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베리아-바이칼여행 - 고소공포증 극복하기

10. 고소공포증 극복하기

고소 공포증 극복하기

나는 고소공포증이 있다. 전에 라오스에서도 투어 도중에 8미터 정도의 높이에서 다이빙하는 것이 있었는데 눈을 질끈 감고 뛰어내릴 때 갑자기 공포심이 엄습하던 기억이 난다. 그 순간 이미 저지른 일이다 싶어서 뛰어내렸지만 물까지 가는 동안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풍덩 빠지고 나서야 살겠다고 열심히 헤엄쳐 나왔었다. 경아씨는 내가 용감하게 뛰어들어서 대단하다 싶었지만 떨어지는(다이빙이 아니라) 모습이 꽤 처량했다고 이야기한다. (그 날 경아씨는 다른 투어참가 인원이 한 번씩 다 다이빙 하는 동안 근처에서 수영하며 딴청만 부렸었다)

첫날 불칸바위에 도착했을 때 해변에서 불칸 바위를 가기 위해 지나는 지름길인 경사로가 너무 무서웠었다. 남들이 다들 쉽게 가길래 별 것 아니겠지 하고 지름길인 경사로로 들어 섰는데 막상 중간 정도쯤 가서 아래를 내려 보니 겁이 덜컥 나는 것이다.  대략 높이가 15미터 쯤 될 것 같은데 미끄러운 모래길에 아래는 그대로 바위투성이 해변이니 미끄러지면 결과가 참담한 것이다. 경아씨랑 해안이는 성큼성큼 이었지만 나는 벌벌 기다시피 올라갔고 불칸 바위에서 언덕으로 올라갈 때도 조심스러웠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겁을 먹은 것 같은데 그땐 정말 무서웠다. 내가 무서워 하는 표정을 짓자 해안이는 아빠가 그럴 때도 있냐고 웃는다. 그 날 내내 경아씨는 과감하게 절벽 가에도 서 있고 언덕 비탈에도 서 있었지만 나는 매번 그러지 말라고 애원했다.

이런 내 고소공포증은 둘째 날 렘 가족과의 투어로 싹 사라지게 되었다. 하보이 곶과 사간 후슈운 곶은 알혼섬 북서쪽 해안으로 해안선은 절벽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별 생각없이 사진 정도 찍겠구나, 경치가 좋겠구나 생각했는데 사간 후슈운 곶에서 저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글쎄 내려가자는 게 아닌가. 물론 길은 있지만 확연한 절벽인 암벽길이다. 까마득한 절벽 아래를 내려 가는 일이 고소공포증 기운이 있는 내게는 너무나도 어려운 일인 것이다.


제일 먼저 내려가는 이는 아냐였는데 14세 소녀답지 않게 털털한 아냐는 슬리퍼 하나만 달랑 신고서는 폴짝폴짝 내려간다. 해안이도 졸졸 따라 가고. 너무 빨리 내려가니까 엄마인 리아나가 주의를 주긴 하는데 그 외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렘과 리아나도 내려 가고 경아씨도 내려간다. 벌써 아냐와 해안이는 엄지만하게 보일 정도다. 이거 못내려 가겠다고 할 수도 없어서 내려가는데 이건 순전한 체면치레다. 체면과 염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로서는 도저히 안 할 수가 없어서 발발 떨면서 내려갔다.

중간 쯤 내려간 바위에 렘과 경아씨가 올라갔다 왔는데 경치가 일품이라 한다. 나도 설설 기면서 바위 위에서 건너편 바다를 보니 섬뜩하다. 바위를 내려오니 해안이랑 아냐는 벌써 저 아래 바위에 내려가 있다. 으으..저기까지도 가야 하는거야?  도리가 있나. 다들 가는데.

도리 없이 차근차근히 풀도 잡고 바위도 잡으면서 겨우겨우 내려갔다. 겨우 내려 가니 다시 해안이와 아냐가 아래에 보이는 바위까지 내려가서 오라고 손짓한다. 경아씨도 우리 나라에서 보기 힘든 양귀비가 피어 있다며 오랜다. 울며 겨자먹기다. 오늘의 투어는 절벽타기 익스트림 투어란 말인가... 올라올 때는 그나마 좀 나았다. 내 마음 부터도 너무나 극한까지 몰려 있다가 조금 풀어지니 조금은 면역이 되는 듯 했다.


하보이 곶 역시 가파른 스텝 초원 끝머리가 바로 절벽으로 연결되어 무섭기는 매 한가지였다. 절벽 높이는 300미터 정도니 장난이 아니다. 하지만 아까의 경험 때문에 조금 나아지는 느낌이다.

어라, 내 고소공포증이 극복되었나? 다음 날 첫날 벌벌 떨던 불칸 바위 경사로를 올라가는데 어째 겁이 하나도 안난다. 성큼성큼 가게 되는데 사간 후슈운 곶에서의 익스트림 절벽타기가 좋은 경험이 된 것 같다. 괜찮은 정신과 치료를 받은 셈이다.

 

이전 장 상위메뉴로 다음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