 훨씬 늦게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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