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유럽/모로코여행

8. 다시 이탈리아로 (베니스)

2008.1.25(금) 카사블랑카 - 베니스

이 른 아침 일어나 짐을 챙기고 6시 10분에 역까지 걸었다. 어두운 길이라 사람도 차도 별로 없는 곳을 빠르게 걷는다. 기차표를 끊고 앉아 기다리다가 15분 전에 플랫폼에 들어가 보니 하필이면 공항가는 기차가 30분 연착이란다. 그러다 자칫하면 늦게 될 형국이다. 결국 표를 반환하고 밖에서 택시를 잡으려니까 큰 택시만 간다고 하고 250이나 달라고 한다. 돈이 218 남아 있다. 작은 택시라도 잡으려 하니 한 택시가 타라고 한다. 그러다 곧 옆의 기사끼리 서로 대화를 주고 받더니 안된다고 한다. 밖으로 더 걸어 나가 길에서 택시를 잡으려는데 아까 그 작은 택시 기사가 건너편에서 빨리 타라고 부른다. 그러더니 우리를 태우고 직접 자기가 가는 것이 아니라 건너편 식당에 있는 자가용 기사인 친구를 불러서 우리를 태웠다. 두 사람에게 재차 200밖에 못 준다는 걸 확인하니 알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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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함메드 5세 공항에서

동 이 트는 아침 길에 난데없이 낯선 자가용을 타고 가면서 잘 가줄까 걱정도 좀 됐는데 무사히 공항에 도착했다. 남은 돈으로 맛있는 커피도 한 잔씩 먹고 직원에게 터미널을 물으니 2번 쪽이란다. 한참 걸어서 2번 터미널. 하필 이 비행기는 마라케시를 거쳐 베니스로 간다. 또 다시 마라케시로? 기차가 카사블랑카를 거쳐 마라케시에 갔는데 이번엔 다시 비행기로 마라케시라니... 일정이 묘하게 중복된다. 게다가 표를 주는 여자 직원은 우리 여권 어디가 의심스러운지 10분 넘게 가지고 가서 확인을 해 온다. 베니스에 며칠 있을 거냐는 둥 별걸 다 물어 좀 황당했다. 아프리카에 오면 당연한 것도 당연해지지 않고 벌어질 일들이 예측 불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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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블랑카 근처. 다소 황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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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케시 근처. 카사블랑카 부근과 비교해 잘 정리되어 있다.

어 렵사리 공항 안에 들어가 결국 제 시간인 9시에 비행기가 떴다. 마라케시를 거쳐 가는 거라 어찌 되었든 하늘에서 모로코를 한번 더 보는 격이다. 평지에서 보았을 때 보다 나라의 곳곳이 뭔가를 지어 먹고 있어 빈틈이 없다. 거의 평지가 펼쳐지다가 마라케시 부근에서 아틀라스 산맥이 불끈 솟아 있다. 이곳에서 1시간이나 기다렸다가 다시 베니스로 날아간다. 당혹스러운 것이 또 하나 더 있었다. 물 한 잔도 안주는 비행기라 모든 것은 돈을 주고 사 먹어야 한다는 것. 작은 물 한 병이 2유로나 한다. 묘하게 맛도 없이 비싸게만 준 빵을 물 없이 먹자니 참 별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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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 부근. 공항은 바다 바로 옆에 있다  / 우리가 타고온 마이에어

그래도 꿋꿋하게 잠도 자고 책 보며 버텨서 베니스에는 3시에 내렸다. 비행기에서 보는 베니스는 얕은 바다가 펼쳐진 곳에 도시가 있어 신기했다.

아 프리카에서 오는 비행기라 더 그러는지 검색대에서 유난히도 몸을 살피고 짐을 뒤져가며 시간을 끈다(주로 아프리카 사람들). 참지 못한 이탈리아 아저씨들이 항의를 해대서 옆에서 속이 시원했다. 우리는 서로 반도 기질이라 통하는 것 같다. 자매 민박에서 알려 준대로 3유로 짜리 공항 버스를 타고 다리를 지나 로마 광장에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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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포레또에서

