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베리아-바이칼여행 - 알혼섬 북부지역 투어

9. 알혼 섬 북부지역 투어

하보이 곶

하보이곶과 섬의 북쪽 일주 투어를 위해 아침 일찍 나왔다. 동행하는 러시아인 렘의 가족은 이번에 이미 한번 갔다 온 곳인데 한번 더 간다. 우리를 위해서인지, 아니면 경치가 좋아서 또 가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주인아저씨의 지프 뒷자리에 타고 마을을 나서다 하라쇼에 들러 렘이 보드카와 음료수를 몇 병 샀다. 또 잠깐 마을을 돌다 어떤 집에 선다. 렘이 내려서 들어갔다 오더니 오물 여러 마리를 가지고 나온다. 이곳은 시장이 없는데, 이렇게 직접 물고기를 잡은 어부 집에 가서 사오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을 챙기고 나니 본격적으로 섬의 북쪽을 향해 지프가 달린다. 길은 비포장이었지만 제법 넓어 가기에 어려움이 없다. 조금 가니 하란쉬 마을이 나오고 이때부터 본격적인 온대 초원인 스텝을 달렸다. 드넓은 낮은 구릉 스텝지역을 달리는 지프. 별 다른 길이 없다. 이미 지나갔던 다른 지프들의 자국만이 길이 된다. 너무나도 아름답고 시원한 장면에 정신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된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오는 동안 보았던 드넓은 스텝 산지를 이렇게 지프로 달리다니. 너무나 아름답다.

스텝은 말 그대로 웅장하게 펼쳐져 있어 거리 감각이 없다. 가까워 보이는 데도 사실은 까마득한 길이다. 사진으로 찍어 놓은 것을 나중에 확인하고 보니 당최 원근감과 높이감이 없었다. 광활하게 펼쳐진 스텝언덕을 찍었는데 웬 뒷동산을 찍은 것 같은 황망함... 한참 스텝 초원을 질주하다 사막지대로 접어들며 마을 하나를 만난다. 사실 마을도 아니다. 전에 러시아군의 물고기 가공공장이 있었다는 곳인데 지금은 폐허만 남아 있었으며 작은 백사장엔 먼저 온 외국인 일일관광객들이 멈춰 있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타고 온 차는 전형적인 러시아 승합차인데 작은 몸집에 식빵처럼 덮어 씌운 차체가 단단해 보인다. 대략 10인승 정도 되어 보였다.


사막지대를 지나니 본격적인 타이가 숲이다. 길? 없다. 아니, 차마 길이라고 말할 수 없는 푹푹 빠지는 모래무더기들이 숲과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것 뿐이다. 타이가 숲 산책에서 보았던 정체모를 직선로들이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 아무리 지프라고 해도 저렇게 빠지는 길을 어떻게 갈까 싶었지만 선하게 보이는 집 주인 니콜라이 아저씨는 보기와는 다르게 노련하고 세밀하게 차를 잘도 모신다. 과연 우리나라의 도로마다 넘쳐나는 4WD 승용차는 이런 곳에서 버틸 수 있을까? 이곳에서는 4WD승용차가 필수라고 생각되는데 어쩌자고 우리나라는 숲을 파헤쳐 가며 사방에 길을 아스팔트로 쫙쫙 포장 해 놓았는데도 험한길을 달리는 데 알맞은 4WD를 다들 몰고 다닌단 말인가.

아찔한 모래길을 지나니 이제부터는 숫제 등산이다. 경사가 엄청난 산 속을 마구마구 올라간다. 길도 보통 길이 아니다. 지프차들이 계속 지나다 보니 바퀴자국이 너무 파여서 심한 곳은 30-40cm깊이까지 파였다. 이건 흙으로 만든 레일이다. 그런 바퀴자국을 피해서 얼마나 차를 잘 모는지 뒷자리 딱딱한 짐칸에 앉은 우리들도 그렇게 덜컹거리지 않은 채로 갈 정도다. 이런 길이라면 나 같으면 차를 주어도 못 간다.

한참을 가다 숲을 벗어나자 또다시 펼쳐진 광활한 스텝 구릉지. 구릉이라고 해도 해발 고도가 4-500m이기 때문에 경사가 심한 곳은 거의 놀이동산 청룡열차를 타는 기분이다. 구릉을 신나게 달려 도착한 곳은 3형제 바위가 있다는 사간 후슈운 곶.  내려서 40여분 이상을 걸어야 한다고 리아나가 이야기한다. 구릉이 끝나는 곳에는 백사장이 없다. 높은 구릉에서 그냥 절벽해안인 것이다.


렘과 아냐가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먼저 내려간다. 해안이도 아냐를 따라 내려가는 데 거침이 없다. 얼마나 내려가는지 위에서는 아래쪽 사람들이 콩알 만하게 보인다. 만약 우리나라라면 이런 절벽들에는 어김없이 철책이 둘러쳐지고 출입금지일 것이다. 아니면 멋없게 철제 계단을 떡 만들거나. 여기서는 별달리 지지할 데 없이 풀만 잡고 살살 미끄러지지 않게 내려가야 한다.

하지만 이미 한 팀의 관광객들이 내려가 있었으며 렘네 가족도 성큼성큼 내려가기에 용기를 내었다. 특히 아냐는 싸구려 슬리퍼만 신고서도 과감하게 팍팍 내려간다. 리아나가 조금 주의를 주긴 했지만 러시아 부모들은 왠만하면 자식을 잘 감싸려들지 않는다. 한국 부모라면 저런 위험한 곳으로 내려간다고 하면 화를 버럭 내며 말릴 것이다. 아마.

