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베리아-바이칼여행 - 다시 이르쿠츠크로

15. 다시 이르쿠츠크로

다시 이르쿠츠크로

이르쿠츠크로 돌아온 날은 비가 심하게 내렸다. 리스트뱐카에서 이르쿠츠크 오는 버스는 이르쿠츠크 와서는 군데 군데 지점에 적당히 사람들을 내려 준다. 우린 버스에서 조선식당이라는 상호를 보고 중앙 시장 근처 중국시장에서 급히 내렸다.  길을 거슬러 찾아 들어가니 식당이름은 레스따란 키타이 & 코레야 였는데 알고 보니 차이나식당이다. 키타이는 러시아인들이 차이나를 칭하는 말인데 거란족을 뜻하는 키타이가 차이나를 부르는 말이 되었다는 것이 이색적이다. 차이나인들에게는 모욕일 수도 있는 것이 키타이, 즉 거란은 한족이 아니라 고구려에 이은 엄연한 북방 유목 민족이기 때문이다.

탕요리 하나와 명태요리, 그리고 밥을 시켰는데 사실 알고 보면 보잘 것 없는 탕이였지만 알혼섬 안나네 집 이후로 계속 사발면으로 연명해 오고 있던 차에 밥을 보니 갑자기 눈이 뒤집어졌다. 배낭여행자로서는 한심한 이야긴데 이번 러시아 여행은 유난히도 못먹고 지낸 것이다. 오죽하면 한국 사발면으로 끼니를 때울까. 지금까지의 여행 중 전혀 없던 일이 생긴 것이다. 어쨌건 한사발 가득 나온 밥을 허겁지겁 정신없이 먹었다.

숙소로 오는 길은 알혼 섬 보트 여행에 이어 비를 원없이 맞아본 경험이었다. 사정없이 쏟아지는데 이르쿠츠크 주민들도 예상을 못한 듯 여러 상점의 처마에 비를 피하고 있었다. 하지만 비는 곧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아 조금 비를 맞고 가다가 결국 자주가던 카르타 수퍼에 들러 비도 피할 겸 쇼핑도 했다.

다행히 쇼핑을 끝내고 나오자 비가 조금 기운이 꺾여 숙소인 다운타운 호스텔까지는 무사통과. 고마운 하느님.

이미 13일부터 예약을 해 놓은 상태라 숙소는 자리가 있었지만 사람이 계속 들어오는 듯 간이침대까지 등장했다. 간이침대에 누은 사람은 독일인이었는데, 자기는 오히려 푹신해서 스프링침대가 낫단다. 우린 그 여행 내내 숙소의 스프링침대 때문에 허리가 아팠었는데 유럽인은 딱딱한 것을 못참는다고 하니 생활 습관에 따라 이해는 되지만 허리가 나중엔 안 좋아질 텐데... 슈퍼마켓에서 쇼핑해 온 연어요리를 저녁으로 먹었는데 한참을 잘 먹다가 조금 이상해 냄새를 맡아보니 고리고리..한 것이 약간 맛이 간 듯 싶다.  속이 안 좋아서 몽창 토해 버렸다.

이번엔 한국 청년 둘도 호스텔에 들어왔다. 몽골에서 들어 와서 바이칼 알혼섬에 갔다 왔다는데, 우리가 리스트뱐카에 갔던 때다. 비가 와서 이틀만에 돌아온 탓에 별 감흥이 없었다고 한다. 우리가 아마도 관광객의 끝물이었나 보다. 스테이크와 우리가 한국에서 가져왔던 너트를 안주삼아 이분들과 밤 늦게까지 보드카를 기울였다. 사법고시 시험을 쳐 놓고 여행하시는 중이라 하는데 몽골로 다시 돌아간다 하여 작년에 몽골에 갔다 왔던 경아씨가 이런저런 정보를 일러 주었다. 난 술 취해서 먼저 잤다.

다시 돌아 온 이르쿠츠크는 여러 모로 마음이 편했다. 길도 대강 알고 있고 돌아와서는 트램이나 노선택시를 주로 이용하니 돌아 다니기도 편하다.

다음 날 중앙시장에 다시 들렀지만 이미 입맛이 떨어졌는지 잘 하는 도시락 가게에서 도시락을 사고서도 냉큼 먹지 못한다. 게다가 치즈나 햄은 이미 관심이 떨어지고 말았으니 먹을 것이라곤 슬슬 질려 가는 라면밖엔 없다. 레닌거리에 있는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든 해안이는 행복해 한다. 그럴 것이 이곳에서 8루블 하던 밀크 아이스크림이 알혼에서는 24루블이어서 먹을 엄두를 내지 못했기 때문. 가게에서 이번엔 삘멘(만두)에 도전해 보자 하고 냉동만두를 샀는데 양도 많은 것이 30루블 밖엔 하지 않는다. 이 만두를 익혀 먹는 법을 몰라서 리다에게 물어 보니 삶는 것이랜다. 냄비에 폭폭 삶아서 먹어 보니 첫 맛은 좋다. 만두소가 고기 반죽이어서 조금 느끼하기는 하지만 그런 대로 먹을 만 해서 먹다먹다 보니 슬슬 질려간다. 아무래도 이것도 아닌 것 같군.