바 포레토 수상 버스는 한 번 타는데 6유로라 놀라웠다. 태국 식의 뻔한 수상버스 가격이 이렇게 비싸다니... 우리가 생각할 때 베니스는 단지 태국의 유럽 버전일 뿐인데 가격의 차이가 놀랍다. 느리게 움직이는 이 수상버스는 1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거라 나는 숙소로 가기 전에 일단 한번 돌자고 의견을 제시했으나 남편은 더 돌아 보는 것은 나중에 하고 빨리 숙소로 가자고 한다. 리알토 다리에서 내려 전화를 하니 작은 키의 다부진 인상의 아주머니가 나오셔서 "한국사람이 옳아요?" 하신다. 남편의 생김새나 머리 모양을 보면 누구나 외국인으로 착각을 하니 혼동이 되셨던 게다. 민박집은 리알토 다리와 산 마르코 광장의 중간인 좋은 위치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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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을 숙소에 두고 대충 설명을 들은 뒤 바로 산 마르코 광장에 갔다. 풍광이 멋지고 바다 쪽으로 향한 부분은 영화에서도 많이 보았던 모습이다. 워낙 관광객이 많이 와서 돈이 굴러 다니는 곳이니 인포에서는 지도도 공짜로는 안 준다. 베니스는 미로로 얽힌 거대한 놀이 공원처럼 보이기도 하고 거대한 쇼핑센터처럼 가게가 무척 많다. '우리가 쇼핑하러 이곳에 온 것은 아닌데...'  싶을 정도로 화려한 가면과 물건들 투성이이다. 바닷가에 나가 풍경도 보고 계속 돌아다니다가 우리의 희망인 수퍼를 찾아 갔다. 먹을 것이나 상점의 물가는 대단히 비싼 편이지만 역시 수퍼는 수퍼이다. 와인과 물, 빵을 3유로도 주지 않고 샀다.

7 시 반에 숙소로 돌아와 저녁으로 비빔밥을 먹는데 너무나 맛이 좋다. 김치와 깍두기도 실컷 먹었다. 기차 시간을 검색하다가 내일 밤에 나폴리 가는 밤차를 타면 어떨까 싶어서 8시 35분에 나와 역까지 걸었다. 남편이 숙소에서 카메라로 찍어 둔 지도를 보면서 열심히 앞장 서서 가고 나는 뒤 따른다. 앞에서 빠르게 걷는 남편의 모습이 미로를 헤쳐나가는 방구차 같다. 열심히 따라 가면서도 어두운 밤의 베니스 골목들은 참으로 운치가 있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온통 거대한 쇼핑센터라 느꼈던 느낌이 단박에 분위기 있고 고요한 역사적인 도시로 바뀐다. 조용한 수로가 곳곳에 펼쳐져 있고 더럽게 보이던 물들이 밤이 되니 그 색도 멋지게 잔잔히 흐르는 수로, 작은 광장들과 예전에 사용했을 우물들, 예쁜 다리들, 건물, 작은 길들, 그곳을 조용히 걷는 사람들... 이런 것이 베니스의 매력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하면서 시원하게 느껴지는 바람을 맞으며 빠른 걸음으로 뒤를 따랐다. 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9시가 넘어서 막 창구를 닫으려는 찰나였다. 친절한 아저씨가 쿠셰는 둘이 합쳐 60이라고 검색해 주셨지만 표는 내일 끊어야 한단다.

어차피 표는 못 끊는 것이라 나와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커피, 쿠키, 딸기 세 덩어리가 3유로인데 천연의 재료를 듬뿍 써서 어찌나 맛이 좋던지 배가 부른데도 감탄을 하며 먹었다. 그러면서 갑자기 둘 다 여유로워져서 미로를 지도도 보지 않고 분위기를 즐기며 걷다 보니 '바로 이런 것이 베니스이 매력인데 뭐 밤차를 타며 일찍 뜰 필요가 있나...' 싶어졌다. 오히려 표를 못 끊은 것이 있으라는 계시가 아닌지... 밤차로 나폴리에 가서 폼페이보고 로마로 오는 코스가 너무 힘이 들 뿐더러 그렇게 되면 로마에서 4일을 자야 하는 상황이 된다. 그냥 원래 예정대로 여기서 이틀, 나폴리와 소렌토 정도에서 이틀, 로마에서 이틀을 보내기로 했다. 여행의 말미에 뭐 돈을 더 아끼려고 바둥대어 봐야 뭐하냐 일단 편하고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밤의 베니스가 마음에 들었다. 차도 없고 어느 골목을 걸어도 안전한 거대한 유적지 공원 아닌가...

