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베리아-바이칼여행 - 타이가 숲 산책

8. 타이가 숲 산책

타이가 숲 산책

첫날을 마을 산책에 보낸 우리는 숲으로 소풍을 갔다. 내친 김에 숲길을 따라 15km 길을 걸어 섬 동쪽으로도 가 보고 싶었지만 우리가 갈 곳을 지도를 통해 확인한 리아나가 그 쪽은 15km나 되니 그 길을 따라 가는 것은 무리라고 한다. 아마도 초행길이라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결국 우린 일단 지도상에 보이는 974m봉우리까지만이라도 가 본다는 계획으로 집을 나섰다.

지도상에서 보기엔 후지르 마을 북쪽에서 산으로 가는 길이 나 있다. 그리고 마을 뒤편으로 돌아 들어 가니 상당히 큰 길이 나 있다. 물론 산길이라 평평하지는 않지만 조금 힘 좋은 승용차라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길이다.  길을 따라 타이가 숲으로 계속 들어갔다. 가는 중간중간 아름드리 나무들이 베어진 광경을 보았고, 남아 있는 나무들은 거의 폭이 20-30cm정도 밖에 안되는 나무들 밖에 없어 안타까운 마음이 더했다. 하긴, 이 후지르 마을의 모든 집들이 통나무 집인데, 이 집들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소나무와 자작나무가 베어졌을 것인가.





땅은 매우 척박해서 이곳이 강수량이 부족한 곳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아무리 산지이지만 척박한 곳에서 ,꿋꿋이 자라는 소나무이니까 이 정도 버티고 있지 역시나 활엽수는 발 붙일 곳이 없는 황무지다. 그나마 남아있는 활엽수인 자작나무는 활엽수 답지 않게 맨 꼭대기 부근만 가지와 이파리가 돋아 있었으며 아래 부분은 거의 가지가 없어 침엽수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한참 동안 산길을 걸어 가다가 이상한 풍경을 발견했다. 길 가다 가다 많은 곳에 길과 숲을 가로지른 직선의 모래구덩이가 쭉 나 있는 것이었다. 마치 아주 작은 불도저가 지나 간 곳인 듯, 나무 사이로 쭉 뻗은 길이었는데, 길이라기엔 조금 그렇고 심하게 푹푹 빠지는 모래길이라 사람이 걷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무늬만 길인 곳들이 군데군데 보인다. 이것이 무엇일까.

한참 올라가다 이번엔 길이 오른쪽으로 꺾어진다. 오히려 내리막. 이러면 안되는데..하고 지도를 보아도 도통 여기가 어딘지 알 길이 없다. 어쩔 수 없이 꺾이는 곳 마다 우리만 알 수 있는 표식을 하고 길을 꺾는다. 초행의 타이가 숲에서 길을 잃으면 큰일이지 않은가.

먼지가 풀풀 나는 길이 계속 이어진다. 간간이 보이는 숲 속에는 예쁜 들꽃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1년 중 꽃을 피울 수 있는 시기가 거의 3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는 이곳. 그 짧은 기간동안 나무들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야 한다. 생존을 위한 투쟁의 현장이다. 아름드리 나무는 보이지 않는데, 베어지거나 불탄 흔적이 군데군데 보인다. 하지만 길가에서 우연히 만난 아름드리 적송은 용케도 베어지지 않았었는데 뭔가 신령스럽게 보이는 나무는 아름드리 나무라도 용케 베어지지 않고 제 수명을 누리고 있다.

길이 다시 꺽어지고 이제는 오르막이다. 하지만 한참을 걸어가도 위치를 짐작할 수 있는 산등성이는 안 보인다. 게다가 나무들이 모두 키큰 침엽수나 자작나무들이라 산 아래 풍경도 뵈이지 않는다. 이렇게 한정없이 걸어가야 하는 건가.

길이 갈라지는 곳에서 쉬다가 점심을 먹었다. 아침 식사를 남겨온 팬케익과 달걀. 산소에서 먹으니 아침 칼칼했던 속에 먹었던 것보다 훨씬 맛있다.

점심을 먹고 나서도 계속 올라갔다. 점점 길의 바퀴자국이 옅어지고 있다. 길도 희미해진다. 이 쯤 올라오니 땅이 촉촉한지 간간이 버섯들이 자라고 있는 것이 보인다. 소나무 밑에서 자라니 송이버섯인데. 향기는 그다지 나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정없이 올라가야 할 것 같아서 포기하고 걸음을 돌렸다. 우리나라 같으면 소나무 숲 사이를 걸으면 짙은 숲내음이 몸을 감싸건만, 이곳 알혼섬은 연간 강수량이 300mm 정도에도 못미치는 건조기후를 보이는 곳이어서 짙은 숲내음은 나지 않는다. 오죽하면 숲길이라고 하는 것이 모래사장처럼 고운 모래로 발이 푹푹 빠질 정도일까.