이르쿠츠크 마지막 날엔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시내를 둘러 보기로 하고  숙소 앞에서 무조건 역 방향의 64번 노선택시를 탔다. 택시는 다리를 건너더니 역 방향으로 가지는 않고 다른 길로 접어든다. 김종록씨의 책에서 광물박물관이 레르몬토바 거리 83번지에 있다고 본 것 같은데 그쪽으로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가는 차에 한참 몸을 의지하는데 광고판 중의 하나가 레르몬토바 72번지라고 써 있고 화살표가 있는 게 보인다. 어라? 그냥 타고 왔는데 그 방향으로 오다니. 조금 더 가다 차가 섰고 트램들이 회차하는 것이 보인다.

트램이 회차하는 곳 앞에 큰 교회 양식의 건물이 보였다. 혹시 개신교? 하면서 들어갔는데 알고 보니 가톨릭 교회다. 이곳 러시아에서는 소수파. 단아한 실내에는 가운데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와 양쪽으로 요셉과 마리아가 보인다. 잠깐 앉아서 분위기에 취해 보는데 일하시는 분인 듯한 분이 오셔서 해안이에게 카드를 주시고 교회 벽에 있는 성화를 보는 순서를 알려주신다. 이분은 예배 시간도 알려주시며 오라고 하셨지만 우리 시간과는 맞지 않아 결국 안 갔다.

교회를 나서며 이왕 왔으니 광물박물관에 가 보자 하고 레르몬토바 길이 어딘지 찾느라 길 가던 할아버지께 물어 보니 의사소통이 안되는 듯 하다. 결국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그냥 헤어졌지만, 곧 알게 된 사실. 우리가 레르몬토바 거리 위에서 레르몬토바 거리가 어디냐고 물었던 것.(-_-;;) 당연히 그분은 약간 황당해 하셨을 것이며 몇 번지냐고 하셨을 것이고, 우린 그 말을 못 알아 들으니 될 일이 있나...

길 번지를 확인 하며 찾아간 레르몬토바 83번지는....... 공터였다. 김종록씨! 진짜 가보고 책에 써 놓으신 겁니까!!! 아니면 우리가 번지체계를 몰랐던 것입니까???

좀 걸어서 트램 1번 타고 숙소로 왔다.

오후엔 즈나멘스키 수도원에 가 보고 싶었다. 리다에게 길을 물어 보니 트램1번, 4번 타고 가다가 내려서 걸으면 된다고 한다. 우리는 그 말 대로 했고 걷는 길은 생각보다 먼길이었다. 게다가 즈나멘스키 수도원 앞길은 앙가르스크로 연결되는 외곽도로인데도 왜 이리 차가 많은지 이르쿠츠크의 모든 차들이 이곳에 모이나 싶었다.

즈나멘스키 수도원은 꽤 아름다운 곳이었다. 마당에 앉아 잠시 명상도 하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정원에서 쉬기도 했다. 수도원 안 성당도 엄숙하며 왠만한 박물관 정도 되는 유물들이 눈을 끌었다. 구름과 함께 하는 즈나멘스키 수녀원이 너무나 아름다워 사진도 많이 찍었다. 막상 즈나멘스키 수도원에 와 보니 이런, 우리 숙소에서 그냥 걸어 와도 되는 거리라는 것이 밝혀진다. 앙가라강 따라 얼마 안되는 곳에 그리스도 탄생 사원이 보이지 않는가. 우리가 산책삼아 오는 그곳이 바로 앞에 보이니 오늘 이곳으로 오면서 한 고생이 모두 물거품이되는 느낌이다.

하지만 내일 하바롭스크로 가는 열차를 타야했기에 중앙시장에 들러서 먹을 것을 쇼핑하러 다시 온 길을 걸었다.

중앙시장에서 먹을 걸 구하려 하지만 이젠 먹을 것이 마땅히 없다. 다 질려 버린 관계로 난 최소한의 햄을 사고 경아씨는 최소한의 치즈를 샀다. 그 와중에서도 경아씨는 빵가게에서 빵을 샀는데 모두들 줄을 서서 빵을 사는 곳이라 금새 빵이 동나는 곳이다. 이게 대단한 빵인데 처음에 살 때는 돌덩어리이던 것이 하루가 지나니까 표면이 부드러워 지고 안쪽도 매우 부드러웠다. 겉을 딱딱하게 하여 내부의 습기를 조절하는 노하우가 있는 집 같았는데 다른 곳에서는 그런 빵을 전혀 보지 못했다.

빵집 옆에 있는 소시지 판매점의 아주 예쁘고 싹싹한 아가씨는 우리가 햄을 둘러 보자 자신이 파는 제품을 조금 잘라 맛을 보여주며 최고라고 손짓한다. 값을 듣고서는 우리가 너무 비싸다는 표정을 짓자 시무룩한 표정을 예쁘게 짓는다. 돌아다니다 다시 그 집에 와서 아까 것 말고 권하는 다른 것을 먹어보았는데 맛이 좋아서 결국 사고 말았다.

난 해안이 먹을 라면과 보드카를 사기 위해 버스터미널 근처의 슈퍼로 가기 위해 4번 트램을 잡았고, 경아씨랑 해안이는 숙소로 직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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