30분을 지도 없이 걷다 보니 이 곳이 미로인지라 어이없게 다시 역으로 돌아오는 일이 벌어져서 다시 지도를 확인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숙소에 오니 오늘 산 마르코 광장에서는 별 행사도 없고 재미 없었다며 이모가 제공한 맥주 파티가 벌어졌다. 오늘 같이 밥 먹은 팀이 모여 앉아 이야기 꽃이 펼쳐져서 거의 2시까지 별별 이야기를 다 하며 재미나게 보냈다. 지금은 2시 35분이다. 숙소도 깨끗하고 무엇보다 식사가 한식으로 해결되니 비록 남편과 다른 방을 쓰고 있지만 싸기도 하고 조건이 좋은 곳이다. 오랜 만에 우리나라 사람들과 얘기를 나눈 것도 새로웠다. 역시 우리나라 사람끼리는 금방 친해지고 서로 죽이 잘 맞는다. 내일 오전에는 이 근처를 더 보고 섬에도 들어가 보아야겠다.

 

2008.1.26(토) 베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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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 싼타루치아 역 앞 / 바포레또에서 본 운하

아 침에도 밥을 잘 챙겨서 많이 먹고 점심 가방을 챙겨서 나가 우선 24시간권 배표를 끊고 역에 갔다. 내일 9시 25분 메스트레역에서 출발하는 나폴리 직행을 탄다. 겨우 10유로의 예약비가 들었다. 배로 산 마르코 광장까지 오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서 계속 졸았다. 많이 느려서 걷는 것이 훨씬 빠르다. 토요일이라 사람들이 미어 터질 지경이라 산 마르코 성당과 종탑에는 줄이 아주 길다. 일단 숙소에 들어와 화장실에 들렀다가 다시 나갔다. 숙소의 위치가 좋아서 가끔 들러 이용하기에 편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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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선 줄이 좀 줄어든 성당 부터 들른다. 짐을 보관해 주고 성당이라 입장료도 없어 여러가지로 좋다. 내부는 지금껏 침입을 받아본 적이 없는 곳 답게 벽과 천장의 모자이크 그림들과 금박의 화려한 모양, 바닥의 대리석 조각 장식까지 모두 아름답게 보존되어 있다. 4차 십자군 전쟁 때 예루살렘에는 가지도 않고 동로마 콘스탄티노플을 쳐 달라고 해서 빼앗아 온 어이없는 말 4마리가 성당 위에 장식되어 있다. 같은 크리스트교 끼리 이교도라고 저러고 싶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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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노 섬에서

잘 보고 나와서 배를 타고 무라노 섬에 갔다. 축소판 베니스인 이곳은 유리 공예로 유명한 곳인데 작은 상점들에 유리 제품이 많고 아기자기한 곳이다. 물론 가격은 비싸고 깨질까 조심스러운 물건이라 구경 만 한다. 수퍼를 발견하여 우유와 간식거리 만 샀다. 물건 만드는 곳이 어디인지 찾지를 못해 서성이며 건너 편까지 갔다가 되돌아 오는 길에 우연히 컵을 만드는 작업장을 발견했다. 스페인 마을에서도 보았지만 정성스럽게 컵을 만드는 과정이 신기하다. 부라노 섬에 가려고 했던 것이 반대편으로 가는 방향의 배로 잘못타서 다시 무라노 섬에 돌아와 배를 기다렸다. 간식거리를 먹으며 기다리는데 남편이 배 노선도를 살펴보더니 두개 노선이 미묘한 색의 차이로 혼동되는 것을 보더니만 꿈에서 본 장면이란다. 이럴 때마다 참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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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시 배를 타고 부라노 섬. 더 작고 더 아기자기해서 완전 놀이동산 같다. 레이스 공예로 유명한 곳이다. 섬세한 레이스를 이용한 갖은 물건들은 보기만 해도 예쁘다. 옷들이 너무 예뻐서 옛날 귀부인들이 이런 곳에서 주문하여 옷을 입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살림을 잘하고 이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혹할 만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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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 점 해가 저물어 추워져서 배를 기다리는데 사람이 정말 많았다. 갈아 타면서 오랜 시간이 걸려 숙소로 돌아왔다. 추워서 몸이 으슬으슬하고 나가고 싶지 않을 지경의 날씨라 어제와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나폴리에는 민박을 예약해 두고 소렌토는 나중에 가서 어디에 묵을지 알아 보기로 한다. 그리고 로마 이틀은 호텔을 예약해 두었다. 저녁은 닭도리탕과 비빔국수가 나왔는데 남편이 맛있어 하며 많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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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녁을 과식해서 산책이 필요하다고 나가자 해서 배 타고 로마 광장에 내렸다. 어제와는 다르게 역 쪽에서 출발하여 넓은 대로를 따라 걸어서 숙소로 돌아 온다. 많이 춥고 어제 같은 작은 미로의 재미는 없었다. 일기 쓰고 오늘은 일찍 자야겠다. 어제 늦게 자서 계속 졸기만 한 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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