내려가는 데 30여분, 올라가는데 20여분이 걸린다. 내려가는 게 더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끝까지 내려가니 양귀비꽃이 예쁘게 꽃을 피우고 있다. 시퍼런 바이칼의 물이 아래로 보이고 바람도 시원하게 불어 준다. 속이 확 트이는 시원한 느낌.  힘들게 꼴찌로 올라온 뒤 다시 지프를 탔다. 아래는 바로 절벽인 아슬아슬한 구릉지를, 그것도 경사 때문에 기울어져서 달리다가 도착한 하보이 곶. 섬의 북쪽 끝에 있는 삐죽 튀어나온 곶이다. 하보이는 부랴트 말로 이빨이라고 하는데, 과연 날카로운 송곳니처럼 튀어나와 있었다.



하보이 곶을 따라 걸어 가다 보니 끝부분엔 어김없이 돌탑이 있다. 그리고 장승 역할을 하는 상징물이 온몸에 형형색색의 천을 감은 채 서 있다. 이 하보이 곶에서는 바이칼의 북쪽이 보인다. 광대한 바다 바이칼.

하보이 곶의 끝에는 거대한 바위가 있다. 리아나는 이 바위에서 제물로 바쳐져 떨어져 죽은 여자의 전설을 이야기해 준다. 나도 얼핏 들은 바 있는 인당수의 산제물 의식의 원형이 이 바이칼 알혼섬이로구나. 이 알혼섬 동쪽 100여m 떨어진 바다는 바이칼에서도 가장 수심이 깊은 곳이며 옛날 바이칼을 오가던 상인들이 풍랑을 피하기 위해 처녀를 바다에 제물로 바쳤다는 전설이 내려 오는 인당수와 같은 곳이다. 제물로 바쳐진 처녀는 바이칼의 이 인당수에 몸을 던지자 금빛 비늘을 가진 물고기로 환생하여 신들의 세계에서 영원히 살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설 가운데 시베리아 몽골리안들이 공유하는 전설이 인당수 전설과 선녀와 나뭇꾼 전설이다. 이곳에서는 나뭇꾼이 선녀의 옷을 차지하여 결혼한 것 까지는 같지만 11명의 아이를 낳은 뒤에도 날개옷을 찾자 마자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기이하게도 건너가는 것이 불가능한 그 바위의 위에도 돌탑이 있다. 리아나에게 물으니 암벽등반가들이 타고 올라가서 쌓았다고 한다. 높이를 가늠하기가 무척 어려운 곳이다. 눈으로 보기에도 2-300m는 되어 보인다. 하지만 지도상에는 400m정도라고 되어 있는데 너무나 크고 광대하니 좁아터진 나라에 사는 사람으로는 거리와 높이 짐작이 안된다.

하보이 곶을 지나니 한 무리의 한국인 관광객이 인사한다. 바이칼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가고 있는 이 때, 알혼섬에도 많은 한국인들이 단체여행을 하고 있다. 3일동안 대략 4팀, 5-60명은 본 것으로 짐작된다. 좋은 일이긴 하지만 섣부른 걱정도 된다. 부리야트 공화국의 신성한 장소인 이곳을, 그냥 지나쳐 가는 관광객일지라도 똑 같이 신성하게 여기고 소중히 생각을 해야 할텐데...




다시 지프를 달려 스텝길을 따라 섬의 동쪽인 우줄리 해변으로 나갔다. 아름다운 해변엔 양들이 풀을 뜯는 초원이 있었고 거대한 바이칼을 바라보는 큰 언덕이 우뚝 솟아 있다. 아래 몇 채 안되는 마을은 한가했고 렘은 니콜라이 아저씨와 함께 지프에서 뻬치카(화덕)를 꺼내고 장작을 팬다. 한 30여분 뒤에나 훈제 오물이 만들어질 것이라 하니 한가롭게 해변을 감상한다. 니콜라이 아저씨는 아이들에게 새우를 보여 주려고 돌 틈을 뒤지고 있고, 아냐와 해안이 역시 새우 잡으러 돌틈을 뒤진다. 곧 니콜라이 아저씨가 제법 큰 새우 한 마리를 잡았는데, 역시나 옆새우다(2cm정도).이런 새우 종류 생물들과 해면, 녹색말들이 계속적으로 바이칼을 정화하고 있어서 오랜 세월 바이칼은 오염되지 않았지만 근래 이르쿠츠크에서 오는 버스길이 정비되어 12시간 걸리던 거리가 6시간으로 단축됨에 따라 더 많은 관광객들이 오고 있는데, 이러다 바이칼 역시 급격히 오염되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

물은 맑았지만 녹색말이 많이 살고 있었는데, 아마도 양을 키우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축사(畜舍)까지는 아니라 해도 수십마리 양떼들의 배설물은 자연 이곳 해변으로 나갈 것이니 말이다.





잠시 후 뻬치카에서 오물이 황금색으로 변하여 나왔고, 식탁에 휴지를 깔고 한 마리씩 잡고 손으로 뜯어 먹었다. 장작불에 뻬치카를 걸어 훈제한 오물을 손으로 먹는 그 자연친화적인 풍경. 식사를 마친 뒤 오물 뼈와 휴지는 아직 남아 있는 불길에 던졌고 렘은 뒷정리를 하고 나머지 비닐봉지 같은 것도 불길에 던져 버렸다. 비닐봉지를 불에 태우면 안된다는 사실은 러시아가 조금 더 산업화가 된 후에나 알게 되려나. 아마도 렘은 그렇게 태워 버리는 것이 뒤를 깨끗이 치우는 일이라 생각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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