항상 돌아 오는 길은 처음 가는 길 보다 빠르다. 올라갈 때는 이곳 저곳 구경도 하면서 자작나무와 적송의 아름다움에 감탄도 하면서 가는 길이라 더욱 느린 것일 게다. 1시간 정도를 걸으니 마을이 보인다. 일단 타이가 숲 산책기는 성공.



숙소로 돌아와 안나 아주머니께 우리가 따온 버섯을 보여 주자 못 먹는 것이라 한다. 아니, 이곳에서는 안먹겠지. 비라도 내린 뒤엔 송이 버섯이 지천일 텐데 먹을 줄 모르니 귀함을 모른다. 하지만 모르는 것이 자연 생태계에는 더욱 이득이 될 수도 있겠지.

바이칼에서 수영하기

사실 바이칼에 와 보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이곳 바이칼은 아련한 환상적인 이미지로 다가 온다. 오죽하면 어떤 이는 바이칼 물 한번 마시면 30년이 젊어진다는 말을 할까. 알혼섬에서는 물에 몸을 담글 수 있는 곳이 몇 군데 있었다. 불칸 바위 앞쪽은 고운 모래사장이 소담스럽게 펼쳐져 있고 바위 안쪽은 작은 자갈바닥의 풀이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불칸 바위가 있는 언덕 오른쪽은 드넓은 동해안을 연상케 하는 사라이스키 해변이 광대하게 펼쳐진다.

첫날엔 불칸 바위 왼쪽 백사장에서 몸을 담갔다. 차다차다 하더니 사실은 별로 찬 물이 아니다. 러시아인들도 많이 와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데 막상 물에 들어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 번 몸을 담갔다가 나와서 줄창 일광욕만 하는 것이다. 물은 매우 깨끗하여 가슴까지 차는 물에서 발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였지만, 먹으라면 글쎄... 녹색말이 바닥에 자라고 있고 고운 모래들이 물에 흐드러져 있어 먹기엔 조금 문제가 있다. 게다가 맛은 조금 짐짐하다. 먹어서 탈은 나지 않을 물이지만 짐짐하고 먹기엔 그다지 차갑지 않은 물이라 마시는 건 포기했다. 어쩌랴, 물에 빠져서 어쩔 수 없이 먹게 된다면 원 없이 먹어도 좋겠지만 말이다.

불칸 바위가 조심스럽게 보듬고 있는 안쪽의 자갈 바닥 풀에는 첫날 큰 유람선 한 척이 정박해 있었고, 그 유람선에서 나오는 음식물 찌꺼기인 듯 한 것들이 흘러 나오고 있어서 물에 들어갈 마음이 나지 않았다.



다음날엔 사라이스키 해변 쪽에서 수영을 했는데 물이 조금은 더 찬 것 같다. 파도치는 해변이며 저 멀리 아스라이 건너편엔 1300-1600m의 산들로 이어지는 프리모르스키 능선지대가 장엄한 풍경이니 바다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조금 넓은 해변이라 그런지 이곳의 물이 좀 더 깨끗한 느낌이다. 조금 수영을 하노라니 캠핑을 하고 있던 러시아인이 물통을 가져와서 물을 길으려다 우리에게 도움을 청한다. 이렇게 바이칼 물을 그대로 퍼서 취사도 하고 식기도 씻는 모양이다. 백사장 뒤쪽으로는 캠핑을 나와 있는 사람들이 가져온 차들도 여러 대 보이고 즉석에서 만든 화덕도 보인다. 물은 찼지만 물에서 나와 햇볕을 조금만 받으면 금새 등이 뜨거워진다. 따가운 햇볕에 몸도 빨리 마르고 위에 옷 하나만 걸치면 물에 들어갔다 나온 한기도 금방 가신다.

이 쪽 해변이 좋아서 경아씨에게 앞으로 저녁 샤워는 이 해변에서 해야겠다고 말했다. 거대한 샤워장이라. 바닷물 같으면 담갔다 나온 뒤 샤워가 큰 문제인데, 이곳은 그런 걱정이 없구나.

며칠을 지나고 보기드문 비가 한 바탕 내리고 난 뒤엔 새로운 해변을 찾았다. 위에서 보기엔 절대 내려갈 수 없을 것 같은 15m정도의 절벽 아래에 해변이 펼쳐져 있는데 러시아인 하나가 이미 내려가 있어서 용기를 내었다. 차근차근 내려가니 그리 위험할 정도는 아니다. 약간의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는 다리를 후들거렸지만 마음이 담대한 경아씨는 바위를 척척 붙잡고 잘도 내려간다.

아담한 자갈이 깔려 있는 해변. 몸을 담그기에도 많이 차지 않고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은 해변이다. 우리는 이곳을 "우리해변"이라고 이름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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